박근혜가 김무성 못 치는 이유

2015.10.12 09:51:39 호수 0호

잘못 건드렸다간 역풍 맞는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VIP가 가장 싫어하는 게 배신이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사퇴 이후 정가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성향을 그렇게 진단한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국민께서 심판을 해주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부산에서 긴급회동을 갖고 ‘9·28합의’를 발표했다.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이유는 공천 룰에 대해 여·야 대표가 합의했다는 측면도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국내에 자리를 비운 사이 이뤄진 합의였다는 점이다. 친박계에서는 즉각 ‘배신’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배신의 정치

이후 청와대와 김 대표 간 진실공방으로 비화됐다. 청와대는 지난 1일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대해 여·야가 합의하기 전 현기환 정무수석 채널을 통해 반대 의사를 밝혔다고 입장을 전했다. 당사자인 현 수석 또한 “국민공천제에 반대했다”고 힘을 실었다.

김 대표는 청와대와 상충되는 주장을 했다. 김 대표는 “현 수석이 걱정하고 우려하는 얘기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반대’라는 표현을 한 기억은 없다”고 반박했다.

최근 청와대의 ‘같은 상황, 다른 대처’가 주목받고 있다. 앞서 ‘국회법 사태’가 터지자 청와대·친박계는 합심해 유 전 원내대표를 끌어냈다. 일각에서는 ‘유승민 찍어내기’라는 표현도 나왔다. 반면, 김 대표의 경우 이미 수차례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웠음에도 ‘대표직’에 대한 언급은 전무한 상태다. 김 대표는 ▲상하이발 개헌론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국민연금 포함 문제 ▲국회법 개정안 사태 ▲9·28공천 룰 합의 등 이미 4차례 이상 청와대와 ‘대립·철회’를 반복해왔다.

그 이유에 대해 정가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의당 노회찬 전 대표는 ‘개인차’에 무게를 뒀다. 지난 2일 YTN라디오 <신율의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노 전 대표는 ‘김 대표가 제2의 유 전 원내대표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인가’에 대한 세간의 의견에 “밖에서 볼 때 유 전 원내대표는 안 되면 부러지는 스타일이고, 김 대표는 휘어지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타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내다봤다. 노 전 대표의 예상처럼 김 대표는 이후 “청와대와 공방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른 전문가들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5일 TBS <퇴근길 이철희입니다>와 인터뷰를 가진 인명진 목사는 ‘노 전 대표가 평가한 것이 맞는 전망인가’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상황의 차이’가 가장 큰 요인이라고 정가 일각에서는 보고 있다. 유 전 원내대표를 사퇴시켰던 당시와는 달리 김 대표를 쳐낼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알려진 바대로 유 전 원내대표는 국회법 개정안 사태로 물러났다. 국회법 개정안의 주요 골자는 정부 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수정 요구권이다. 정부의 수장인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월권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다.

바람 앞에 ‘유’는 대나무 ‘김’은 갈대 형국
유와 달리 명분없어 고민…비박결집도 부담


반면, 공천 룰과 관련된 대립은 오히려 박 대통령이 정치권에 관여하는 모습이 된다. 실제 9·28합의에 대해 청와대로부터 지적이 나오자 새정치연합 측에서는 “청와대의 선거개입”이라며 비판했다. 문재인 대표는 지난 5일 “박 대통령은 당적을 정리하고, 공천과 선거제도 논의에서 손을 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지난 6일 청와대에서는 민경욱 대변인, 박종준 경호실 차장이 사퇴하는 등 ‘총선대비 교통정리’에 들어가 공천개입 의혹을 미연에 차단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결국 명분이 정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을 본다면, 최소한 이번 사안으로 박 대통령이 김 대표를 내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또 다른 이유로 ‘비박계의 규모’가 꼽힌다. 일설과는 달리 비박계에 속한 의원들의 수가 친박계 못지않다는 것이다. 세간의 평가를 종합·분석해보면, 서청원·윤상현 의원 등 ‘친박계’ 핵심으로 분류되는 인물들은 20∼30명 정도, 여기에 이인제·김태호 의원 등 ‘범친박계’로 분류되는 인물들까지 포함하면 대략 40∼50명 정도의 세가 된다.

반면 ‘비박계’는 김성태 의원을 포함한 ‘김무성계’가 20∼30명, ‘유승민계’가 10∼20명, ‘친이계’가 20∼30명 등 약 50∼8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새누리당 내 계파를 두고 정가에서느 ‘수에선 비박계, 결집력에선 친박계’가 우세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만약 박 대통령이 김 대표에게 사퇴를 압박한다면, 비박계의 세 결집을 불러와 ‘자충수’에 빠질 수 있다고 복수의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실제 친박-비박 간 계파 갈등이 고조되자, 비박계가 기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됐다. 지난 2일부터 김 대표의 휴대폰을 통해 ‘청와대 관계자나 안심번호는 중요사안은 아니다. 대표님은 큰 명분만 얘기하면 게임은 유리해질 것이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반납할지 아니면 대통령과 일부 세력이 행사할지에 대한 초유의 민주주의 수호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가야 하지 않겠나’ ‘정병국·원희룡·남경필에게 협조 요청을 해야 된다’ 등과 같은 전술·전략 문자가 공개됐다.

해당 문자들은 김성태·김영우 의원, 2007년 이명박 대선캠프에서 자문 역할로 활동한 김모씨 등 직·간적접으로 비박계와 연결된 인사들이 보낸 것이다. 유 전 원내대표가 사퇴 기자회견장에서 언급한 ‘대한민국 헌법 제 1조1항’처럼 ‘대의’를 전면에 내건 모습이다.

예고된 후폭풍

‘여론’ 또한 김 대표의 거취에 쉽게 손 못 대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박 대통령은 ‘북한 도발’ 이후 50%대에 육박하는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탄력을 받고 있는 박 대통령은 지난 5일 직접 ‘금융개혁’을 언급하며, 하반기 국정수행을 강조했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김 대표가 외압에 의해 물러나는 모습이 연출된다면,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서 발표한 유 전 원내대표 사퇴 당시 자료를 보면, 박 대통령 지지율은 유 전 원내대표가 물러난 지난 7월8일, 전일 대비 4.8%포인트 급락한 32.6%로 주간 최저 지지율을 기록했다 (조사대상: 전국 성인 2500명, 조사방법: 유무선 RDD 전화면접, 조사기간: 7월6∼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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