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귀 간지러운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 내정자

2015.07.29 10:48:52 호수 0호

법조인이 인권이 뭔지 알기나 해?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에 이성호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내정했다. 현직 서울중앙지법원장을 내정한 데 대해 시민사회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청와대가 또다시 밀실 인선했다는 지적과 후보 자격 검증 논란이 일 전망이다. 

 


“선배 법관을 대신해 억울하게 고초를 겪은 시민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고인이 된 이씨가 하늘나라에서 평안하기를 바라며 나머지 피해자들도 평화와 행복을 찾기 바란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용공조작 사건인 ‘아람회 사건’에 대해 사건 발생일로부터 29년, 재심 청구 9년 만인 2009년에 전원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당시 판결을 내린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였던 이성호(58·12기) 국가인권위원회 내정자도 주목을 받았다.
 
원칙주의자 정평
다양한 사건 다뤄 
 
이 내정자는 판결문을 통해 “법관에게는 소수자 보호라는 핵심 과제가 있어 절대권력자가 진실에 반하는 요구를 해도 소수자를 보호해야 한다”며 “극심한 불이익이 예상되더라도 진실을 밝히고 지켜내야 하는 것이 법관의 의무지만 이를 지키지 못했다”며 선배 판사들을 대신해 사죄했다. 이 판결은 이 내정자가 30년을 판사로 재직하면서 ‘원칙주의자’로서 소신 있게 판결을 내려온 그의 모습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이 내정자는 충북 영동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80년 사법시험 제22회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12기로 법조계 생활을 시작했다. 1985년 서울지법 의정부지원 판사를 시작으로 부산고법 판사, 서울고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수원지법 부장판사, 서울지법 부장판사, 특허법원 수석부장판사,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원장을 거쳐 서울중앙지법원장에 임명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은 법관이다. 지난해는 대법관 후보자로 추천되기도 했다.  이예림(31·사법연수원 40기) 울산지법 판사가 딸이다. 
 

법조계 내부에서도 ‘자상하고 균형감각을 갖춘 선배’ ‘사회적 약자의 의견을 경청하고 소통에 뛰어난 법관’으로 정평이 나 있다. 행정·입법·사법부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관으로 핵심가치인 인권을 수호하는 인권위원회의 수장으로는 적격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다뤘던 사건의 스펙트럼도 넓다. 서울고등법원 형사부장으로 있을 때는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과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 등 굵직하고 까다로운 항소심 재판을 원만하게 진행했다. 
 
미국 대학 연수로 쌓은 해외 법령 지식을 바탕으로 재판연구관 시설 비교법연구회 간사로 활동했다. 특히 지적 재산권 분쟁의 국제법적 문제에 관해 전문가로 꼽히며, 지적재산권을 주제로 40여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로 있을 때는 로스쿨 실무수습생과 재판연구원의 첫 선발을 무난히 지휘해 사법행정 능력도 인정받았다. 
 
지난 20일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은 오늘 국가인권위원장에 이성호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내정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이 내정자는 서울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와 서울남부지방법원장을 역임하는 등 약 30년 동안 판사로 재직하면서 인권을 보장하고 법과 정의, 원칙에 충실한 다수의 판결을 선고했고, 합리적 성품과 업무 능력으로 신망이 높다”고 인선 배경을 밝혔다. 이어 “이 내정자는 인권 보장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탁월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인권위원회를 이끌 적임자로서 인권위원회의 발전과 대한민국의 위상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평판 나쁘지 않지만
인권전문가 아니다
 
하지만 청와대의 이번 인선에 대해 시민사회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청와대가 또다시 밀실 인선을 하면서 인권위원장 후보 자격을 검증할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다. 
 
인권단체로 구성된 ‘국가인권위 인권위원장 인선절차 및 투명성 확보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는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단체는 인권위원장 인선절차와 투명성 확보를 위해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국제민주연대, 인권정책연구소, 성소수자차별 반대 무지개 행동 등 10여개 시민단체들이 구성한 조직이다. 연석회의는 “그동안 인권위원장 인선절차를 마련하라는 국내외 인권단체 요구에 응하지 않다가 갑자기 위원장을 내정했다”고 비판했다. 
 
다수의 인권·시민사회단체는 ‘인권위원회의 독립성은 인권위원 선출의 독립성에서 온다’며, 그간 인권위원장을 비롯한 인권위원 선출 절차 마련을 요구해왔다. 지난 4월에는 연석회의를 구성하고 청와대, 국회, 대법원에 ‘신임 인권위원장 및 인권위원 선출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인권위원 선출 절차를 마련하라는 요구는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의 경고를 따른 것이기도 하다. 
 

ICC는 2015년 3월 인권위원회 등급을 보류하며, 한국 정부가 인권위원장을 선임할 때 △공석을 널리 공고할 것 △다양한 사회계층 및 교육 배경을 지닌 지원자의 수를 최대화 할 것 △지원, 심사 및 선출 과정에 있어서 광범위한 협의 및 참여를 도모할 것 △사전에 결정된 객관적이며 공개된 기준으로 지원자들을 평가할 것 등을 이행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또 그쪽에서…” 시민단체들 비판 목소리
청와대 밀실 인선·후보 자격 검증 논란
 
ICC는 지난 2014년 3월, 10월도 등급심사를 보류했다. 위원 선출 기준을 정립하지 않고, 심사 및 선출 과정에 광범위한 협의와 참여를 증진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3회 연속 등급 보류는 사실상 강등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인권 전문가들의 얘기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가 또다시 밀실 인선을 한 것은, 인권위원회 위상을 더 이상 추락하지 않게 하기 위한 시민 사회와 국제기구의 노력을 수포로 돌린 것이라는 지적이다. 연석회의 관계자는 “청와대에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시민사회와 함께 후보자를 정할 것을 촉구했지만, 이날 인선이 있기까지 연락 한 통 받지 못했다”며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내정자가 인권위원장으로서 자격이 충분한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독립 기관이지만, 대통령이 임명권을 갖는다. 하지만 현직 법원장을 차출한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직속기관인 감사원장에 현직인 황찬현 전 서울중앙지법원장을 차출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삼권 분립 훼손 논란이 일었다. 대통령이 지명한 이 내정자가 바로 황찬현 원장의 후임이었다.
 
“인선절차 없다”
입맛대로 내정
 
이 내정자가 인선된 것에 대해 법원공무원들까지 들고 일어났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는 “청와대가 현직법관에게 인사권을 행사한 것과 다름없어, 삼권분립의 헌법정신 훼손을 우려한다”면서 이번 사태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 발표를 요구했다. 
 

법원본부는 이명박정부 이례로 고위법관의 행정부 고위관료 임용이 하나의 패턴처럼 굳어져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금까지 고위법관들이 행정부 고위관료로 간 사례를 보면, 2008년 김황식 대법관 감사원장 지명, 2013년 황찬현 서울중앙지방법원장 감사원장 지명, 2014년 최성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방송통신위원장으로 내정 임명 등이 있다.
 
법원본부는 “사법부의 독립은 법관 인사의 독립과 판결의 독립이 그 핵심이라 말할 수 있다”며 “그러나 현 정부는 2013년부터 해마다 현직법관을 행정부 고위 관료로 임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것은 청와대가 현직법관에게 인사권을 행사한 것과 다름없다. 사법부 독립을 명백히 침해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권위원회가 제3의 사법기구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인권위원회에 법조인이 너무 많아서다. 현재 인권위원회의 위원 11명 가운데 법조 출신이 8명이다. 상임위원 4명 중 3명이 법조인으로 구성돼 있다. 사회적 다양성을 대표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내정자의 전문성도 논란이 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5조 2항에 따르면 “위원은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중략) 인정되는 사람 중에서 다음 각 호의 사람을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판검사 출신 가득한 인권위
추락한 위상 되찾을지 의문
 
하지만 이 내정자는 법률 전문가지 인권전문가는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로써 인권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는지도 알려진 게 없다. 청와대가 이 내정자를 인권위원장으로 인선했을 때 어떤 근거로 추천했는지 의문이다. 이 내정자는 수락한 근거가 무엇인지도 의뭉스럽다며 입 모아 말한다.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명숙 집행위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인권은 법을 뛰어넘어 사람의 권리와 존엄을 더 옹호하는 가치를 잣대로 명가해야 한다”며 “실정법에 한정해서 평가하는 그런 편협한 시각을 벗어나야 하는 게 중요하다”며 법조인 인선에 대해 비판했다.
 
박 대통령의 법조인 사랑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꾸릴 때부터 나타났다. 김용준(77·고시9회) 전 헌법재판소장을 위원장으로, 안대희(60·7기) 전 대법관을 정치쇄신특위위원장으로, 판사 출신인 진영(65·7기) 새누리당 정책위원장을 부위원장으로 기용했다. 
 
대통령 취임 후에는 김기춘(76·고시 12회) 전 법무부 장관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검찰 출신인 정홍원(71·4기) 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국무총리로 임명했다. 지난해 4월에는 법원장을 마치고 재판업무에 복귀한 최성준(58·13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방송과 통신·미디어 정책을 총괄하는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했고, 지난달에는 정부의 첫 법무부장관으로 2년3개월간 장수한 황교안(58·13기) 장관을 국무총리에 발탁했다.

또 법조인 사랑
인사청문회 고비
 
현 정부 들어 법조인 중용이 계속되는 이유는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에 잘 부합하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또 판·검사 등 오랜 공직 경험과 법조인으로서의 절제된 삶으로 다른 직역에 비해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가 수월하다는 점도 대통령이 법조인을 선호하는 이유로 꼽힌다. 한편 국가인권위원장 임기는 3년으로 1회에 한해 연임이 가능한다. 장관직에 준하기 때문에 국회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여야는 오는 8월11일 이 내정자의 후보 인사청문회를 실시할 예정이다. 
 
 
<min1330@ilyosisa.co.kr>
 
 
[이성호 내정자는?]
 
▲충북 영동
▲서울 신일고
▲서울대 법대
▲서울지법 의정부지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지법 부장판사
▲특허법원 수석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원장
▲서울중앙지법원장
 

<기사 속 기사> 추락한 인권위 '어제와 오늘'
 
전 세계에 100개가 넘는 나라에 국가인권기구가 있다. 1993년 채택된 파리원칙에 따라 독립적인 기구로서 해당 국가의 인권증진을 도모하고, 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은 김대중정부 시절인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했다. 인권위는 그간 국가 권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왔다. 노무현정부 시절이던 2003년엔 이라크전 파병에 대해 반대 견해를 밝히며 정부에 신중히 판단할 것을 권고했다. 비록 실현되지 못했지만 인권위가 독립기구로서 역할을 다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후로도 인권위는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2004)와 사형제 폐지(2005),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인정과 대체복무제 입법 권고(2005) 등 때마다 제 목소리를 냈다. 덕분에 2007년엔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부의장국에 오르는 등 세계적인 모범 사례로도 소개됐다. 
 
하지만 2008년 보수 정권의 등장 이후 국가인권위원회는 권력의 인권침해에 대해 침묵하고 방조하기 시작했다. 
 
이명박정부 출범과 함께 급격하게 인권위원회 위상이 추락했다. 특히 2009년 현병철 위원장 취임 후 인권위가 만신창이가 됐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현 위원장은 내정자 시절부터 낙하산 인사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도마 위에 올랐다. 또 스스로 “인권에 대해 잘 모른다”고 실토했을 만큼 인권 경력이 전무해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이명박 대통령은 인사를 강행했다. 
 
그동안 현병철 인권위원회 체제는 이명박정부 때 ‘피디수첩 사건’ ‘총리실 민간인 사찰 사건’ 등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며 인권 침해 문제에 눈을 감았다.
 
또 온 국민을 비통에 잠기게 한 세월호 참사와 헌정사상 초유의 정당해산, 집회 현장에서의 경찰 채증 등 정부에 불리한 인권 사안을 의도적으로 보고서에서 누락시킨 인권위원회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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