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맥주도 풀지 못한 ‘카스 미스터리’ 막후

2010.06.15 09:35:26 호수 0호

진한 약품 냄새 나지만 원인은 몰라

맥주의 계절이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후텁지근한 날씨로 맥주가 상한가인 요즘 월드컵 대목까지 겹쳐 그 인기가 더하다. 그러나 그만큼 맥주로 인한 소비자 피해도 늘고 있다. ‘이상한 물질이 떠다니고, 불쾌한 냄새가 진동한다’는 호소가 대부분이다. 평소 맥주를 즐기는 마니아라면 한번쯤 겪어봤을 법하나 원인과 책임 규명이 쉽지 않아 소비자만 골탕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매번 흐지부지 되는 ‘불량 맥주’논란. 최근 벌어진 한 사례를 통해 다시 한 번 짚어봤다.

생맥주서 가래 같은 이물질…‘혼탁 현상’ 결론
짙은 화장품향 설명 못해 “과학적 규명 어렵다”


경기도 용인에 살고 있는 민모씨는 지난달 18일 오후 9시께 스트레스를 풀려다 오히려 기분이 상했다. 집에서 치킨과 함께 배달시킨 생맥주가 말썽이었다. 민씨와 그의 부인은 페트병에 담긴 맥주를 컵에 따라 무심코 한 모금씩 마셨다. 그러나 민씨 부부는 맥주를 모두 들이켜고 나서야 이상한 맛을 느꼈고, 이내 페트병 속 맥주를 본 뒤 화들짝 놀랐다. 마치 휴지를 물에 풀어놓은 듯한 하얀색 불순물이 가득했다.

무심코 한 모금씩…
곧바로 구토 증세



냄새는 더 심했다. 구토가 날 정도의 짙은 화학약품 악취가 진동했다. 민씨는 곧바로 배달 가게로 항의 전화를 했고, 업주가 달려와 정체불명의 이물질과 불쾌한 냄새가 나는 맥주 상태를 확인했다. 민씨는 “맥주에 둥둥 떠다니는 이물질은 한 모금을 마셨는데도 입에 남을 만큼 많았다”며 “화장품을 연상케 하는 지독한 냄새는 더 참을 수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한 잔을 마신 후 복부 통증과 메스꺼움 증세를 느껴 화장실을 수 차례 왔다 갔다 하는 등 견딜 수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의 맥주는 오비맥주가 만든 ‘카스 생맥주’다. 이를 공급 받아 민씨에게 판매한 업체는 전문 프랜차이즈 브랜드인 ‘훌랄라치킨’이다. 민씨는 다음날 오비맥주와 훌랄라치킨에 정식으로 민원을 제기했지만, 두 회사는 이구동성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오비맥주는 훌랄라치킨의 관리 소홀을, 훌랄라치킨은 오비맥주의 원재료를 의심했다. 민씨는 이틀 후 오비맥주로부터 자체 분석한 결과를 통지 받았다. 민씨는 앞서 성분 조사 의뢰를 위해 자신이 마신 생맥주통(케그)의 보관을 업주에게 당부했지만, 오비맥주 유통 담당자는 다짜고짜로 케그를 수거해갔다. 그러나 이 통지문 서두엔 ‘고객께서 분석 의뢰한 제품에 대해 당사가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라고 적혀있다.

오비맥주가 일방적으로 수거해간 제품을 마치 고객이 의뢰한 것처럼 허위 표시한 대목이다. 이 통지문에 따르면 오비맥주 이천공장에서 분석한 샘플은 개봉된 상태로 약 1/5 정도 남아 있었다. ‘관능검사 결과 신맛, 화장품 냄새 등의 특이한 이취는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일반검사 결과도 전반적인 맥주의 품질을 나타내는 알코올, 잔당, 색도, pH(수소이온농도지수) 등이 정상적인 수준을 보였습니다.’

오비맥주의 조사를 믿지 못한 민씨는 당일 배달된 맥주의 성분 분석을 다시 의뢰했고, 일주일 뒤 오비맥주로부터 2차 통지문을 받았다. 결과는 1차 때와 다소 다르게 나왔다. ‘소비자가 보관 중이던 맥주가 다른 통으로 담겨지고 개봉된 상태로 오랜 시간이 경과돼 접수 당시 이미 산화 및 2차 오염이 상당히 진행됐습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현미경 검사 결과 잡균이 관찰됐습니다. 알코올, 잔당, 색도, pH 등의 일반분석 결과 1차 분석한 생맥주통의 술과는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색도의 경우 혼탁으로 높아졌습니다.’

오비맥주 측은 하얀색 불순물에 대해 ‘혼탁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케그에 이물질이 들어갈 확률은 거의 없지만 케그 외부의 온도변화가 심하면 하얀 덩어리 모양의 혼탁이 발생하게 된다”며 “소비자들이 가끔씩 혼탁을 내용물의 변질 또는 부패한 불순물로 잘못 알고 회사에 클레임을 제기하는 사례가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혼탁은 이물질이 아닐 뿐더러 인체에도 무해하다”고 확신했다.

또 현행법상 주류 제조업체들은 소주나 맥주에서 신체를 상하게 하거나 혐오감을 주는 이물질이 발견됐을 때 반드시 국세청에 자진 신고해야 하지만, 오비맥주 측은 “혼탁은 자진신고 대상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맥주의 혼탁(Haze)은 폴리페놀, 탄수화물, 단백질, 당분, 유기산성분 등 맥주 자체의 성분들이 혼합 응고돼 유기물 덩어리를 만들어 내는 현상이다. 급격한 온도 변화를 겪은 맥주에서 발견되는데 인체엔 전혀 해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맥주 혼탁엔 미생물이 원인이 되는 생물적 혼탁과 폴리페놀·단백질 복합체가 원인인 비생물적 혼탁으로 나뉜다. 이중 비생물적 혼탁으로 분류되는 ‘동결혼탁’이 발생하면 휴지조각을 잘게 찢어 놓은 듯한 모양의 입자들이 용기 밑바닥에 가라앉거나 윗부분에 떠다니기도 한다는 게 주류업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10년 근무하면서   
이런 냄새는 처음”

국세청 관계자는 “제조·보존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진 맥주는 유통기한 내에 혼탁 되는 일이 없지만 원료 배합이나 제조공정에 문제가 있거나 맥주 보존 상태가 적절하지 않으면 혼탁을 일으킬 수 있다”며 “동결혼탁의 경우 맥주 성분인 대맥 배유세포의 세포벽을 구성하는 베타글루칸끼리 응집해 침전물이 되는 것으로 맥주의 거품·향이 변해 상품가치가 떨어지지만 인체에 유해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오비맥주 측은 혼탁과 달리 화장품 등 진한 화학약품 냄새에 대해선 이렇다 할 이유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민씨에게 배달된 맥주를 수거해간 오비맥주 유통 담당자는 “10년 가까이 주류업체에 근무하면서 종종 이취 클레임이 들어와 직접 현장에서 확인해 봤으나 이런 냄새는 처음 맡아본다”며 “조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맥주는 변질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조·유통 과정의 외부 요인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오비맥주의 자체 분석 결과도 다르지 않다. 후각으로 감지되는 이취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오비맥주 측은 “소비자가 문제를 제기한 맥주는 내용물 분석상 정상적인 제품으로 판단되지만 맛 이상, 화장품 냄새의 정확한 원인 규명은 어려운 실정”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어 “본사 연구소는 최첨단 전문 장비를 갖추고 있지만 이취에 대한 정확한 근거를 찾기엔 모자란 부분이 없지 않다”며 “정부 등을 비롯해 국내 다른 연구소도 마찬가지로 이취를 검사할 수 있는 마땅한 장비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번 이물질·이취 논란의 원인이 뭘까. 오비맥주와 훌랄라치킨은 일단 여과기, 냉각기, 라인, 압력 등 매장의 생맥주 기계 결함은 아닐 것이란 데 의견을 모았다. 업주가 민씨의 항의를 받자마자 다른 케그로 교체해 시음한 결과 내용물과 향에서 별다른 이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업주는 “평소 맥주라인의 관리를 철저하게 한다”고 자신했다. 이는 두 업체의 영업사원들도 인정한 사실이다.

오비맥주-훌랄라치킨 ‘책임 공방’
“아무런 문제가 없다” 서로 떠넘겨


기계 결함을 뺀 나머지 추정은 맥주 자체의 문제 또는 맥주를 담은 페트병으로 압축된다. 이를 두고선 양사의 입장이 엇갈린다. 오비맥주 측은 페트병을 지목했다. 회사 한 임원은 “생맥주가 소비자에게 전달될 때 담긴 용기 등에 의한 오염으로 맥주 맛에 변화를 준 것으로 보인다”며 “영업사원을 통해 업주가 일반 생수통을 재활용해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주장했다.

업주는 가맹점 본사에서 납품하는 페트병 대신 일반 생수통을 사용한 점을 인정하면서도 위생에 자신 있다고 맞받아쳤다. 나아가 카스 내용물의 변질을 지적했다. 그는 “다른 음료통이 아닌 생수통을 물만 빼고 다시 사용한 것은 맞지만 수차례 흐르는 물로 깨끗이 씻은 후 기름기가 없는 곳에 엎어 놓아 자연히 말려 청결을 유지했다”며 “이번에 항의했던 손님 외에 두 명의 홀 손님이 같은 케그에서 뽑은 맥주를 마셨는데 맛이 이상했는지 거의 다 남기고 나갔다”고 반박했다.

오비맥주는 이물질 논란과 이취 시비로 곤욕을 치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들 의혹도 원인 불명으로 흐지부지 마무리된 경우가 많다. 지난해 3월 양재동 소재 한 식당에서 카스 병맥주를 주문했던 김모씨는 맥주에서 이물질과 함께 약품이 섞인 듯한 냄새를 심하게 느끼고 오비맥주에 신고했다. 오비맥주 측은 “해당 제품을 확인했지만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생쥐깡’, ‘칼날 참치’등의 식품 사고가 잇따르던 지난 2008년 4월 강릉의 한 식당 주인인 이모씨 역시 카스 병맥주에서 뿌연 부유물 등을 발견해 파문이 일었다. 또 ▲2004년 9월 모 제약사의 위장약 ▲2007년 12월 수첩만한 종이 ▲2008년 6월 2∼3cm가량의 검은 덩어리 등이 카스에서 나와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바 있다. 오비맥주는 그때마다 성의 없는 태도와 “회사는 책임이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해 소비자의 원성을 샀다.

최첨단 전문 장비도
정확한 근거 못찾아

급기야 지난해 7월엔 “맛이 이상하다”는 소비자들의 항의가 끊이지 않자 해당 제품인 ‘오비 블루 1.6ℓ페트’에 이어 ‘카스 아이스라이트 1.6ℓ페트’수만 병을 공식 리콜조치 없이 직원들을 동원, 몰래 수거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오비맥주는 “제품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만약을 위해 회수했다”고 해명했지만, 명확한 원인은 물론 소비자 피해 구제, 재발방지 대책 등 소비자들이 납득할 만한 언급 없이 ‘사건 덮기’에만 급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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