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현대사 산증인 최환 전 5·18 특별수사본부장

2015.05.18 10:43:02 호수 0호

“적당 하면 편하지만 역사발전이 없죠”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이 지은 동명의 책 이름처럼 정의에 대해 수없이 질문을 던진 법조인이 있다. 최 환 전 5·18 특별수사본부장은 현직 검사로 있을 당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뇌물수수 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담당해 진실을 밝힌 대한민국 현대사의 산증인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중 자행된 신군부의 학살은 다신 일어나선 안 되는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1980년 일어나 올해로 35년이 지난 지금,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내란죄와 뇌물죄 수사가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그때 최 환 전 서울지검장은 5·18 특별수사본부장에 임명돼 수사를 총괄하면서 진실을 밝힌 주역이다. 결국 1997년 대법원에서 내란죄 및 뇌물죄가 확정돼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이라는 헌정사상 유래 없는 판결이 나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다음은 <일요시사>와의 일문일답.

“계엄령부터 실수”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곡으로 지정하는 과정에 잡음이 많습니다.
▲ 평가가 여러 가지로 나뉩니다만 전 곡명을 ‘광주의 노래’로 바꿔 부른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노래가 분명 오해의 소지는 있습니다. 가사 중 ‘따르라’라고 하는 부분이 선동으로 해석될 수 있죠. 그러나 광주 쪽에서는 5·18 추모 행사 때 그 노래를 부르길 원합니다. 광주사람들이 욕심 부리는 게 아닙니다.

이 노래는 1981년에 한 남학생과 여학생을 위해 영혼결혼식을 시키는 과정에서 바친 헌가입니다. 그런데 가사를 보면 시위할 때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으니까 운동권에서 사용을 한 것이죠. 그 노래를 부르며 시위하는 사람을 저도 처벌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국가 보안법이나 불법 폭력시위를 해서 잡아간 것이지 그 노래를 부른다고 처벌하진 않았습니다.

대법원 판례를 찾아봐도 노래가사나 곡명에 문제가 있다고 판결난 사례가 없습니다. 형사 처벌 받은 적도 없고요. 그러니 5·18 행사할 때 마지막 곡으로 부르면 되는 것이죠. 보훈처에서는 제창으로 하지 말고 합창단이 앞으로 나와 하면 안 되냐고 하는데 마찬가지 아닌가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일이 다가왔습니다. 당시 신군부의 행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광주에 계엄령을 선포했죠. 그럼 광주에 있는 시민들이 광주 잡으려고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국민을 안심시키고 생업에 만전을 기하고, 그것만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게 지도자의 길이고 통치자의 길입니다. 그런데 계엄령을 선포하니까 저항권을 발휘한 것입니다.

국민의 자연법적인 저항이 안 일어나도록 예방할 수 있어야 통치인의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정치인도 똑같죠. 결론적으로 ‘정의’ ‘인권’ ‘진실발견’ 모두 정의가 관통하는 것인데 정의로운 방법으로 인권을 보호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1995년 서울지검장 재직 당시 특별수사본부장을 맡아 전두환 전 대통령을 구속기소 했습니다. 도중에 북한군 남파, 폭동 등이 억측이라는 것도 밝혀내셨고요.
▲희생자들의 오해가 없도록 수사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수사를 철저히 해야 이분들이 납득을 하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희생자를 살릴 순 없지만 우리가 진심으로 수사하니 유가족들도 납득을 하시더군요. 당시 북한에서 공작원을 남파했다는 억측이 있었지 않습니까. 우리가 확인하니 그런 건 없었습니다.

-전직 국가원수의 부정비리를 파헤치는 극적인 수사였습니다. 힘드시진 않으셨나요?
▲그 수사 이외에도 주위에서 ‘적당히 하면 되지 않냐’고 말합니다. 5·18 수사도 그렇죠. 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직 이견이 있습니다. 우리 군이 왜 가야됐으며 결국 수습이 안 되니 발포한 거 아니냐는 거죠. 그 분들은 아직도 절 싫어합니다. 적당히 수사할 수도 있는 문젠데 왜 그렇게까지 했냐고요.

-최근 미 법무부는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재산을 몰수해 한국정부에 반환했습니다. 당시에는 국외재산이 없었나요?
▲뇌물죄 수사를 진행할 때는 국외재산이 없었습니다. 뇌물로 받은 돈을 검찰에서 모두 파악하고 있었는데 국외로 빼돌린 돈은 없었습니다. 나중에 사면·복권이 돼서 교도소 밖으로 나가니까 ‘다시 돈을 낼 필요가 없지 않나’라고 생각하고 여기저기 돈을 흩트린 것 같습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굵직한 사건 맡아 
내란죄·뇌물죄 수사 지휘…진실 밝혀

-추징금 추가 환수를 위한 첫째 덕목은 집요함이라고 말씀하신 적 있습니다.
▲추징금을 안 내기 위해 보통은 돈을 숨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요하게 달라붙어 받아 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중에 있는 거 고분고분 내지 않는 것도 요인이죠.

-정가에서는 5·18 기념일마다 정치 이슈로 사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이런 정치판에 대해 비리를 밝힌 검찰로서 해주실 말씀 있으신가요?
▲정치화시키는 행위를 하면 희생자들이 분노합니다. 희생자들 유족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는 경우는 없어요. 5·18 사건은 우리가 의혹 없이 수사를 했기 때문에 이슈로 사용하면 안 돼요. 수사 당시 시신을 못 찾았다는 유족들이 있었는데요. 당시 그 사람들과 직접 의심되는 현장으로 가 포크레인을 동원해 함께 시신을 찾았습니다. 검찰이 나서서 그렇게 하니 의혹이 사라졌죠. 유족과 똑같은 마음에서 수사를 한다는 것을 알아주신 겁니다.

-오로지 법조인으로서 살아오셨습니다. 참 법조인이란 평가가 많은데요. 그런 외부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융통성 없는 사람’이 나에 대한 평가입니다. 좋은 의미는 아니죠. 세상은 바뀌고 정치인·지도자도 바뀌고 그러니까요. 전 지금까지 살면서 세 가지를 하지 않았습니다. 검사 그만둔 지 16년째지만 전관예우를 안 받았고요. 로펌도 안 만들었습니다.
 

재벌들 기업에 장학생으로 들어가지 않았죠. 장학생이라고 하면 알겠죠? 현직에 있을 때 뒷바라지하고 은퇴하면 법률고문에 사외이사로 활동하는 것 말입니다. 그걸 하지 않았어요. 이 세 가지를 하면 내가 정의롭지 못하게 되잖아요. 뭐든 적당주의로 가면 편합니다.

하지만 시대상에 항상 그런 사람들만 있으면 역사발전이 없지 않을까요. 검사도 검사장을 하면 사회에 기여하는 점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역사의 법정에 설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피고인 신분으로 섰을 때 내 삶과 생각을 피력해서 국민의 박수를 받을 수 있다면 성공한 사람이 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국민 박수 받으면 성공”

-확고한 신념을 가진 계기가 있나요?
▲초등학교 2학년 때 6·25가 났습니다. 그때 선친께서 구미역장을 하셨죠. 피난길에 올랐는데 역으로 마지막 열차가 들어왔어요. 그 열차는 역에 있는 사람을 다 태우고 가야됐어요. 그때 선친께서 우리 가족들, 피난민들, 역원들 다 태울 때까지 열차를 타지 않으셨습니다. 역에는 아버지만 계셨죠.

그러고 나서 열차가 출발할 때 마지막에 타시더라구요. 당시 주위에서 ‘역장님 대단히 수고하셨다. 총알에 희생당할 수 있었는데’라며 사람들이 고마워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역장으로서의 당연한 임무입니다’라고 대답하셨어요. 그 말 듣고 느낀게 많습니다. ‘남의 윗사람이 되려면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죠.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일요시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chm@ilyosisa.co.kr>


[최환 전 본부장은?]

▲충청북도 영동 출생
▲서울대학교 사법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대검찰청 공안부장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부산·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
▲최환 법률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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