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이 꾸신 돼지꿈, 오뉴월 개꿈 됐다

2010.06.08 08:47:58 호수 0호

6·2 지방선거에 뛰어든 기업인 희비

6·2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기업인 출신 출마자들이 대거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동안 숨겼던 ‘정치 야망’을 드러낸 이들은 각 기업에서 쌓은 경영노하우를 지자체 행정에 접목하면 지방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논리로 표심 잡기에 나섰지만 전체적으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처참히 무너진 진영도 한두 곳이 아니다.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을 중심으로 기업인 출신들의 당락 현황을 정리해봤다.

CEO 출신 출마자 성적표 초라…곳곳서 줄줄이 낙마
안상수·현명관·박해춘 ‘경영인 3인방’ 주저앉아



6·2지방선거 후보자(교육감·교육의원 제외)의 직업을 분석한 결과 기업인 출신은 3.2%로 나타났다. 정치인(52.6%), 공무원(18.2%), 전문직(4.1%), 대학교수(5.3%) 등에 비해 낮은 비율이지만, 각 정당은 ‘CEO 모시기’에 각별한 공을 들였다. 자치단체장은 지방 살림을 총괄하기 때문에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경영 노하우와 마인드, 리더십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한 당직자는 “기업인 출신들은 다른 직업군보다 적은 인원이지만 만만찮은 경쟁력을 가진 정예 후보군으로 꼽힌다”며 “대중적 인지도는 물론 외자 유치, 지역 개발, 일자리 창출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필요한 소양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유권자의 인식이 높아 선거에서 유리하다”고 말했다.

각 정당의 ‘러브콜’을 승낙하거나 그동안 숨겼던 ‘정치 야망’을 드러낸 기업인 출신 출마자들은 당선의 꿈을 품고 이번 지방선거에 도전장을 던졌다.

기업 경영노하우
이제 안 먹히나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스타급 CEO 출신들을 비롯해 지방 군소업체 ‘사장님’들까지 대거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들은 기업에서 쌓은 경영노하우를 지자체 행정에 접목하면 지방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논리로 표심 잡기에 나섰지만 전체적으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표적인 인물은 안상수,  현명관, 박해춘 ‘3인방’이다. 세 사람은 각각 인천시장, 제주도지사, 충남도지사 등 광역단체장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쓴맛을 봤다.

인천시장 3선에 도전한 안 후보(한나라당)는 여론조사에선 10% 포인트 안팎의 지지율 차이로 송영길 후보(민주당)를 앞섰지만, 실전에서 44.4%의 득표율로 송 후보(52.7%)에게 패했다.

서울대와 미국 트로이주립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은 안 후보는 동양증권 이사와 부사장, 동양선물 미국 시카고 현지법인 대표, 데이콤 이사 등을 거친 후 동양그룹 종합조정실 사장을 지냈다. 그는 증권회사 재직 시절 2000만원을 투자해 10배에 이르는 20억원을 벌어들이는 등 ‘투자의 귀재’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지난 1999년 국회의원(계양·강화 갑) 재보궐 선거 때 당선된 뒤 2002년부터 민선 3·4기 인천시장을 지냈다.

4년 전 제주도지사 선거에서 낙선했던 현 후보(무소속)는 이번 선거에서 설욕을 노렸지만 또다시 실패했다. 현 후보는 우근민 후보(무소속)와 개표 막판까지 치열한 접전 끝에 0.8% 포인트 차이(40.6% : 41.4%)로 아깝게 무릎을 꿇었다. 현 후보는 동생이 선거운동원에게 금품을 살포하려 한 혐의로 구속된 ‘돈봉투 사건’으로 한나라당 공천자격을 박탈당하면서 지지율이 급락했다.

현 후보는 ‘삼성맨’이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1966년 행정고시(4회)를 통해 감사원에서 공직생활을 하다 1978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호텔신라 대표이사와 삼성물산 회장, 그룹 회장 비서실장 등을 지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 부회장을 역임한 이력도 있다.

충남도지사에 출마한 박 후보(한나라당)는 처참히 무너졌다. 안희정 후보(민주당·42.2%)보다 무려 24.4% 포인트 차이로 뒤졌다. 2위 박상돈 후보(자유선진당·39.9%)에 비해서도 2배 이상 낮은 지지율을 얻는데 그쳤다. 당초 이들과 불꽃 튀는 접전이 예상됐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연세대 수학과를 나온 그는 보험(안국화재보험)·카드(LG카드)·은행(우리은행) 등을 이끈 금융 CEO 출신이다. 출마 전까지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을 맡았다. 특히 박 후보는 구조조정 전문가로 유명하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LG카드 사장 재임 시절 2년 연속 1조원대 흑자를 달성해 매각을 성사시킨 전력이 있다.

아깝게 떨어지거나
처참히 무너지거나

현 후보와 박 후보는 거물급 CEO 출신인 만큼 ‘부자 출마자’로 시선을 끌기도 했다. 지방선거에 출마한 광역단체장 후보 중 재산과 납세액 순위에서 나란히 1, 2위를 기록한 것. 현 후보는 재산이 89억6200만원에 달했고, 박 후보가 64억6500만원으로 뒤를 이었다. 납세액도 현 후보가 43억52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박 후보(14억3000만원) 순이었다.

기초단체장 쪽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상당수 CEO 출신들이 기초단체장 입성에 나섰지만 대부분 미끄러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6·2 지방선거에 출마한 40여 명의 CEO 출신자들 중 기초단체장 당선자는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앞서 예비후보로 등록한 80여 명의 CEO들까지 감안하면 15%를 밑도는 당선률이다.

서울 중구청장에 출마한 이학봉 후보(무소속)는 4.4%의 득표율로 4위에 머물렀다. 1위 박형상 후보(민주당·35.5%)와 무려 30%가 넘는 지지율 차이를 보였다. 이 후보는 코리아오링·화신폴리텍 대표를 역임했다. 18대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 정책특보를 맡았으며, 지난해 2월부터 코레일유통 대표를 지냈다.

서울 은평구청장에 출마한 김도백 후보(한나라당·40.8%)는 김우영 후보(민주당·54.2%)에 패했다. 김 후보는 은평구 상공회의소 수석부회장과 태광식품 대표이사 출신이다.

서울 송파구청장에 출마한 성기청 후보(국민참여당)는 6.6%의 득표율로 3위에 그쳤다. 성 후보는 폰누리정보통신 대표였다.

경기도 각 시장·구청장실을 노크한 기업인 출신들도 거의 전멸했다.

한독건설 대표를 지낸 이윤희 후보(무소속)는 수원시장 선거에서 3.1%의 저조한 득표율로 낙선했다. 미도산업 대표 이춘성 후보(한나라당·33.3%), 미래C&R 대표 부창렬 후보(한나라당·38.9%), 한국경제TV 대표 류화선 후보(한나라당·38.9%)도 각각 오산시장, 군포시장, 파주시장 배지를 달지 못했다.

안성시장 선거에선 승원공업 부회장 한영식 후보(무소속·16.3%), 동아개발 이사 박석규 후보(무소속·7%), 길송건설 대표 이학의 후보(미래연합·2.5%) 등 기업인 출신 3명이 도전했으나 모두 떨어졌다. 인천 계양구청장도 K.1 회장 오성규 후보(한나라당·32.2%), 에코월드 대표 이병현 후보(무소속·2.5%), 콜투게더 대표 이병철 후보(무소속·2%) 등 CEO 3명이 다 고개를 떨궜다. 부평구청장과 서구청장 역시 각각 콤솔 회장 김현상 후보(무소속·6%)와 우성하이테크 대표 권중광 후보(무소속·7.4%)가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기업인 출신의 다른 지역 단체장 성적표도 별반 다르지 않다. CEO 명함이 초라할 정도로 줄줄이 깨졌다.

국내 굴지 화장품 회사인 한국화장품 사장과 부회장을 거친 김두환 후보(한나라당·29.4%)는 충북 증평군수의 꿈을 접어야 했다. 김 후보는 숙부인 고 김남용 회장이 창업한 한국화장품에 입사해 최고경영자에 이르기까지 45년 동안 기업인으로 한길을 걸어왔다.


김 후보 외에 충북에선 비전정보통신 대표 윤성종 후보(자유선진당·9.3%)와 충북택시 대표 김병국 후보(한나라당·33%)가 각각 제천시장, 청원군수에서 낙마했다. 충남에선 재호의료재단 이사장 안재호 후보(무소속·2.9%)가 금산군수에, 아세아페이퍼텍 고문 권문용 후보(국민중심연합·3.6%)가 연기군수에, 유일약품 대표 송영철 후보(한나라당·34.8%)가 논산시장에, 내몸에영농조합 대표 김봉수 후보(평화민주당·1.5%)가 부여군수에, 서룡 대표 최기택 후보(무소속·2.7%)가 당진군수에서 고배를 마셨다.

포스칼슘 상무이사 허대만 후보(민주당·18.9%)는 경북 포항시장에서 완패했다. 허 후보는 노무현 캠프 경북 선대본부 정책기획실장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문위원, 행자부 장관 정책특보로 활동하다 지난해부터 포스칼슘 상무이사로 재직했다. 포스칼슘은 지난 2월 포스코 계열사로 편입됐다.

“CEO 명함 무색”
무소속 출마 많아

이밖에 ▲경북 경주시장에 나눔캐터링서비스 대표 최병두(국민참여당·3.3%) ▲부산 중구청장에 캐논코리아파트너 대표 문창무 후보(미래연합·48.8%) ▲강서구청장에 대동철강 대표 김진옥 후보(민주당·20.4%)와 보고환경 대표 박광명 후보(무소속·4.5%) ▲강원도 춘천시장에 글로벌케이티 대표 유현규 후보(국민참여당·1.8%) ▲고성군수에 아모레퍼시픽 설악점 대표 윤승근 후보(한나라당·43.1%) ▲전북 정읍시장에 삼동 대표 허준호 후보(무소속·1.4%) ▲임실군수에 북성산업 대표 박영은 후보(무소속·3.5%) ▲고창군수에 대산양돈 대표 정원환 후보(무소속·26.8%) ▲전남 무안군수에 목포미래병원 이사장 양승일 후보(무소속·42.8%) 등이 야심찬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문턱을 끝내 넘지 못하고 좌절을 맛봤다.

자치단체장으로 변신에 성공한 CEO도 있다.

벽산그룹 부회장을 역임한 정종득 후보(민주당·43.7%)는 전남 목포시장 3선 고지에 올랐다. LG스포츠 대표, LG그룹 고문 출신의 어윤태 후보(한나라당·63.6%)는 부산 영도구청장 재선의 영예를 안았으며, 한국제강 회장 하성식 후보(무소속·49.7%)는 경남 함안군수에 당선됐다.

 또 ▲만구수산 대표 정만규 후보(한나라당·48.4%)가 경남 사천시장에 ▲세일기업 대표 원정희 후보(한나라당·52.5%)가 부산 금정구청장에 ▲대방무역 대표 윤승호 후보(민주당·44.8%)가 전북 남원시장에 ▲뉴크론 대표 임성훈 후보(민주당·40.3%)가 전남 나주시장에 ▲예천시외버스터미널 대표 이현준 후보(한나라당·46.2%)가 경북 예천군수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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