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 결정 박상옥 손익계산서

2015.03.30 11:06:24 호수 0호

계산기 두드리는 정치권, 후폭풍 고대하는 법조계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57일. 박상옥 대법관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개최 여부가 결정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두 달에 가까운 기간 동안 여야는 박 후보자를 중간에 두고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여왔다. 지리한 싸움 끝에 새정치민주연합은 결국 청문회 보이콧이라는 강경입장을 철회하고 4월7일 청문회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1월26일 임명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된 후 박상옥 대법관후보자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문제의 시발점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박 후보자 간의 연결고리가 발견되면서부터다. 당시 박종철 사건은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로 대표될 정도로 가혹한 공권력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리고 박 후보자는 1987년 당시 고문을 당하다 숨진 박종철씨에 대해 1차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였다.

한명숙 구하기?

박 후보자는 현재 박종철 사건을 축소·은폐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는 이미 <일요시사>를 통해서도 보도된 적 있다.

일단 박 후보자를 보는 정치권의 시선은 다양하다. 그가 청문회 전에 자진사퇴를 해야 된다는 강경론이 있는가 하면 당시 박 후보자는 박종철 사건을 담당한 검사였기는 하나 검사가 된 지 2년을 갓 넘긴 말단검사였다는 점을 들어 그의 잘못이라 말할 수 없다는 동정론도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내에 있는 강경론자들은 그의 자진사퇴만이 최선이라 주장한다. 지난 17일 서영교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인권의 최후보루이자 무죄·유죄인지를 판가름 해주는 대법관 자리에 당시 고문경찰 관련해 은폐·축소했던 담당 검사가 대법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스스로 용퇴를 결심하셔야 할 것이다”라고 결정을 촉구한 바 있다.

청문회 일정을 결정한 후에도 새정치연합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지난 25일 전해철 의원은 전체회의 자리에서 “청문회를 열기로 했다고 해서 박 후보자를 용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며 “청문회를 통해 철저히 검증할 것이다”고 밝혔다.

이날 전체회의는 인사청문회 실시계획서를 채택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런데도 청문회 개최를 끝까지 반대한 새정치연합 김기식 의원과 정의당 서기호 의원 등은 이날 회의에 불참했을 정도로 야권에서는 반대의견이 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야권의 움직임에 대해 여야 관계자들은 크게 두 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다. 명분론과 실리론이 그것이다.

명분론에 힘을 싣고 있는 한 정계 관계자는 일련의 청문회를 예로 든다. 그는 “이완구, 홍용표 등 이미 지난 청문회에서 야당은 힘없는 모습을 보였다”며 “(박 후보자의) 낙마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청문회까지 간다는 것은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까지 통과된다면 여당에 모두 승복하는 꼴이 된다”며 “(새정치연합의 입장에서 박 후보자 청문회는) 분명 4·29재보선 등 다가올 선거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민주화운동의 도화선과도 같은 박종철 사건이 가진 상징성을 고려한다면 야권의 자존심 문제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실리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주로 여당 인사들이다. 그들은 박 후보자 청문회 일정을 늦추는 새정치연합의 움직임에 ‘한명숙 구하기’ 의혹을 제기했다. 새누리당 권은희 대변인은 지난 23일 국회 정론관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아직 열리지 못하고 있다”며 “야당이 거부하는 진짜 이유는 한명숙 구하기가 아니냐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야 “자진 사퇴”, 여 “말단 검사였을 뿐”
변협 “서약서 써라”, 대법원 “월권행위”

이에 대해 처음 의혹을 제기한 사람은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대법원 2부는 그 한자리(박 후보자의 자리)가 비어 있다”며 “거기엔 2심에서 실형 2년을 선고받고 1년6월째 기다리고 있는 한명숙 뇌물사건이 있다. 야당에서 시간을 끄는 이유가 이것인가?”라고 지적했다.

현재 대법원 2부는 지난달 17일 신영철 전 대법관이 퇴임한 이후 결원이 생긴 상태다. 그리고 그 공석에 박 후보자가 임명된 것인데 김 의원은 한명숙 전 총리의 9억원대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건이 1년6개월째 최종 판결이 나지 않고 있는 상황을 지적, 새정치연합이 일부러 시간을 끄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하고 나선 것이다.

현재 청문회 일정이 잡혀 한명숙 구하기에 대한 의혹은 사그라들었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서 김성완 시사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청문회 거부에서 개최로 바뀐 새정치연합의 입장에 특별한 계기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김 평론가는 “제가 볼 때는 (입장을 바꿀) 이유가 별로 없다. 이전과 이후 상황이 바뀐 게 아무 것도 없다”라며 “제가 볼 때는 이렇게 어물쩍 청문회를 여는 게 오히려 그동안 정치적인 목적으로 청문회 개최를 거부했다는 걸 야당이 스스로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까지 든다”고 설명했다.

최근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은 박 후보자의 청문회 날짜가 잡히고 난 지난 25일 국회에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개업 포기 서약서’를 공문으로 전달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다.

공개된 한 변협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전관예우의 중심에 있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변호사 개업을 막기 위한 방안”이라며 “박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대법관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고자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들은 변협의 이러한 요구가 특별한 이유 없이 개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헤치는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변협의 움직임이 대법원을 흔들기 위한 전략이 아니냐며 비판한다.

대법원 흔들기?

실제로 대법원과 변협 간 싸움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한차례 변협이 ‘전관예우’를 막겠다고 차한성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신고서를 반려했기 때문이다. JTBC를 통해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한상훈 변협 대변인은 “전관예우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 바로 대법관들이 퇴직 후에 ‘도장값’ 명목으로 수천만원의 부적절한 수입을 올리는 것이다”고 반려 사유에 대해 밝혔다.

이에 대해 박주민 변호사는 JTBC와의 인터뷰를 통해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변호사법에는 개업 신고에 대해서 반려나 심사할 권한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따라서 변협은 권한 없는 행위를 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입장을 밝혔다.

변협의 요구에 국회는 난감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한 관계자는 “만약 개업 포기 서약서를 받아준다면 변협의 손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대법원의 손을 들어주는 꼴”이라며 “박상옥 대법관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눈치작전이 펼쳐지고 있다”고 밝혔다. 박 후보자에 대한 공방이 정치권을 넘어 법조계까지 번지고 있다.

 


<chm@ilyosisa.co.kr>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