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비보이 병역비리 <전모>

2010.05.11 10:10:17 호수 0호

무대에선 ‘춤꾼’ 의사 앞에선 ‘정신병자’

잊을 만하면 터지는 병역비리사건이 또 발생했다. 이번엔 유명 비보이그룹 멤버들이 주인공이다. 멀쩡하게 춤을 추던 비보이들은 정신질환자 행세로 군 면제를 받았다.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한 이들의 노력은 실로 눈물겨웠다. 한 달 간 정신병동에 입원을 하는가 하면 2년 동안 병원을 다니며 약물치료를 받기도 했다. 이들의 감쪽같은 연기는 함께 사는 가족들마저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수년 만에 낱낱이 드러난 이들의 행각은 그동안의 병역비리를 무색케 할 만큼 대담했다.

비보이그룹 T.I.P 멤버 9명 정신질환자 행세로 병역기피
완벽 정신질환 연기로 판정받은 뒤 입원, 약물치료 불사

2002년 ‘영국 UK 비보이 챔피언십’ 에서 한국 최초로 우승하면서 떠오르는 비보이 팀으로 각광받던 그룹 T.I.P. CF까지 출연하는 등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이 그룹의 멤버들에게는 한 가지 이상한 공통점이 있었다. 멤버 가운데 9명이 정신병에 걸렸고 그 것으로 인해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점.

엄마까지 동원된 병역비리



이 소문은 비보이들 사이에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급기야 경찰의 귀에 들어갔다. 같은 그룹의 멤버들이 같은 병으로 군 면제를 받았다는 것에서 수상한 기운을 느낀 경찰은 이들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밀은 밝혀졌다. 9명의 멤버들은 모두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정신병자행세를 했던 것이다.

가장 먼저 이 방법으로 군 면제를 받은 것은 황모(30)씨. 떠오르는 신예 비보이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황씨는 2001년 영장을 받는다. 비보이 선수로서는 황금기인 20대 초반에 군대에 가면 그 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진 황씨. 그때부터 군 면제를 받을 수 있는 방법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정신질환이 있는 것처럼 행세 하면 군대에 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황씨는 각종 의학 서적을 구입했다. 정신병자로 보이려면 관련 지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도 군 면제에 이용했다. 함께 병원에 가 자신의 증세를 증언해 줄 사람이 필요했던 탓이다.

이렇게 철두철미한 준비를 한 황씨는 2001년 8월 어머니와 서울 둔촌동의 한 병원을 찾았다. 의사 앞에서 황씨는 멍하니 먼 곳을 응시하는 등 정신질환자 연기를 했다. 황씨의 어머니도 의사에게 “오래 전부터 우울증을 앓던 아들이 요즘 헛것이 보인다며 집에만 있다”고 말했다.

이를 본 의사는 황씨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내렸다. 이후 한 달간 입원 치료를 받은 황씨는 병역처분 변경절차를 거쳐 2003년 11월 징병신체검사 결과 5급 판정을 받아 군 면제자가 됐다. 1998년 신체검사에선 1급 현역 입대 판정을 받았지만 기막힌 황씨의 연기로 결과를 뒤집은 것이다.

황씨의 비결을 전수받은 다음 타자는 박모(29)씨. 박씨 역시 왕성하게 활동하던 지난 2002년 군 복무 통지서를 받았다. 고민하던 박씨는 선배에게 솔깃한 이야기를 들었다. 정신질환자 연기만 하면 쉽게 군 면제를 받을 수 있다는 것.

결국 박씨도 불법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먼저 인터넷에서 정신질환 병역면제 기준을 확인한 박씨는 비교적 연기하기 쉬워 보이는 정신분열증을 선택했다. 그리고 서울의 한 국립병원 정신과에 찾아가 “헛것이 보이고 환청이 들린다”며 거짓증세를 말했다. 의사는 이에 정신분열증 판정을 내렸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황씨가 했던 것처럼 박씨는 한 달 동안 정신병동에 입원했다. 퇴원 후에도 한 달에 한번 정도 병원에 가 약을 받아왔다. 무려 2년 동안 병원에 드나든 박씨는 마침내 결실을 얻었다. 5급 판정으로 군 면제를 받은 것이다.

지난해에는 멤버 이모(25)씨가 선배들의 길을 따라 갔다. 이씨는 지난해 국내 최대 비보이 경연대회를 3개월 앞두고 영장을 받았다. 이 시점에서 입대하면 그 동안 연습한 것이 수포로 돌아갈 것 같아 두려웠던 이씨. 결국 이씨는 술자리에서 고민거리를 털어놨다. 이때 한 선배가 이씨에게 “정신병자 행세로 군 면제를 받을 수 있다”며 “나도 그렇게 해서 군대에 안 갔고 팀 안에 그런 사람이 여러 명 있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 눈이 번쩍 뜨인 이씨는 선배들이 했던 대로 정신병 관련 지식을 습득하고 어머니와 함께 서울의 한 정신병원으로 갔다. 이씨의 작전도 성공이었다. 의사는 “아들이 자꾸 환청이 들린다고 한다. ‘젊은 여자가 보인다’며 방 안에서 나오지도 않는다”는 어머니의 말과 이씨의 이상행동을 토대로 정신분열증 판정을 내렸다. 그 후 이씨는 선배들이 했던 대로 입원치료를 받은 뒤 군 면제를 받았다.

이들의 행각은 다른 멤버들에게도 퍼져나갔고 9명의 멤버가 면제와 공익근무 판정을 받았다. 정신분열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경계선지능 및 정신지체 등 병명도 다양했다. 범행 후 몇 년이 지나도록 병역비리 수사선상에 오르지 않았던 이들은 완전범죄를 저질렀다고 자신했다.

댄스대회까지 출전

하지만 이들의 범행은 결국 들통났다. 멤버 17명 가운데 9명이 정신질환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은 이들을 수사했고 모든 범행과정을 밝혀냈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서도 주변의 눈을 피해 외국 댄스경연 대회에 버젓이 출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멤버는 상을 받기도 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3일 이씨 등 3명을 병역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공소시효 7년이 지나지 않은 이씨 등은 재판에 넘겨져 5년 이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또 공소시효가 지난 6명은 형사처벌을 피했지만 병무청은 9명 모두 재검을 통해 병역 의무를 이행하게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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