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은 회장님이 무섭다

2010.05.11 09:22:18 호수 0호

STX그룹 오너-CEO 서로 눈치보는 사연

STX그룹의 오너와 전문경영인(CEO)간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강덕수 회장과 이희범 STX에너지·중공업 총괄회장이 주인공. 둘 다 서로 눈치를 보는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재계 ‘아삼륙’으로 소문난 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그 속사정을 캐봤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 3일 회장추대위원회를 열고 지난 2월 사의를 표명한 이수영 회장(OCI그룹 회장) 후임으로 이희범 STX에너지·중공업 총괄회장을 추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경총 추대위는 추대 배경에 대해 “사업장을 대표해 노동조합을 상대해야 하는 경총 조직의 특성상 신임 회장은 투명성과 도덕성을 갖춰야 하고 노사관계에 대한 이해 역시 높아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해 이 회장이 적임자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일방적 발표

그러나 이 회장은 거절했다. STX그룹은 경총 발표 3시간 뒤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이 회장이 경총 회장직을 수락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회장도 “회장직을 수락한 적이 없고 맡을 뜻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회장은 자신을 회장직에 추대한다는 경총의 발표가 나오자 크게 당혹스러워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경총의 새 회장 추대안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 회장이 고사한 진짜 이유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 회장이 내세운 외면적인 사유는 ‘업무 집중’이다.

이 회장은 “회사 업무에 전념하고자 경총 회장직을 수락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STX그룹에 몸담은 지 1년밖에 안된 상황에서 외부 일을 맡는 게 아직 이르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당초 에너지 부문에서 지난해 말 중공업 부문까지 맡아 업무 영역이 대폭 확대됐다.

이 회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공대 출신으론 최초로 행시(12회)에 수석 합격한 뒤 산업자원부 차관과 장관,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한국무역협회장 등을 거쳐 지난해 3월부터 STX 회장을 맡고 있다.


경총의 묵직한 현안도 이 회장에게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경총은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 2011년 복수노조 허용 등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한 상황이다.

다시 말해 신임 회장이 이들 난제를 모두 짊어 져야 하는데, 노사문제의 중대사인 만큼 해결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는 다른 기업인들이 경총 회장 자리를 기피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일각에선 이 회장이 그룹 오너인 강덕수 회장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경총이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을 회장으로 추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총은 1970년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조직에서 독립한 이후 국내 경제계를 대표하며 국가경제정책 수립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만약 이 회장이 이 자리에 앉게 되면 경제 5단체 가운데 2개 단체의 회장을 맡는 진기록과 함께 그만큼 파워가 커지는 셈이다.

강 회장으로선 ‘씁쓸’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강 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경총 부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대외 보폭을 넓히고 있다. 강 회장이 이 회장을 영입한 것도 자신의 본격적인 대외활동에 따른 기업 경영의 부담을 덜기 위한 의도로 해석됐었다.

이 회장 역시 강 회장과의 관계가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강 회장이 경총 부회장으로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경총 지휘봉을 쥘 경우 계열사 CEO가 협회장이 되고, 그 밑에 오너가 있는 기막힌 구도가 불가피하다.

더구나 경총은 이 회장 추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추대위 위원인 강 회장을 쏙 빼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어떠한 자문이나 양해도 구하지 않았던 것.

강 회장이 이를 먼저 알았다면 경총이 STX그룹 측과 사전 조율 없이 일방적으로 추대를 발표하는 해프닝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견해다. 물론 이 회장이 펄쩍 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경총 소속의 재계 원로들이 이 회장 영입을 위해 강 회장에게 ‘지원 사격’을 부탁하고 있지만 이미 경총의 발표가 끝난 뒤였다.

STX그룹 관계자는 “이 회장이 사전에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는데도 경총이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경총 측은 “원로들이 이 회장과 강 회장을 설득 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먼저 발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강 회장, 몰랐나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는 ‘절친’이라 더 주목된다. 각각 60세와 61세로 한 살 터울인 강 회장과 이 회장은 고향이 경북 안동과 선산으로 사실상 동향이다. 둘은 1990년대부터 기업 임원과 수출 담당 공무원으로 만나 20년 동안 비슷한 성격과 기호를 바탕으로 끈끈한 인연을 맺어왔다.

이 회장 영입도 이런 오랜 우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평소 이 회장을 눈여겨 본 강 회장이 그를 영입했고, 강 회장이 무역협회 부회장으로 선임된 것도 이 회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당시 강 회장이 이 회장에게 부회장 직함을 부여하는 게 결례라고 여겨 같은 회장 서열로 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부터 (강 회장과) 친분이 있었다”며 “서로 생각이나 처지가 비슷했던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