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자원외교' 국정조사가 마지막 담금질에 들어갔다. 지난 이명박정부 당시 천문학적인 국고를 투입한 해외자원개발사업은 여러 곳에서 부실이 확인되고 있다. 그간 추측에 그쳤던 불법 정치자금 수수와 관련한 증언까지 나오면서 분위기는 더욱 달아오르고 있다. 연초 정국의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자원외교 국정조사. 최근 불거진 의혹과 드러난 사실을 토대로 자원외교의 이면을 해부했다.
"결국은 청문회장에 MB가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해외자원개발 국정조사특위(이하 국조특위) 관계자는 지난 20일 국정조사의 '목표'를 묻자 이같이 답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증인 출석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당장 2월 국정조사 정국이 본격화되면 이 전 대통령은 국조특위와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의 '형님'인 이상득 전 의원은 벌써부터 금품수수 의혹에 휩싸이는 등 출석을 예약한 상황이다.
이명박 증인 출석?
새정치민주연합 전순옥 의원은 지난 19일 보도자료를 통해 "'자원외교' 명목으로 볼리비아를 방문 중이던 이상득 전 의원에게 국내 기업인들이 '뒷돈'을 챙겨줬다는 증언을 확보했다"고 알렸다. 증언의 당사자는 ㈜캠볼 대표이사 정기태씨다. 정씨는 볼리비아 현지에서 자원개발 회사를 운영하는 기업인으로 알려졌다. 전 의원이 공개한 증언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10년 1월18일 이 전 의원은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축하 사절단을 이끌고 볼리비아를 방문했다. 김신종 전 광물자원공사 사장은 이 전 의원과 동행했다. 당시 김 전 사장은 "이상득 의원에게 줘야하니 2000달러씩 마련하라"고 자원개발회사 기업인들에게 지시했다. 이들은 1000만원 안팎을 모아 이 전 의원 쪽에 건넸다.
<한겨레>는 전 의원의 협조를 받아 볼리비아 현지에서 정씨를 만났다. 정씨는 "취임식이 끝난 1월23일 오후 돈을 걷으라는 김신종 사장의 지시에 따라 켐볼과 고려아연 몫으로 4000달러를 마련했다"며 "볼리비아 라파스의 카미노레알 호텔 로비에서 광물자원공사 전임 본부장 이모씨를 만나 돈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또 이 자리엔 이 전 의원과 김 전 사장 등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전 사장과 이씨는 나란히 의혹을 부인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정씨는 관련한 사실을 광물자원공사 감사실에 제보했으나 광물자원공사 측은 "증거가 없으니 덮고 가자"는 취지로 묵살했다. 또 이들은 "볼리비아 우유니 리튬사업에서 캠볼이 배제되자 정씨가 유언비어를 퍼뜨렸다"고 주장했다. 현재로서는 정씨와 함께 돈을 마련했던 기업인들의 추가 진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전 의원은 정씨의 증언에 힘을 실었다. "자원외교 특사를 자임하던 이 전 의원이 중남미를 무대로 24개국(12차례)을 찾아다녔다"며 "갈 때마다 기업인들을 대동하고 다녔는데 이 전 의원 측에 건네진 돈이 고작 1000만원뿐이었겠느냐"고 의문을 표했다.
지난달 한 국조특위 관계자는 "이 전 의원과 자원개발에 참여한 몇몇 민간기업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정가 안팎에선 A그룹의 이름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A그룹은 광물자원공사, 석유공사 등과 함께 이 전 의원의 남미 순방을 수차례 수행했다.
페루·콜롬비아·에콰도르 등에 대규모 시설투자를 한 것으로도 확인된다. 이와 관련 또 다른 국조특위 관계자는 "몇몇 기업이 억울해하는 분위기"라며 "정부 등살에 못 이겨 예정에 없던 자원개발사업에 참여했던 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앞서 전 의원은 이명박정부 자원개발 1호로 홍보된 '이라크 쿠르드 사업'에서도 수상한 자금 흐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2008년 1월16일 석유공사는 현지 자원개발의 대가로 이라크 쿠르드 천연자연부 장관 아슈티 하우라미에게 서명보너스를 지급했다. 지급된 보너스는 3000만달러(한화 약 323억원)로 아슈티가 지정한 계좌로 입금됐다.
'형님' 이상득 기업서 협찬금 수수 의혹
서명보너스 수백억 증발…유령회사 왜?
그런데 이 돈 가운데 일부가 증발했다. 전 의원이 석유공사로부터 확보한 서명보너스 지급내역에 따르면 이른바 '바지안 광구 보너스'는 중개은행인 영국 HSBC은행에서 자금흐름이 멈췄다. 반면 나머지 보너스(2건)는 이라크 쿠르드 정부로 정상 입금됐다.
석유공사 측은 "당시 이라크가 외환송금이 불가능한 까닭에 중개은행을 거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이라크에서 유전개발사업을 진행했던 가스공사는 서명보너스를 중개은행을 거쳐 이라크 연방은행에 정상 송금한 것으로 확인됐다.
때문에 전 의원은 문제의 보너스가 아슈티 개인에게 준 뇌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또 이 돈이 이라크 고위관료뿐 아니라 이 전 대통령의 측근과 나눴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 의원은 "조만간 관련한 측근이 누구인지 발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라크 쿠르드 사업은 보너스를 포함해 8494억원이 투자됐지만 지난해 기준 3775억원의 손실이 확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쿠르드 사업을 계기로 이명박정부는 자원외교 실적 올리기에 박차를 가했다. 이 전 의원이 남미를 탐방하고 있을 당시 또 다른 측근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아프리카를 누볐다. 이 전 의원과 박 전 차관이 각 대륙에서 정부 고위관료들에게 약속했던 투자액은 4조3417억원(19건)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손실예상액은 지난해 기준 1500억원으로 추산된다.
같은 시기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낸 최경환 현 부총리는 모두 21개 사업(투자액 약 14조원)을 명목상 총괄했다. 누적 당기순손실은 2조원을 넘는다. 최 부총리 재임 시기 캐나다 하베스트 정유공장(NARL)에 모두 2조원(인수대금·설비투자·운영자금)을 투자한 석유공사는 지난해 8월 미국 상업은행 실버레인지에 약 200억원을 주고 사업권을 매각했다. 원금의 99%를 날린 셈이다. 석유공사는 매각에 앞서 국내 민간 정유업체에 위탁운영 의사를 타진했지만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원외교 실패담은 또 있다. 19일 <한겨레>가 정의당 김제남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3급 비밀문서를 보면 알란 가르시아 전 페루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관료들은 2009년 1월 한국정부의 자원개발 투자를 만류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투자를 강행해 현지 석유회사 사비아페루를 7161억원을 주고 사들였다. 불행히도 사비아페루는 단 1원의 수익도 내지 못한 채 매각절차가 진행 중이다. 정의당 김제남 의원은 지난해 10월 "광물자원공사가 멕시코 볼레오 광산사업에 1조원 넘게 투자했지만 회사가 부도났고 수익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났다"고 폭로한 바 있다.
수조 허공에 날려
앞서 새정치민주연합 노영민 의원은 "이 전 대통령이 직접 해외순방을 하거나 특사를 파견해 체결한 MOU, 이른바 'VIP 자원외교'가 45건이었으며, 이 가운데 (수익성이 불투명한) 탐사개발은 35건이었다"고 밝혔다. 국내로 들어온 수익은 0원, 이 전 대통령의 해명이 불가피한 부분이다. 아울러 다수 현지 투자에는 페이퍼컴퍼니가 이용된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증발한 세금의 종착지는 '누구'였을까.
<기사 속 기사> 자원외교 국정조사 '하긴 할까'
국조특위 여당 간사인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이 해외로 시찰을 떠난 뒤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실에 따르면 권 의원은 14일과 24일 두 차례에 걸쳐 해외시찰 일정을 잡았다. 국정조사 100일 가운데 남은 일수는 70여일에 불과하다.
또 최경환 부총리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번 자원개발자료 작성·제출 과정에서 관련 통계자료를 가공·왜곡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야당위원들은 최 부총리와 윤 장관의 공직 사퇴를 요구하는 등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