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살해위협’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2010.04.27 11:22:26 호수 0호

‘후계구도’ 딴지에 ‘제거작전’ 본격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를 살해하라는 지령을 받고 북한에서 남파된 간첩 2명이 검거됐다. 망명 이후 13년 간 끊임없이 신변위협을 받아왔던 황 전 비서. 하지만 이번 사건은 다르다. 북한이 현역 장교로 짜인 공작 조직을 직접 투입해 살해를 기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위협은 남한 내 고정간첩이나 친북세력에 의한 것으로 추정됐던 것. 이처럼 북한이 극단적인 계획을 시도한 것은 최근 황 전 비서의 행적과 발언이 원인이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살해 위해 북 간첩 남파 드러나
망명 후 수백 차례 테러 위협…공작 조직 투입은 처음


북한의 테러대상 1호 황장엽(87)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암살지령을 받은 간첩이 검거되면서 남북을 오갔던 황 전 비서의 파란만장한 일생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1923년 평안남도 강동에서 일본인 회사 사무원이었던 부친 아래 태어난 황 전 비서는 전형적인 엘리트코스를 밟으며 성장했다.
함북 주을의 경성중학을 마치고 1949년 김일성종합대학에 들어가 대학과정을 마쳤다. 그 뒤 모스크바종합대학에서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을 공부했다. 이 과정을 통해 공산주의 이론의 모태가 된 학문을 연마한 그는 1954년 고국 땅에 돌아와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엘리트 코스 학자 인생
망명으로 ‘테러 인생’



승승장구한 엘리트 인생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1958년 노동당 핵심지위로 발탁되면서 김일성의 철학비서, 김일성대학 철학강좌장과 학부장을 거쳐 1965년 총장자리에 올랐다. 42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이룬 성과였다. 그 후 10년 동안 총장자리를 지킨 그는 김일성유일사상체계 확립에 관여하면서 당시 후계자였던 김정일을 후원했다.

또 1970년 당중앙위원, 1980년 당비서, 1984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1987년 사회과학자협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정치적 입지도 다져갔다. 이처럼 북한 내에서 최고의 위치에 올랐던 황 전 비서는 뜻밖의 선택을 한다. 일흔 넷이라는 나이에 가족을 버린 채 남한으로 망명한 것. 그는 1997년 2월 북경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한 뒤 필리핀을 거쳐 1997년 4월 서울에 도착했다.

당시 황 전 비서의 망명은 국내외에 큰 충격을 던져줬다. 북한의 통치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의 이론적 토대를 닦은 당대의 이론가이자 후계자 김정일에게 ‘제왕학’을 가르친 스승의 갑작스런 남한 행은 파문을 낳기에 충분했다. 각종 의혹도 불러일으켰다. 자신이 이룬 모든 성과와 가족들을 버리고 망명을 시도한 동기와 당시 정부의 미심쩍은 대응, 안기부의 사건 개입 여부 등 숱한 미스터리를 남겼던 것.

하지만 황 전 비서를 괴롭히는 것은 따로 있었다. 망명 신청 직후부터 그의 목을 조여오던 테러 위협이 그것.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당시 황 전 비서의 망명에 대해 “배신자여 갈 테면 가라”고 언급해 그의 신변에 대한 위협을 예고했다. 이 때문에 황 전 비서 곁에는 늘 7~8명의 경호원이 그를 감싸곤 했다.
이 같은 철통보안 속에서도 테러의 위협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2001년에는 당시 민주당 정대철 위원이 “황장엽씨가 지난 4년간 국내에 거주하면서 270여 차례나 신변 위협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황 전 비서를 향한 어둠의 그림자가 끊이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줬다.

황 전 비서에 대한 위협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그가 누구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에 대해 잘 알고 있는데다 대내외적인 자리에서 북한 체제의 만행을 비판했다는 것이 일순위로 꼽힌다. 철저히 비밀에 묻혀있었던 북한의 내부사정이 그의 입을 통해 발설될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황 전 비서를 제거해야 했던 것이다.

2004년 3월에는 황 전 비서가 회장으로 있던 탈북자동지회 사무실에 식칼과 위협적인 문구를 넣은 유인물이 발견돼 테러 공포를 고조시켰다. 당시 사무실 출입문에 피로 추정되는 붉은 색 물질이 묻은 황 전 비서의 사진과 식칼, ‘죽여 버리겠다’는 글이 적힌 유인물 10여 장이 뿌려져 있었다. 유인물에는 황 전 비서는 물론 함께 망명한 김덕홍 전 여광무역 사장, 주 콩고 북한 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있다 1991년 망명한 고영환씨 등을 살해하겠다는 문구도 적혀 있었다.

또 현장에서 발견된 ‘민족 반역자 황장엽은 각오하라’는 제목의 유인물에는 황씨의 반북 활동에 대한 경고가 담겨져 있었다. 이 유인물에는 “이북의 사랑과 믿음에 배신과 변절로 대답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한 마리 미친×처럼 반북모략에 나서고 있다”며 “그것도 모자라 변절자 황장엽은 일본의 군국주의 세력과 손을 잡고 북을 모략하기 위해 방일 행각까지 계획하고 있다”는 내용의 비난 글이 적혀있었다.

피로 물든 협박 편지
끊이지 않는 테러공포

이뿐만 아니다. 2006년 6월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황 전 비서를 응징하겠다는 내용의 협박편지가 배달됐고 그해 12월에는 빨간 물감이 뿌려진 황 전 비서의 사진과 손도끼가 사무실로 왔다. ‘황장엽은 쓰레기 같은 그 입을 다물라’, ‘남은 것은 죽음뿐’이라는 내용이 담긴 경고문도 함께였다.

하지만 황 전 비서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신변위협에 대해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지난 3월31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초청 강연에서는 자신의 신변안전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한 바 있다. 그는 “경호는 내가 요구해서 하는 게 아니라 한국 정부 측에서 테러를 우려해서 배려하는 것”이라며 “조금도 김정일의 테러를 겁내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낮추지 않았다. 이날 강연에서 황 전 비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독설을 퍼부었다. 그는 “나는 김정일 사생활이나 성격 이야기하러 한국에 온 게 아니다. 내가 김정일 욕하면 뭐하겠나. 업적 가지고만 평가하면 된다. 300만을 굶겨 죽인 게 누구냐”고 전했다.

후계자로 알려진 3남 김정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황 전 비서는 “그 녀석 만난 일도 없고 그깟 녀석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며 “김정일보다 못하면 못했지. 그깟 놈 알아서 뭐하나”라며 “미국 같은 위대한 나라가 관심을 돌릴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천안함 침몰사고에 북한이 관여했을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그럴 가능성이야 있다. 하지만 가능성만 갖고 책임을 추궁할 수 없다”며 “현재로선 그것과 관련된 정보도 없고 증거가 없어 말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다. 황 전 비서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북한정권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 4월8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황 전 비서는 “지금 북한은 부친인 김일성 주석 시대보다 독재의 정도가 10배는 더 강하다”고 비난했다. 그는 또 “북한은 나를 반역자라고 말하고 있지만 반역자는 국민을 굶어 죽게 하고 있는 김정일이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월4일에는 황 전 비서가 망명할 당시 김정일 위원장이 “수령을 배반한 개만도 못한 짐승”이라고 황 전 비서를 비난한 문건이 일본 언론에 공개됐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이날 “김정일이 황 전 비서가 한국으로 망명했을 때 황씨를 격렬하게 매도했다”고 보도했다. <마이니치신문>은 “김정일은 황 전 비서에 대해 ‘인간도 아니다. 개만도 못한 짐승이나 다름없다. 인생도 얼마 남지 않은 74세에 당과 수령의 신임을 배반한 자를 어떻게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라고 매도했다”는 내용을 전했다.

김정일 비난 수위 높아져 극단적 방법 동원했다는 의혹 제기
후계구도 정당화 논리에 문제 생긴다는 우려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여


또 지난 4월5일 북한 매체는 “추악한 민족 반역자 황가(黃家)가 미국, 일본을 싸다니며 미친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고 비난하며 “무사치 못할 것”이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위협은 현실로 다가왔다.

지난 4월20일 북한이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를 살해할 목적으로 남파한 간첩 2명이 검거된 것.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와 국가정보원은 이날 위장 탈북한 후 국내로 들어와 황 전 비서를 살해하려한 혐의로 김모(36)씨와 동모(36)씨를 구속했다.

13년 만에 왜 암살지령?
북한 의도 의혹 모락모락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1992년 인민무력부 정찰국(현 정찰총국) 소속 전투원으로 선발된 뒤 1998년 북한 노동당에 입당했다. 본격적으로 남파 훈련을 받은 것은 2004년부터였다. 이후 2008년 11월 인민무력부 정찰총국장인 김영철 상장으로부터 황장엽 암살 지령을 받고 같은 해 11월 말 두만강을 건너 중국 옌지로 향한다. 중국 옌지에서 중국 내 연락책을 통해 탈북 브로커를 소개받아 12월에 일반 탈북자와 함께 태국으로 갔다. 그리고 올해 1월말 김씨가, 2월 초에는 동씨가 한국에 입국했다.

이들은 남파를 앞두고 다른 사람으로 신분을 위장했다. 이들 중 동씨는 황 전 비서의 친척인 것처럼 신분을 위장한 뒤 “황씨 친척이라 더 이상 승진을 못해 남조선행을 택했다”고 탈북 이유를 둘러댄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이들은 황 전 비서가 자주 다니는 병원이나 장소, 지인 등을 파악해 보고한 뒤 구체적인 살해계획을 지시받기로 했다. 하지만 국내에 들어온 뒤 탈북자 심사과정에서 꾸며낸 인적사항과 동일지역 출신 탈북자와 대질신문을 받다 가짜 경력이 탄로났고 결국 암살지령을 받고 남파된 간첩임을 털어놨다.

이처럼 북한이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해 황 전 비서를 제거하려는 것에 대해 몇 가지 설이 나오고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최근 황 전 비서의 행적이 원인이 됐다는 것. 망명 이후 김정일 독재정권을 비난해 온 그는 정권교체 이후 김정일에 대한 비난 수위를 한층 높였다. 이런 황 전 비서가 북한에게는 눈엣가시가 될 수밖에 없고 암살시도를 택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은 황 전 비서의 최근 행보가 ‘3대 세습’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것. 후계구도의 정당화 논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불안감에 암살이란 극단적인 카드를 썼다는 설이다.

한편 이번 간첩 사건에 대해 황 전 비서는 “살해 위협 신경 안 쓴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황씨의 한 측근은 “어제 저녁 간첩들이 붙잡혔다는 뉴스를 보고 황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뭘 그런 걸 신경 쓰고 그러냐’고 말씀하셨다”며 “황 선생님은 2006년 손도끼 협박 때도 ‘어차피 죽을 거 그쪽한테 죽어도 상관없겠지’라고 말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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