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X파일’ 공개 후폭풍

2010.04.27 09:37:00 호수 0호

‘떡검’이어 ‘섹검’까지 “스폰서 검사의 끝은 어디…”


사상최대 ‘검사 스폰서 스캔들’이 터졌다. 경남지역에서 건설사업을 했던 정모(52)씨가 부산지방검찰청에 제출한 진정서가 도화선이 됐다. 진정서에는 정씨가 사업을 시작한 후 20년간 100여 명의 전·현직 검사들에게 촌지와 향응, 성접대를 제공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내용을 MBC ‘PD수첩’에서 보도하면서 파장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당장 발에 불이 떨어진 검찰은 진상규명위를 꾸려 진위를 밝히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지켜보는 이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비리가 밝혀지지 않고 과거처럼 흐지부지 끝날 공산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자칭 ‘검사 스폰서’ 정씨, 접대 내용 적은 진정서 검찰에 제출
검사 100여명에 향응, 성접대, 촌지 등 7억여원 접대했다 주장


일명 ‘검사X파일’로 법조계가 발칵 뒤집혔다. 이것으로 소문으로만 떠돌던 ‘스폰서 검사’ 실태가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검사들의 스폰서를 자처하며 각종 향응과 금품을 제공했다고 주장하는 정씨를 통해서다. 정씨는 자신이 주장하는 내용을 진정서에 담아 지난달 19일 부산지방검찰청에 제출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내용이 지난 20일 MBC PD수첩에서 ‘검사와 스폰서’란 제목으로 방송되면서 법조계는 물론 정치권, 시민단체 등 각계각층에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실명에서 업소이름까지
전·현직 검사 ‘부들부들’



그러면 ‘검사X파일’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까. <일요시사>가 입수한 진정서에는 정씨가 접대한 검사들의 명단과 업소명, 일시, 접대비용 등이 빼곡히 적혀있다. 정씨는 진정서에서 “뇌물, 촌지, 향응, 성접대 등에 대하여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근래의 것은 형사적 책임, 시효가 지난 것은 도덕적 책임을 물어 엄격히 조사하여 처벌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써 자신이 관련 자료를 제출하는 이유를 밝혔다.

정씨는 전·현직 검사 57명의 이름과 직책, 휴대폰번호 등을 진정서에 기록했다. 모두 자신에게 각종 형태로 접대를 받았다는 검사들이었다. 이들 가운데는 전직 법무부 고위 간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 , 형사부장을 거친 검사장급 간부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대부분 부산·경남 지역에 위치한 검찰청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었다.

구체적인 접대 내용도 기재돼 있다. 향응, 성접대 등이 주를 이뤘다. “2003년 7월4일 부장검사 전원(ㅎ부장 제외) 1차 ○○갈비 식사, 2차 △△룸살롱, 아가씨 팁 60만원(3차)” 등 비교적 자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촌지를 제공한 기록도 있다. 정씨의 주장에 따르면 매달 지청장들에게는 100만원, 평검사와 사무과장에게는 50만원을 줬다고 한다. 지청장에게 준 금액만 1억6200만원에 달했다.

이밖에도 검찰청 체육대회, 등산대회 등의 행사가 열릴 때는 100~200만원을 제공했고 매월 2회 이상 회식비 등을 줬다고 밝혔다. 이런 방식으로 정씨는 1984년 3월부터 1990년 12월까지 82개월 동안 검사들에게 접대를 해왔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계산된 금액만 7억원에 가깝다는 것이 정씨의 주장이다. 그러면 정씨가 수년에 걸쳐 검사들에게 각종 접대를 해 온 이유는 무엇일까.

리스트 오른 전·현직 검사 “접대 받은 사실 없다” 부인
검찰 측, 진상조사단 꾸려 진실규명…시민들 반응 냉담


진정서에 따르면 1984년 아버지로부터 사업체를 물려받으면서 사업을 시작한 정씨는 자연스럽게 검찰관계자들과 인맥을 쌓았다. 이 과정에서 정씨는 일종의 ‘보험’으로 검사들에게 뇌물을 제공했다. 또 정씨는 타의에 의해 접대를 하기도 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진정서에서 정씨는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공권력이 무서워 향응접대 및 각종 뇌물을 제공했을지라도 대부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였다”고 밝혔다.

정씨가 왜 이제 와서 지난 일들을 공개하는가에 대한 이유도 기재되어 있다. 정씨는 진정서에서 “사람이 어려울 때도 있지 않습니까? 검사들의 처신과 행태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며 “조그마한 의리 하나 없었고 모두 자기들 체면이나 생각하고 승진에 누가 될까 전전긍긍하는 추한 모습에 배신감과 정신적 충격을 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정씨가 이 같은 내용을 기재한 배경에는 지난해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사실이 자리한다. 당시 정씨는 이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 총경 승진에 힘써주겠다며 경찰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이로 인해 정씨는 자신이 정성을 다해 챙겼던 검찰이 결정적인 순간 등을 돌렸다는 배신감에 휩싸였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검사들의 스폰서였다는 것을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정서에 거론된 인물들은 접대를 받은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PD수첩은 현직 검사장 A(52)씨와 B(47)씨의 실명을 공개하면서 이들을 상대로 취재를 했는데, 이들은 모두 정씨에 대해 ‘기억이 안난다’고 일관했다.

패닉상태 빠진 검찰
부랴부랴 진상조사

그러나 PD수첩 측은 A씨와 B씨가 정씨가 접대하는 술자리에 수차례 참석한 사실을 밝히고 보도했다. 특히 A검사장의 경우 정씨와 말을 놓을 만큼 막역한 사이라는 정황도 포착했다. 정씨 리스트에 등장하는 또 다른 전·현직 검사들도 정씨와의 관계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깊은 사이는 아니다” “모르는 사람이다” “만나긴 했지만 룸살롱을 갈 만한 관계는 아니다” 등 대부분 부인하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이 전파를 타고 검사X파일의 실체가 드러나자 검찰 조직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김준규 검찰청장은 “보도된 주장이 사실이라면 검찰로서는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김 총장은 지난 21일 열린 긴급간부회의에서 “진상규명이 우선되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상응하는 엄정한 조치가 따라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대검 조은석 대변인이 전했다. 또 김 총장은 “지난 과거의 잘못된 행적이었다면 제도와 문화로 깨끗하게 청산되어야 하고, 그 흔적이 현재에도 일부 남아있다면 단호하게 정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 진상조사단을 꾸리고 진실규명에 나섰다. 진상조사단장에 임명된 채동욱 대전고검장은 지난달 2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인근 서울고검에 마련된 사무실로 이동해 공식업무를 시작했다. 민관 합동의 진상규명위원회 산하에 꾸려진 진상조사단은 검사와 수사관으로 구성된 실무 조직으로 정씨가 제기한 향응 및 성접대 의혹의 실체를 조사하게 된다.

이번엔 제대로 조사?
여기저기 의심의 눈초리

조사 활동은 정씨가 주로 활동한 부산과 경남지역에서 이뤄질 전망이며 조사 과정에서 정씨와 검사들의 주장이 엇갈릴 경우 대질 신문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정씨가 공개한 문건에 등장하는 검사가 57명에 이르는 데다 실명이 알려지지 않은 검사도 있어 사실관계 확인 작업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위원장을 포함해 전체 인원의 3분의2 이상이 외부인사로 구성되는 진상규명위원회는 앞으로 조사단의 조사 내용을 토대로 후속 조치를 검찰총장에게 통보하고 법무부 장관에게 징계를 청구하게 된다. 조사 과정에서 검사가 부적절한 처신을 했던 것으로 드러날 경우 파면, 해임, 정직, 감봉, 견책 등 징계를 받게 된다. 향응 제공에 대가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수사 대상에 오를 수도 있다.

이처럼 검찰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진상규명을 할 것을 약속했지만 각계각층에서는 비난의 수위를 낮추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 등은 또 다시 터진 법조비리에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먼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검사X파일에 공개된 전ㆍ현직 검사들을 뇌물 수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고발장에서 “건설업체 대표가 작성한 문건에는 검사들이 오랜 기간 금품과 향응을 받아 온 사실이 들어있다. 그들이 받은 금품ㆍ향응의 총액을 산정한다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를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또 참여연대는 “문제의 검사들을 적당히 용서하고 사건을 흐지부지 서둘러 마무리한다면 검찰을 살리기는커녕 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몰고 가는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논평을 통해 “이런 일이 반복되는데도 철저한 조사와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검찰의 의지 부족과 함께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제도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정치권에서도 비난이 이어졌다.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검사 향응 및 성접대 의혹 규명과 비리검사 처벌을 위한 특검 실시를 요구했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고위정책회의에서 “언론 관심에서 사라지고 여론이 떠나면 유야무야될 것”이라며 “특검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을 정식으로 제기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검찰 자체의 진상조사 노력과 관련, “민간이 참여한 진상위원회를 구성한다지만 과거 수많은 케이스를 봐도 이번에도 결국은 초기에 도마뱀 꼬리 자르듯이 적당히 눈 가리고 아웅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네티즌들도 대검찰청, 부산지검 등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이들 사이트는 수많은 네티즌들의 폭주로 일시적으로 폐쇄되기도 했다. 한 네티즌은 “대검찰청 홈페이지 주소가 ‘spo.go .kr’인데 ‘스폰서(sponsor)의 약자가 아니냐”며 검찰을 조롱했다. 또 다른 네티즌들은 “내가 낸 세금으로 비리 검사 월급 주기 싫다”, “낮에도 일하는데 밤에도 룸살롱 가서 일하느라 고생이 많다”, “이번에도 예전 사법비리 조사 때처럼 흐지부지하게 넘기지 말고 제대로 조사해 진실을 밝혀라”등의 의견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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