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추적]하이트·진로그룹 ‘수상한 사외이사’ 6人 실체

2010.04.06 10:45:35 호수 0호

회장님과 이사님, 그들의 밀월은 진했다


하이트·진로그룹의 사외이사를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선임 배경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 회사 측은 경영진과 무관한 ‘독립성’을 강조했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학연, 지연 등 ‘이해관계’가 짙은 인사로 채워진 이유에서다. 내부 출신과 사실상 협력사 임원도 포함돼 밀월관계까지 의심케 한다. 하이트·진로그룹 사외이사의 공정성·적격성 논란을 도마에 올려봤다.


새 사외이사 진용 ‘뒷말’ 무성…독립성 의문 제기
오너와 학·지연 얽혀…전직·관계사 임원도 포함


하이트·진로그룹의 양대 축인 하이트맥주와 진로가 별다른 잡음 없이 주총을 마쳤다. 하이트맥주와 진로는 각각 지난달 19일, 26일 정기 주주총회 및 이사회를 열고 새 대표이사 선임, 임원이사 보수, 재무제표 승인 등 안건을 순조롭게 통과시켰다. 올해 두 회사 주총의 이슈 중 하나는 사외이사 ‘물갈이’다. 하이트맥주는 정준명 리인터내셔널 상임고문과 유지흥 서울커넥션 지구촌관광 대표이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하이트맥주의 사외이사는 5명으로 기존 김영기, 신중기, 양동훈 이사는 유임됐다. 진로는 사외이사 2명을 모두 교체했다. 하이트맥주가 이번에 선임한 유지흥 대표이사와 이성용 남강엔지니어링 회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하이트맥주와 진로는 사외이사 선임을 공시하면서 ‘최대주주와 이해관계가 없다’고 알렸다.

두 회사는 사외이사 선임 배경에 대해 “경제와 시장 현안에 탁월하고 폭넓은 식견을 보유하고 있는 등 풍부한 경륜의 전문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며 “무엇보다 지배주주 등 경영진과 무관한 인사들로 구성해 사외이사 자격 요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독립성을 제고했다”고 밝혔다. 과연 하이트맥주와 진로 사외이사는 회사 측의 설명대로 독립성을 갖추고 있을까.

주류업계에선 이들 사외이사 선임을 두고 뒷말이 새어나오고 있다. 공정성·적격성 논란이 일고 있는 것. 학연, 지연 등 오너와 ‘이해관계’가 의심되는 인사로 채워진 점이 그 첫 번째 이유다. 이번에 새로 선임된 3명의 사외이사는 일단 외관상으론 ‘보험용’내지 ‘방패용’, ‘로비용’으로 보이지 않는다. 정·관계, 법조계 출신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프로필을 보면 오너인 박문덕 회장과 전혀 관계가 없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준명 이사는 고려대 전자공학과를 나왔다.

‘선후배, 동향…’
우연의 일치?



고려대를 졸업한 박 회장과 대학 동문인 셈이다. 하이트맥주는 정 이사가 경희대(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고 밝혔지만, 정 이사는 경희대 입학 전 고려대를 다닌 것으로 확인됐다. 정 이사가 현재 상임고문으로 재직 중인 법무법인 리인터내셔널의 약력에도 고려대 재학 내용이 들어있다. 하이트맥주와 진로 사외이사를 함께 맡은 유지흥 이사는 박 회장의 고교 후배다.

이들은 배재고를 나왔다. 유 이사는 ‘거물 정치인’고 유진산씨의 손자로 알려졌다. 진로의 새 사외이사로 영입된 이성용 이사는 박 회장과 동향 출신이다. 둘은 고향이 부산으로 같다. 그는 하이트홀딩스 사외이사로도 있다.

고 박경복 하이트맥주 명예회장의 2남1녀 중 차남인 박 회장은 1950년 부산 출생으로 배재고(1968년 졸업)와 고려대 경영학과(1975년 졸업)를 나와 1976년 조선맥주(현 하이트맥주)에 입사했다. 상무, 전무, 부사장을 거쳐 1991년 사장에 취임했고 1999년 부회장에 오른 뒤 2001년 회장에 등극했다. 더욱 석연치 않은 부분은 내부 출신 인사가 사외이사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다.

하이트맥주 사외이사로 유임된 김영기, 신중기, 양동훈 이사다. 이들은 모두 그룹 계열사 임원 출신이다. 하이트홀딩스 사외이사를 겸임하고 있는 김 이사는 하이트산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이후 하이트맥주 고문과 감사를 지냈다. 신 이사는 하이트맥주, 하이트주조, 하이트소주, 하이트산업, 하이스코트 대표이사를 거쳤다. 양 이사는 조선맥주 상무이사, 하이트맥주 이사와 고문을 맡았었다.

전직 ‘하이트맨’ 3인방은 지난해 수십개의 안건을 처리하면서 단 한 번도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다. 경영진의 결정을 100% 수용한 것. 경영 감시·감독은커녕 오히려 ‘거수기’로 전락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될 만한 대목이다. 하이트맥주의 지난해 사외이사 보수는 1인당 3000만원이다. 사외이사는 비상근인 탓에 회의만 출석하면 된다.

총 36차례 회의를 가진 것을 감안하면 이들은 한 번 참석하는데 83만원의 활동비를 받았다는 계산이다. 하이트홀딩스 사외이사까지 겸하고 있는 김 이사의 경우 보수는 더 올라간다. 하이트홀딩스도 지난해 사외이사 1인당 약 3000만원을 지급했다. 김 이사는 23차례 하이트홀딩스 회의에 참석해 1회에 130만원씩 챙긴 꼴이다.

이들 세 명이 지난해 3월 사외이사에 선임되기 전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하이트맥주 이사회에 선임안 반대를 권고하기도 했다. 연구소는 당시 “사외이사 후보들이 오랫동안 하이트맥주나 계열사 임원으로 재직해 지배주주나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안건 100% ‘OK’
‘거수기’전락 지적

하이트·진로그룹 사외이사 선임 배경에 대한 의혹은 또 있다. 유지흥 이사가 서울커넥션 지구촌관광과 함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H사의 실체를 둘러싼 미스터리다. 하이트맥주와 진로는 유 이사가 서울커넥션 지구촌관광 대표이사란 점을 내세워 “당사와 최근 3년간 거래가 없다”고 공시했다. 하지만 주류업계에선 H사가 하이트·진로그룹의 협력사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상 ‘사업 파트너’란 것이다. 만약 사실이라면 유 이사의 사외이사 선임은 논란의 소지가 다분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 법인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유 이사는 1994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H사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기업 정보시스템 조회 결과 H사는 광고대행사로 하이트맥주, 진로, 하이스코트 등 하이트·진로그룹 계열사들이 주요 광고주로 명시돼 있다.

H사 측도 이들 업체와의 거래 사실을 확인해 줬다. 이 회사 직원은 “현재 하이트맥주와 진로, 하이스코트 등으로부터 발주를 받아 광고대행 업무를 하고 있다”며 “정확한 수치를 밝힐 수 없지만 전체 매출에서 상당 부분이 하이트·진로그룹과의 거래에서 발생한다”고 털어놨다. 하이트·진로그룹과 H사가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정황은 양사의 교류를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하이트·진로그룹 현직에 있는 고위 임원들이 H사 경영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지현 하이트맥주 사장은 1993년부터 1997년까지 5년간 H사 이사를 역임했다. 2007년 3월 하이트맥주·하이트홀딩스 대표이사로 등기된 김 사장은 1978년 입사 이후 30년 넘게 하이트맥주에 몸담은 재무통이다. 이한종 하이트맥주 전무도 1996∼1997년 H사 이사로 재임했다. 이 전무 역시 30년 가까이 한우물을 판 재무통으로 꼽힌다.

김 사장과 이 전무는 2005년 하이트맥주가 진로를 인수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김 사장은 박 회장의 최측근 중 한명이며, 이 전무는 박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또 1994∼1996년 H사 이사를 맡았던 유병재씨는 2008∼2009년 하이트홀딩스 사외이사를 지낸 바 있다. 사외이사는 회사의 경영을 직접 담당하는 사내이사 외에 외부 전문가들을 이사회 구성원으로 선임하는 제도다.

사외이사 대표 업체, 그룹과 ‘은밀한 관계’
광고물량 받고…현 고위 임원들 경영 참여
김지현 사장·이한종 전무, 과거 이사 역임


우리나라는 1998년 사외이사를 처음 도입, 의무화하고 있다. 경영진에 속하지 않지만 이사회에 참여해 회사 업무집행에 관한 의사 결정과 대표이사 선출, 업무집행 감시 등을 맡는다. 하지만 회사, 지배주주, 경영진 등과 이해관계로 얽혀 회사 경영을 견제·감시해야 할 사외이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의 사외이사 성향과 출신을 분석한 결과 지배주주와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인사가 무려 20%에 달했다.

연구소 측은 “사외이사 제도는 회사, 지배주주, 경영진 등과 무관한 인사들의 선임과 적극적인 이사회 참여가 이뤄질 때 투명성과 효율성을 발휘한다”며 “그러나 현실은 경영진과 사외이사가 은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등 독립적이지 못한 사외이사가 선임되고 있어 이들에게 경영진에 대한 견제·감시 기능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사외이사 자격요건을 강화하는 한편 선임 방법을 엄격히 하는 등의 제도적인 장치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월 개정된 상법시행령에 따르면 계열사에서 일한 이사는 다른 계열사의 사외이사로 임명될 수 없다. 주주를 대신해 회사 내부에서 경영진을 감시해야 하는 사외이사의 자격을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인물로 제한한 것.

지난 2월 개정된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과 증권거래법도 계열사 임원들의 감사나 사외이사 임용을 금지하고 있다. 대한통운은 지난달 이런 법 해석을 잘못해 기옥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장을 감사로 선임했다가 논란이 일자 하루 만에 번복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다만 2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있다. 계열사 임원직에서 사임한 뒤 2년이 지나면 사외이사로 선임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이트·진로그룹 측은 이 대목을 근거로 전직 임원들의 사외이사 선임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룹 관계자는 “관계법령과 정관, 이사회 규정에 따라 선정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다”며 “몇몇 사외이사가 과거 회사 임원으로 재직한 것은 맞지만 모두 최소 2년 전 사임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관계사와 관련된 사외이사 선임 규정도 마찬가지다. 관련법상 회사와 거래하는 관계사에 근무하는 임직원은 해당사의 사외이사가 될 수 없다. 하지만 하이트·진로그룹 측은 직접적인 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H사와의 관계를 전면 부인했다.

“경영 견제·감시
제 역할 못한다”

그룹 관계자는 “하이트맥주와 진로가 현재 계약한 광고대행사는 H사가 아닌 외국계열의 두 업체”라며 “H사가 광고대행사의 재발주 물량을 받고 있는지는 몰라도 최근 몇년간 직접 거래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는 임원의 H사 경영 참여에 대해선 “내부 규정상 계열사 임원이 경쟁사를 제외한 다른 업체의 이사 등의 겸임을 허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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