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에 빠진 농협 직원 횡령 황당스토리

2010.04.06 10:43:05 호수 0호

‘말밥’ 주느라 고객 돈 제멋대로 ‘흥청망청’

최근 농협이 잇따른 금융사고로 도마에 올랐다. 지점마다 수십억 원의 고객 예금이 빠져나갔다. 범인은 농협 직원이었다. 농협은 수개월간 범행을 파악하지 못했고 그 사이 이들은  고객 예금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자유롭게 빼내갔다. 두둑한 지갑과 함께 이들이 향한 곳은 경마장이었다. 경마에 빠져 수억 원의 빚을 지고 이를 갚기 위해 또 고객의 예금에 손을 대는 반복이었던 것. 업계 곳곳에서 농협의 내부 감독 및 기강관리에 대한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입금장부·대출서류 위조해도 수개월째 ‘깜깜’
구멍 뚫린 내부 감사 수십억 횡령 빌미 제공


경기 군포경찰서는 지난달 25일 고객 예금 수십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농협중앙회 군포시지부 금고 출금담당 직원 이모씨(30)를 구속했다. 경찰은 이씨가 고객이 맡긴 예금을 금고에 예치한 것처럼 전산을 조작, 수차례 금고에서 돈을 빼냈다고 밝혔다.

여기도 ‘뻥’ 저기도 ‘뻥’



경찰에 따르면 이씨가 고객의 돈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8월부터다. 이씨는 지난해 8월7일 오후 7시경 고객이 맡긴 현금 100만원을 금고 안에 입금한 것처럼 장부와 전산자료를 조작해 빼돌렸다. 이후 이씨는 수시로 금고에 들어가 보관 중이던 현금 500만원에서 1000만원가량을 쇼핑백이나 봉투에 담아 유유히 밖으로 나왔다. 이 같은 대담한 범행은 지난 2월26일까지 계속됐고 21차례에 걸쳐 횡령한 돈이 총 11억3600만원에 이른다.

농협 내부의 감사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만 이씨의 범행은 6개월이 지나도록 밝혀지지 않았다. 농협이 이씨가 작성한 허위 장부를 철석같이 믿었던 탓이다. 업계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거센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매일 마감 이후 출납 담당자를 통해 장부와 실제 금고에 남아 있는 현금을 확인해야 한다. 이 때 컴퓨터에 자동으로 입출금이 기록된 출납자동전산시스템과 담당 직원이 수기로 작성한 장부를 함께 비교하는 것이 정식 절차다.

하지만 해당 농협은 지난 6개월간 이 과정을 과감히 생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관행을 잘 알고 있었던 이씨는 장부를 허위 작성해 남아있는 현금과 일치시키는 방법을 이용, 어려움 없이 범행을 이어왔던 것이다. 실제 매월마다 실시되는 내부 감사에서도 이씨의 범행은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통상 1년씩 순환 배치해야 하는 출납 담당자를 해당 농협은 3년간이나 이씨를 업무 담당자로 배직했다. 결국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이씨의 범행은 지난 1월23일 새롭게 부임한 지부장의 인수 감사를 통해 드러났다. 농협은 불시에 실시한 감사를 통해 내부에서 거액의 예금이 사라진 사실을 확인하고 다음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 수사 결과 하루 만에 범행이 확인된 이씨는 고객 돈을 횡령하게 된 이유에 대해 ‘경마’ 때문이라고 밝혔다. 수개월 전 경마에 빠진 이씨가 돈을 잃고 빚까지 지게 되자 이를 갚기 위해 고객의 돈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이 같은 범행이 거듭됐던 것이다.

이씨는 “횡령한 금액 모두를 경마로 날렸다”고 진술했다. 현재 경찰은 횡령기간이 6개월 이상으로 긴 만큼 내부 공모 가능성에도 초점을 두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주인 있는 곳간에 손을 댄 직원은 또 있다. 경기 수원남부경찰서는 지난달 8일 대출서류를 위조해 수십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전 농협중앙회 모 지점 과장 강모(53)씨를 구속했다.

강씨는 여신업무담당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6월3~4일 고객들이 담보대출을 신청한 것처럼 서류를 위조해 31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20여년간 농협에서 근무해 온 것으로 알려진 강씨가 고객의 돈에 손을 댄 것도 경마 때문이다. 강씨는 식당을 운영하던 부인의 사업 실패로 어려움을 겪던 와중 우연히 경마장을 찾았고, 이후 경마에 빠져 많은 돈을 잃게 되자 나중에는 사채에 까지 손을 댔다.

결국 경마로 진 사채 빚만 4억원에 달하자 자신이 담당하는 대출업무를 이용해 자금을 빼돌리기로 결심했다. 그는 지난해 5월 과천경마장에서 알게 된 대포통장 판매 브로커를 통해 신용도가 높은 9명의 인적사항을 사들였다.

이후 이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한 강씨는 이들이 LH공사의 토지를 분양받은 뒤 이를 담보로 중도금을 대출받는 것처럼 약정서 등을 위조했다. LH공사에서 시행한 토지를 담보로 대출 신청시 우량대출로 인정돼 절차가 간편할 뿐 아니라 결재 확인도 대출금 지급 이후에 이뤄지는 점 등을 악용한 것이다.

고객 돈은 내 것(?)

이렇게 9명의 허위 통장에 각 3억6000만원씩 총 31억원을 입금시킨 강씨는 곧바로 “집에 일이 있다”며 조퇴했고, 돈을 인출해 잠적했다. 경찰에 따르면 강씨는 9개월간의 도피 생활 중에도 강원도 등을 도박과 경마를 일삼고 다녔으며, 횡령금 중 5억원 가량을 도박 등으로 탕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농협측의 신고를 받고 대출 통장에 대해 지급정지를 걸어 불법 대출금 중 24억원을 회수했지만 나머지 7억원은 강씨가 경마와 도피자금, 유흥비 등으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당시 경찰 한 관계자는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도박 등을 일삼았던 강씨는 체포 당시 폐인처럼 변해 있었다”며 도박에 빠진 전 농협 간부의 최후를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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