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 <그래비티>와 비교하지 마라

2014.11.07 09:35:13 호수 0호

"자리잡을 땅 찾아야 해" 인류에 생존 메시지의 화두 던졌다

[일요시사 문화팀] 김해웅 기자 =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들 사이에서 우리가 어디쯤 있는지 궁금해하곤 했지. 하지만 이제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우리가 자리 잡을 땅이 어딘지 찾아야 해."



<인터스텔라>(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극중에서 '쿠퍼'(매튜 매코너헤이)는 이같이 말한다. 놀란과 함께 세 시간 동안 우주를 느끼고 극장을 나온 관객은 이 대사가 쿠퍼의 말이 아님을 알게 된다.

어쩌면 '하늘을 올려다보는 인간'은 놀란 자신이다. '땅을 보며 사는 인간'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영화감독이다. 놀란은 우회적으로 자신의 야망을 드러낸다. 놀란의 야망은 꿈으로 남지 않는다. 이것이 놀란과 그를 제외한 다른 감독의 차이다. 놀란은 <인터스텔라>를 통해 우주를 본다. 그는 인간이 가늠하기 힘든 무한대의 시공간을 꿰어 결국, 우주를 뛰어넘는 대서사시를 창조해 냈다.

가까운 미래, 지구는 더는 인류가 생존하기 힘든 곳이 됐다. 먹을거리를 구하기조차 힘든 이 땅에 남은 건 절망뿐이다. 테스트 파일럿 쿠퍼는 아들 톰(케이시 애플렉)과 딸 머피(매켄지 포이/제시카 차스테인)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어느 날 쿠퍼는 머피가 발견한 알 수 없는 표식을 따라 이동한 곳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나사(NASA) 본부를 발견한다. 나사는 쿠퍼에게 인류가 살 새로운 행성을 개척하기 위한 우주여행을 제안한다. 쿠퍼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가족을 남겨둔 채 우주로 떠난다.

<인터스텔라>는 영화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우주에 대한 시청각적 체험을 극대화했다. <인터스텔라> 이전, 우주를 가장 현실적으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 <그래비티>(감독 알폰소 쿠아론)의 우주는 <인터스텔라>의 규모 앞에서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래비티>가 성층권 주변의 우주를 보여줬다면 <인터스텔라>는 화성과 토성을 지나 웜홀을 통해 태양계를 벗어나고 태양계 밖 행성들에서 블랙홀을 통해 5차원 세계까지 도달한다.


첫날 22만 돌파
예매율 80% 이상
'극장가 돌풍'

놀라운 건 놀란이 그리는 우주가 철저한 고증을 통해 완성됐다는 점. 놀란과 함께 각본 작업을 한 조너선 놀란(크리스토퍼 놀란의 동생)이 4년 동안 우주와 상대성이론을 공부했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려졌다. <인터스텔라>에서 현재 물리학이 도달한 이론적 토대를 벗어난 설정은 없다. 이론을 시각화하는 작업은 또 다른 문제다.

이를 위해 놀란은 상상력 대신 현실을 더 철저히 반영하는 길을 택했다. 회전하면서 나아가는 우주선과 우주선끼리의 도킹 장면이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이유는 그것이 실제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우주의 광경이 아름답고 따뜻해 보이지만, 잔인한 것 또한 같은 이유다. 놀란은 우주라는 세계 그 자체, 물리학 그 자체가 상상력을 통한 묘사보다 위대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덕분에 <인터스텔라>는 우주선의 외형과 움직임, 우주선의 발진, 이 우주선이 지나는 우주, 행성들, 웜홀, 태양계 밖의 모습, 블랙홀, 블랙홀 안의 모습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로 천체물리학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 사실은 놀란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우주에 다가갈 수 있는 극점에 도달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인터스텔라>는 SF 장르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탑을 쌓기 위해 그 탑이 올라갈 수 있는 대지를 일군다. 놀란이 우주를 통해 이야기하는 건 인류의 구원은 새로운 행성에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을 그 행성으로 향하게 하는 '사랑'이라는 가치에 있다는 것이다. <인터스텔라>의 인간은 우주의 거대한 힘에 절망하지 않는다. 그보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때, 그 무력함에 눈물을 흘린다.

우주와 가족을 단선적으로 엮었다면 그저 뛰어난 기술력을 보여준 영화쯤으로 남았겠지만 <인터스텔라>는 우주의 무한함과 사랑의 숭고함 앞에 선 인간의 유한함을 보여줌으로써 이야기에 무게를 더한다. 인간이 아무리 우주를 휘젓고 다닐 수 있게 돼도 그들은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앞에 무기력하다. <인터스텔라>의 페이소스가 극대화되는 지점은 시간을 어찌하지 못하는 인물들이 좌절할 때이다.

누군가는 세계와 인류에 대한 낙관과 긍정이 크리스토퍼 놀란답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놀란은 세상을 근심할지언정 부정한 적이 없다. 방식이 달랐을 뿐 그는 영화를 통해 대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haewo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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