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피붙이 대격돌 ‘인정사정없다’

2010.03.23 08:57:15 호수 0호

<재계뒷담화> 한 핏줄 ‘생존 내전’ 스토리

재계에 한 핏줄끼리 집안 경쟁이 화제다. 재벌가 같은 로열패밀리간 밥그릇 싸움은 더욱 시선을 끈다. 시장 포화로 사업 분야가 겹치면서 생긴 현상이다. 일부는 악의적으로 혈족의 영역을 침범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형제들도 있다. 부친으로부터 한 업종을 물려받은 태생적 한계 탓에 ‘생존 내전’을 벌이고 있는 재벌가를 찾아봤다.



국순당, 대성, 에이스침대 등 형제간 한우물 대결
선의의 경쟁 화제…경영 분쟁·가격 담합 후유증도

‘막걸리 열풍’으로 한창 주목받고 있는 재벌가가 있다. 바로 국순당 일가다. ‘누룩 황제’배상면 국순당 회장의 자녀들은 모두 가업을 이어받아 ‘전통주 한우물’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배 회장의 2남1녀인 배중호 국순당 사장, 배영호 배상면주가 사장, 배혜정 누룩도가 사장이다.

장남 배중호 사장은 배 회장이 1983년 국순당을 설립할 당시 입사해 1993년부터 국순당 경영 전면에 나섰다. 차남 배영호 사장은 형과 함께 국순당에서 일하다 1996년 배상면주가를 들고 독립했다. 여기에 20년 넘게 전업주부였던 외동딸 배혜정 사장마저 2000년 누룩도가로 전통주 시장에 뛰어들면서 배상면 일가의 내전(?)에 가세했다.
각각 ‘백세주’, ‘산사춘’, ‘부자’등의 브랜드로 전통주 시장에서 맞붙은 이들 형제는 최근 계속되고 있는 막걸리 열풍에 맞춰 국순당은 ‘생막걸리’, 배상면주가는 ‘대포막걸리’, 누룩도가는 ‘부자막걸리’등 각자 막걸리 제품으로 양보 없는 대결을 벌이고 있다.

라이벌 구도 형성

일각에선 너무 경쟁이 심한 나머지 간혹 갈등설이 흘러나오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얼굴을 보는 등 배 회장 자녀들의 우애가 여전히 돈독하다는 게 세 회사의 이구동성이다. 모든 주식을 팔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배 회장도 국순당과 배상면주가, 배상면주가에 모두 사무실을 두고 있을 정도로 자녀들이 선의의 경쟁을 펼치도록 독려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국순당과 배상면주가, 누룩도가는 경쟁자이면서 동반자이기도 하다”며 “이들 회사의 오너인 배씨 형제들은 물론 임직원간에도 절친해 수시로 왕래하면서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업 분야가 겹치는 로열패밀리가 ‘화음’만 내는 건 아니다. 파열음이 가득한 집안도 있다. 대성 일가가 대표적이다. 슬하에 3남3녀를 둔 고 김수근 대성그룹 창업주는 생전 재계의 경영권 분쟁 사례를 보면서 핏줄간 우애를 유서로까지 남기며 형제간 분쟁의 소지를 없애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후손들은 그의 유지를 따르지 못했다. 아들들이 같은 분야인 에너지 중심 회사들을 물려받은 게 화근이었다. 김 창업주는 장남 김영대 회장에 대성산업을, 차남 김영민 회장에 서울도시가스를, 3남 김영훈 회장에 대구도시가스를 각각 맡겼으나 김 창업주가 2001년 작고한 직후 이들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터졌다.

김영대 회장이 갖고 있던 서울·대구도시가스 지분 처리 등 김 창업주의 유언장 해석을 놓고 갈등을 빚었고, 급기야 법정공방으로 비화됐다. 이 소송은 무려 5년 동안 계속됐다.

이 와중에 김영대 회장과 막내딸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은 가죽 브랜드인 MCM 사업권을 둘러싸고 법정싸움을 벌였다. 또 김영대 회장은 김영훈 회장과 ‘대성그룹 회장’직함을 놓고 특허청에 대성그룹 상표권 등록 신청을 하는 등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다행히 이들의 충돌은 합의로 봉합됐지만, 2006년 김 창업주의 부인 고 여귀옥씨가 타계하자 어머니의 유산상속을 놓고 또 다시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이 역시 지난해 유산 배분에 합의하는 것으로 일단 종지부를 찍게 됐지만, 대성가 형제들은 부모의 제사를 따로 지낼 정도로 전혀 왕래가 없다고 한다.

반대로 한 영역에서 경쟁 중인 형제의 우애가 너무 좋다보니 탈이 난 경우도 있다. 국내 침대업계의 최대 라이벌인 에이스침대와 시몬스침대 얘기다.

1963년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 에이스침대공업사를 창업한 후 ‘침대 외길’을 걸어온 안유수 에이스침대 창업주는 1992년 시몬스침대를 인수했다. 이어 2001년 장남 안성호 사장에 에이스침대를, 차남 안정호 사장에 시몬스침대를 넘겨줬다. 두 형제가 중복된 가업을 이어받은 셈이다.

형제 우애를 바탕으로 두 기업은 적대감보다 협력을 우선시했다. 이는 양사가 국내 침대시장의 1, 2위를 차지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에이스침대와 시몬스침대는 지나친 형제애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두 회사가 담합 혐의로 적발된 것.

공정위는 지난해 1월 에이스침대와 시몬스침대가 침대 소비자 판매가격의 할인을 금지하는 내용의 가격표시제에 합의한 사실을 적발하고 각각 42억원과 1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에이스침대와 시몬스침대는 2005년 5월 수입침대가 늘면서 소속 대리점들이 할인판매를 포함한 노마진 경쟁에 나서자 이를 제재하기 위해 할인판매를 금지하는 가격표시제를 결의했다.

화음 또는 파열음

대리점으로부터 100만∼150만원의 공탁금을 받는가 하면 가격표시제 위반시 50만∼100만원의 벌금까지 걷었다. 3차례 이상 위반할 경우 징계, 경영주 교체, 계약 해지 등의 벌칙을 내리기도 했다.

공정위는 “가격표시제는 침대를 소비자에게 팔 때 할인과 사은품 제공을 금지하는 등 일종의 정찰제 판매로 부당한 공동행위에 해당한다”며 “침대시장에서 1, 2위를 차지하는 두 업체가 이런 할인금지 행위 등으로 약 7.3%에 해당하는 가격인상의 효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재벌가 형제들이 대부분 부친의 사업을 물려받을 때 계열분리 등을 통해 서로 경쟁을 피하기 마련이지만 불가피하게 동일한 사업을 물려받아 어쩔 수 없이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는 형제들도 있다”며 “형제가 한 시장에서 경쟁을 벌일 경우 너무 사이가 좋아도 문제, 나빠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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