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국립대 길들이기' 실태 추적

2014.10.13 11:23:23 호수 0호

"대통령에 충성 맹세해야 총장 임명?"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교육계에서 치열한 이념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길들이려는 자와 길들여지지 않으려는 자 간의 싸움이다. 최근 국립대에서 교육부의 임명제청 거부로 총장 공백 사태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법원에서도 교육부의 부당한 임명제청 거부에 대해 제동을 걸었지만 교육부는 막무가내다. 박근혜정부의 '국립대 길들이기' 실태를 살펴봤다.

교육계에서 치열한 이념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교육부가 별다른 이유도 없이 총장 임명제청을 거부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부 국립대는 벌써 19개월째 총장 자리가 공석이다. 국립대 총장 임명을 직선제에서 간선제로 전환할 당시 불거졌던 ‘정권의 국립대 총장 인사 개입 가능성’ 우려가 현실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려가 현실로



교육부는 지난 2012년부터 금권선거 등의 폐해를 막겠다며 총장 선출방식을 직선제에서 간선제로 전환하는 정책을 펴왔다. 당시 국립대들은 ‘간선제를 통해 정권이 입맛에 맞는 사람을 총장으로 앉히려 한다’며 격렬히 항의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직선제를 폐지하지 않는 학교에 대해 상당한 불이익을 주면서 현재 전국 39개 국립대가 모두 직선제를 폐지한 상태다.

직선제 폐지 이후 교육부의 행태를 보면 ‘정권의 인사 개입 가능성’ 우려가 현실화됐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국립대 총장은 대학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최종 후보 2명을 확정해 교육부에 추천하면 교육부장관이 임명을 제청해 대통령이 최종 임명한다. 그런데 교육부는 최근 류수노 한국방송통신대 농학과 교수의 총장 임명제청을 거부했다. 이유는 총장직을 수행하기 위한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공개할 수 없다는 황당한 이유였다. 총장 후보 본인이 임명제청 거부 이유를 공개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누구를 위한 개인정보보호인지 알 수가 없다. 또 총장 임명제청이 거부되면서 개인의 명예는 이미 실추될 대로 실추된 상황이다.

본인도 공개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말 중대한 결격사유가 있다면 교육부가 이를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에 대해 <일요시사>는 교육부 측의 답변을 듣고자 했지만 교육부 측은 사실상 답변을 거부했다.

때문에 교육계에서는 류 교수가 진보성향이라 임명제청이 거부됐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한 실정이다. 류 교수는 실제로 지난 2009년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퇴행을 우려한다’는 내용의 시국선언에 참여하기도 하는 등 진보성향이 강한 인물이다.


한국체육대학(이하 한체대)의 상황은 좀 더 심각하다. 한체대는 총장추천위원회를 거쳐 지금까지 4차례나 교육부에 총장후보 임명제청을 요구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한체대는 지난해 3월 제5대 총장이 퇴임한 이후 벌써 19개월째 총장 자리가 공석이다. 이유는 역시 모른다. 교육부에서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총장을 재추천하라는 공문 한장만 달랑 보내왔다.

이유도 없이 총장 19개월째 공석
법원 판결에도 항소하며 막무가내

총장의 공백이 길어지면서 일단 총장권한대행이 업무를 추진하고 있지만 권한대행의 한계는 분명하다. 중요한 결정을 임의로 내릴 수 없어 주요한 사업 같은 것들이 전부 보류되고 있는 상황이다. 학사운영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주대 총장후보였던 김현규 교수는 교육부를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했다. 교육부는 지난 5월 공주대가 추천한 김현규 교수 등 총장 후보 두 명이 모두 총장직을 수행하기엔 부적합하다며 임명제청을 하지 않았다. 물론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김 교수는 부적합 이유를 알려주지 않아 수긍할 수 없다며 반발했고 결국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다.

법원은 김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교육부가 대학 자치 및 김 교수의 공무담임권을 침해하는 행정처분을 취하면서도 처분의 이유와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고, 사전통지 및 의견청취의 기회를 제공하지도 않았다”고 판결의 이유를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혀 교육계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이러한 교육부의 행태에 대해 교육계에서는 청와대의 지시에 따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중간에 교육부장관이 교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박근혜정부 들어 이러한 황당한 행태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방증하듯 모 총장후보는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한 여권 실세와 친하다는 이유로 교육부로부터 임명제청이 거부됐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교육부의 총장 임명제청 거부는 결국 정권 입맛에 맞는 인물만 총장에 앉히겠다는 이야기라는 지적이다.

논란이 일자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부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임의대로 총장임명 제청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인사위원회를 통해 후보자의 연구실적물, 연구윤리, 재산, 징계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임용 적격 여부를 결정했다”며 “부적격 사유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개인정보이기 때문”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국립대뿐만 아니라 박근혜정부 들어 교육계 길들이기 시도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미 교학사 교과서 파동, 국사 교과서 국정 전환 문제와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조치 등이 잇달아 불거지면서 교육현장은 큰 혼선을 빚었다.

또 내년도 교육예산과 관련해서는 사실상 진보교육감 길들이기용 예산 책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각종 교육복지 사업에 대해 국고 지원 없이 교육청에 모든 부담을 떠넘긴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급기야 전국 시도교육감들은 내년도 어린이집 보육료 예산 편성 보이콧을 선언했다.


벼랑 끝 교육

자율형사립고(이하 자사고) 문제도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특히 교육부는 자사고 지정취소는 교육청의 자치사무라는 정부법무공단의 유권해석을 받고서도 이를 무시한 채 수용 불가 방침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법무공단은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재평가에 대해서도 “재평가 실시를 절차적 하자로 보는 것은 적정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법률 자문을 무시하고 “명백한 위법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 같은 교육부의 강경한 입장 표명에 따라 교육당국 간 법적 분쟁이 불가피하게 됐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전문가들은 “나라의 백년대계인 교육이 정치 논리에 의해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 된다”며 “총장 후보 본인들도 부적격 사유 공개를 원하는 만큼 지금이라도 교육부는 심사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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