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정국’이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들을 빨아들이고 있는 가운데 역대 정치사에 길이 남을 만한 ‘정치 수’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세종시 문제는 이른바 여당 내 친이·친박의 권력 다툼에서 ‘박근혜 죽이기’로 급변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화려하게 부활을 꿈꾸고 있는 정치세력이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상도동계 인사들이다. 실패한 대통령으로 평가되고 있는 YS는 DJ·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전직 대통령으로 활약하고 있다. MB가 ‘세종시 카드’를 들고 나오자 최고의 우군이자 정치조력자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 이에 정가에서는 ‘YS 세종프로젝트’설이 떠돌고 있다. 이에 <일요시사>가 밀착 해부했다.
YS ‘세종시로 박근혜 때리기’ 위상 높여
박근혜·김무성 결별…친박계 균열 신호탄
‘세종프로젝트’ 속내는 김현철 정치재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압박이 정치 9단의 ‘훈수’ 차원을 넘어 강력한 공격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정권재창출을 위해선 ‘현직 대통령과 차기 대권주자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며 박 전 대표를 몰아세우고 있는 것. ‘훈수’만으로는 답답해 아예 현실정치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마치 ‘킹 메이커’로서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는 것.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김 전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한나라당 친이계 모임인 ‘함께 내일로’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1997년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내가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면서 이 후보가 대선에서 낙선했다”며 “대권주자와 현직 대통령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 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세종시 문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박 전 대표를 정면으로 공격한 것이다.
YS ‘훈수정치’
‘박근혜 죽이기’ 본격화
YS의 ‘훈수정치’는 세종시 문제가 불거지면서 부쩍 잦아지고 있다. YS의 세종시 문제에 대한 의견제시를 시점별로 살펴보면 정치9단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는 것.
정운찬 국무총리가 처음 수정안을 들고 나왔을 당시만 해도 ‘다 끝난 것 아니냐’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뉘앙스였다. 그러다가, 지난 설을 전후로 해서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김 전 대통령은 공세적 의사개진으로 돌변했다. 지난달 24일 YS는 김무성·이성헌 의원 등 자신의 계보인 ‘민주계’ 출신 한나라당내 친박계 의원들에게 ‘세종시 수정론’을 집중 설득했다.
YS는 이들 의원들에게 “세종시 원안을 고집하면 안 된다”며 “박 전 대표를 잘 보필하라”고 당부했다는 것. 이 날 참석한 한 의원은 “YS가 설 전에 이 의원 등을 상도동 자택에서 만나 2시간 정도 세종시 문제 등에 대해 얘기했다”며 “요지는 ‘(현직)대통령이 (후임)대통령을 만들기는 어렵지만, 대통령이 안 되게는 할 수 있다. 세종시 문제에 대해 박 전 대표가 입장을 바꿔야 한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고 했다.
이에 정치권 한 인사는 “MB가 세종시 수정안 발표(1월11일)가 있기 직전인 1월9일 YS와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만찬을 하면서 세종시에 대한 구원 요청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YS는 이후 자신이 대통령으로 재직할 때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친박계 의원들을 상도동으로 불러, 세종시 문제를 적극 설득하고 독려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특히 YS는 김무성 의원과도 두 차례 이상 만나 세종시 수정안 문제에 대해 강력한 주문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YS의 세종시 발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5일에는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직접 국민의 뜻을 물어보는 방법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친이 강경파의 ‘국민투표론’에 힘을 보탰다.
같은 날 YS는 ‘세종국가전략조찬포럼’ 강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집권 18년간 장기집권 등을 위해 네 번이나 국민투표를 악용한 바 있지만, 세종시 문제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라고 성토하기도 했다. 그리고 26일 한나라당 친이계 모임인 ‘함께 내일로’가 주최한 간담회에 참석해 자신의 견해를 재차 강조했다.
세종시 문제를 둘러싼 김 전 대통령의 잇단 ‘훈수’와 그 표현의 미묘한 변화는 ‘링’ 밖에 서 있던 YS가 ‘링’ 위로 직접 올라온 것과도 같으며 친이·친박계의 갈등을 넘어 과거세력과 미래세력 간의 권력 암투로 번지는 양상으로 보여지고 있다.
철옹성 친박계
김무성 결별로 균열
경인년 새해벽두부터 시작된 ‘세종시 전쟁’은 철옹성 같았던 친박계의 분열로 이어지고 있고, 이로인해 ‘박근혜호’가 침몰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이 한가운데는 YS계의 김무성이 있다. 김 의원은 친박계 좌장으로 불렸지만 사실상 박 전 대표와 결별을 했다. 이에 여당 내 계파 구도의 지형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기존 친이-친박의 양강 구도에서 이제 새로운 계파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김 의원은 이번 결별을 통해 사실상 PK 맹주로 떠오르게 된 것. 즉, 박 전 대표와 6년 동안 맺어온 동반관계를 끊고 김 의원 스스로의 길을 걷겠다는 독립선언의 의미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MB정부가 들어서자 ‘김무성 원내대표론’ 등 잦은 충돌과 갈등으로 금이 가기 시작하다 세종시 문제가 터지며 김 의원이 수정안을 찬성하고 나오자 와해되고 말았다.
이에 김 의원이 7개 독립기관의 ‘절충안’을 제시하자, 박 전 대표는 “한 마디로 가치가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한 뒤,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며 MS와의 결별을 선언했고 이로인해 당내 계파간 지각 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현재 당내에는 친이-친박의 계파가 있지만 이전에 한나라당은 신한국당에서 출발했다. 신한국당은 YS계와 민정계, JP계로 시작 됐다가, JP계가 DJ와 손을 잡고 나가자 YS계를 중심으로 한나라당을 세우게 된 것이다. 이후 한나라당은 YS계와 민정계, 소장파 등으로 재편 됐고, 이 와중에 YS계는 이회창계와 친박계로 나뉘어지게 됐다. 그러나 두 번의 대선패배 이후 YS계는 친이·친박으로 나뉘어졌고, TK중심의 민정계는 박 전 대표를 옹립해 친박계를 만들어냈다.
이런 와중에 YS의 정치 재개와 김 의원의 탈 박근혜가 이어지면서 YS계가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YS계 움직임은 지난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친이계에 잠복해 있던 민주계 즉 YS계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재개가 이루어지면서 기지개를 펴는 듯하다. 지난 진보정권 10년 동안 별다른 활동의 보이지 못했던 YS의 사람들이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MB정부의 브레인이자 최측근으로 통하는 박형준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 1994년 최연소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으로 발탁돼 각종 개혁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YS의 ‘세계화 구상과 전략’의 집필에 깊숙이 관여했다. YS 정부시절 청와대 정책기획 및 사회복지수석을 지낸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보수 세력의 핵심 브레인이자 ‘세종시 수정론자’이면서 원안을 추진하고자 한 박 전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인물이기도 하다. 이각범 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은 대통령 직속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활동 중에 있고, 강만수 전 재정경제원(기획재정부 전신) 차관은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과 대통령 경제특보를 동시에 맡고 있다.
YS계 부활,
세종프로젝트 완성?
YS정부 때 주미 대사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한승수 현 정부 초대 총리는 강원지사 차출설이 나돌 정도로 활동 폭이 넓다. 대통령비서실 제2부속실장을 지낸 정병국 의원은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됐다. 현 국회의장인 김형오 의장도 YS의 사람이며, 안상수 원내대표도 YS계로 분류하고 있다. 재계에선 청와대 경제수석과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이석채 KT 회장이 가장 화려하게 재기했다. 즉, YS계가 MB 정부의 핵심 요직을 차지하고 있고, YS는 친이계와 보수세력의 대부로 거듭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정가에서는 YS의 ‘세종프로젝트’, ‘MB 빅딜설’이 떠돌고 있다. 이에 한 정치권의 관계자는 “이 설들의 골자는 YS가 MB에게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의 정치적 재개와 PK 맹주로서 MS(김무성)을 인정해달라는 것”이라면서 “표면적으로는 아들 문제에 국한 돼 보인다. 하지만 YS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동교동, 상도동계를 통합해, 제2민추협을 결성하는 것이다. 영호남 동서 화합을 통해 새로운 정치세력화와 함께 차기 대선에서도 영향력을 놓지 않겠다는 심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