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HP 아줌마’ 가슴 아픈 사연

2014.07.21 11:00:59 호수 0호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갑질’

[일요시사=경제1팀] 한종해 기자 = 한국HP가 일방적인 대리점 계약 해지 논란에 휩싸였다. 기존 대리점 인근에 새로운 대리점을 열고 사전 통보 없이 업무 계약을 파기했다는 것. 베스트 대리점 상을 수차례 수상한 기존 대리점은 하루아침에 간판을 내려야 할 신세에 처했다. 업계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신종 갑질'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1시 여의도 한국휴렛팩커드(이하 한국HP) 본사 앞,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길가에 한 여성이 '한국HP의 부당한 갑질에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남편 이응조씨와 함께 10여년간 서울시 중랑구 망우동에서 유일하게 한국HP 판매 대리점인 'DIGITAL HP 중랑점'과 '한국HP 중랑AS센터'(이하 망우동 센터)를 운영해온 윤민자씨다.

맡아달라더니…

이들 부부가 HP와 인연을 맺은 건 2003년 HP 직원이 이씨의 가게에 찾아오면서부터다. HP대리점과 AS센터를 맡아 달라는 것. 이미 1997년 7월부터 삼보컴퓨터 판매를 해오고 있던 이씨는 제휴 업체였던 HP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계약은 HP 판매 업무를 담당한 '대원컴퓨터'와 AS 업무를 담당한 'PC119(현 위피드)'와 체결했다.

이씨 부부는 성실하게 일했다. 한국HP로부터 베스트 서비스 상도 여러 차례 받았다. 다른 지역 대리점에서 이씨의 대리점으로 AS지원 요청이 올 정도였다. 하지만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지난 2012년 6월, AS를 위해 망우동 센터를 찾은 단골고객에게 이씨는 충격적인 말을 전해 들었다. 중랑구 묵동에 'HP 공인 서비스센터 중랑구점'이라는 이름의 신규 대리점(묵동 센터)이 오픈해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 사실 확인을 위해 묵동 센터를 찾은 이씨는 자신의 대리점과 똑같은 간판을 달고 영업 중인 곳을 발견했다.

이씨는 본사에 설명을 요구했다. 윤씨가 당시 한국HP 프린터 관련 총괄 차장 황모씨와 통화한 녹취록을 보면 황 차장은 "이모 차장에게 전달 받은 해지 대상 지점에 중랑점이 들어가 있어 이 차장에게 확인을 요청했지만 답변을 받은 게 없다"며 "대리점 계약은 영업부 쪽 업무다. 나는 아는 게 없다. 해지됐다는 메시지만 받았다"고 책임을 회피했다.

"사전 통보는 있었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황 차장은 "(본사에서 요구한) 영업 매출을 맞추지 못한 점이 해지 원인인 같다"고 말해 윤씨를 당황케 했다.

이씨는 함기호 한국HP 대표이사 앞으로 '계약을 해지 당할 만한 귀책사유가 없는데 우월적 지위로 한국HP가 부당하게 계약을 해지했다'는 취지의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이씨는 "이후 본사에서 직원이 찾아와 '본사의 실수로 생긴 일이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며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고 말했다.

10년 일했는데…일방적 대리점 계약 해지
베스트 상 수차례 수상한 점주 부도 위기

하지만 1년 뒤 한국HP는 묵동 센터와 AS업무 계약을 체결했다. 망우동 센터와의 AS 계약은 해지됐다. 한국HP 고객지원실에서도 중랑구 AS센터에 대한 문의에 대해 "망우동 센터는 없어졌고 묵동 센터로 가야 한다"는 안내를 했다.

이씨는 "사건의 충격으로 위피드에 AS 일시중지를 요청하고 HP 대표에게 시정을 요구하는 서면을 보내 놓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데 HP가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AS를 묵동 센터로 몰아주고 우리 망우동 센터와의 계약은 해지했다"고 주장했다.

이씨에 따르면 HP대리점은 AS를 통해야 판매가 이뤄지는 등 AS 비중이 상당하다. AS 계약이 해지된 상태에서 판매만 하는 HP대리점은 존립시킬 가치가 전혀 없다는 것. 이씨는 한국HP에 시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한국HP는 이를 묵살, 이씨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냈으나 한국HP에서 조정을 거부했다. 이씨는 지난달 27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소장에서 이씨는 "HP가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 기존 대리점과 아무런 협의나 통보도 없이 중랑구 내에 같은 이름의 또 다른 HP대리점을 내주어 기존 대리점을 고사시켰다"며 "현재는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AS 계약이 해지됐다"고 전했다.

이씨는 또 "사건의 근본원인은 '갑' 중의 '갑'인 HP가 거래상 지위를 남용하여 불이익을 제공한 행위"라며 "10년 넘게 유지해온 AS센터를 해지시키거나 대리점 쪼개기를 하려면 정당한 사유를 들어 최소한의 협의나 통보를 하고, 어느 정도 시간을 주어야 할 텐데 이를 무시한 한국HP의 일방적인 횡포로 큰 손해를 보고 있는 바 한국HP는 이에 대해 손해를 배상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HP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영업권을 보호하기 위해 신규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것은 공정거래원칙에 어긋난다는 것.

한국HP 홍보대행사 프레인 관계자는 "2012년 6월 오픈했다는 신규 대리점은 한국HP 측과 정식계약을 체결한 게 아니라 무단으로 AS 및 판매 업무를 진행해 회사 측이 제재를 가한 것이지 이씨 대리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사실 아니다" 반박

이 관계자는 "2013년 8월 위피드가 전국 모든 대리점에 계약 갱신 절차를 공시, 묵동 신규 대리점은 계약체결 정식절차를 밟아 신규 AS 계약을 체결했으나 이씨 대리점은 갱신 의사를 밝히지 않아 자동으로 계약이 해지된 것"이라며 "사전 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했다는 이씨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대리점의 영업구역을 보호하거나 이익을 보전해 준다는 명목으로 대리점 개설 의사가 있는 신규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것은 공정위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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