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강주모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결국 세월호 사태의 책임을 지고 냈던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표를 반려했다.
문창극 후보자에 대한 비난 여론이 겉잡을 수 없이 번지자 정 총리를 유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국정 공백의 장기화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고 굳이 새 총리를 내정해 같은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계산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또 인사시스템을 보완하기 위해 청와대 내 인사수석실을 새로 설치키로 하는 등 추후 같은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도 피력했다.
이와 관련해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날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은 오늘 정 총리의 사의를 반려하고 국무총리로서 사명감을 갖고 계속 헌신해줄 것을 당부했다"고 밝혔다.
이어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이후 국민들께 국가개조를 이루고 국민안전시스템을 만드는 약속을 드렸다. 이를 위해 지금 시급히 추진해야 할 국정과제들이 산적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수석은 "청문회 과정에서 노출된 여러 문제들로 인해 국정 공백과 국론 분열이 매우 큰 상황"이라며 "박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고심 끝에 오늘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의를 반려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정 총리를 유임시키면서 뜻하지 않게 국가 개조와 적폐를 청산하겠다던 '국민과의 약속'을 어겨버렸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 한달 남짓인 지난달 20일, 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이번 사고는 오랫동안 쌓여온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끼리끼리 문화와 민관유착이라는 비정상의 관행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오는지를 보여줬다. 관피아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고, 그와 함께 '세월호 책임'의 정 총리의 사표도 수리했다.
또 '국가 개조'와 적폐 청산을 강조하면서 정부 조직법 개정안까지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인선과정에서 안대희(전관예우 논란)·문창극(친일 및 설교 발언 논란) 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문턱에 가지도 못한 채 여론의 돌팔매만 맞다가 결국 짐을 쌌다.
안 후보자의 경우는 자진사퇴의 성격이 강했고, 문 후보자의 경우는 청와대로부터 사퇴 시그널을 받았다.
그 동안 박 대통령은 인사위원회(위원장 김기춘 비서실장)의 추천을 받아 후보자를 지명했는데, 결국 '안·문 사단'을 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는 '문제 인사(?)'들을 추천한 김기춘 인사위원장에게 비난 수위를 높였고, 결국 박 대통령의 국가 개조와 적폐 청산도 '립서비스'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게다가 세월호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던 정 총리를 유임시키면서 '사라져버린 세월호 책임자론'마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민생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국민이 정부를 걱정해야 한다는 웃지못할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우스개소리가 청와대까지 전해질리는 만무하겠지만, 더 이상 이런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그간 보여왔던 '밀실 인사' 대신 과감한 개혁 인사를 통한 추진력 있는 인사들을 적재적소 자리에 앉혀야 한다.
정치권에서는 야당 원내대표나 중진급 의원들이 국민통합은 물론, 정치권과의 소통에도 유리할 수 있다면서 이른바 '야당 천거설'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우여곡절 끝에 정 총리가 다시 공석으로 되돌아왔지만, 그 동안의 국정 공백은 물론 박 대통령의 담화 약속 내용들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따라 붙는다. 그 어느 때보다 정 총리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