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정부에 쓴소리한 미술평론가 정준모

2014.05.19 11:12:59 호수 0호

"돈 주는 걸 정책이라 해선 안 되죠"

[일요시사=사회팀] 미술은 시각행위다. 사랑하는 연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듯 그래서 심장이 뛰듯 그림은 보이는 것이고, 반응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림을 다른 맥락에서 본다. 그들에게 그림은 사치품이며, 때로는 비자금이다. 그 틈에는 '인간'이 없다. 인간이 배제된 이데올로기만 존재한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문화를 화두로 이야기를 꺼냈다. 문화가 말라버린 사회. 그것은 '인간됨'을 잃어버린 사회나 다름없다고 했다. 우리는 산업화란 미명 하에 '한강의 르네상스'를 이뤘지만 역설적이게도 본질적 의미의 '르네상스'는 도외시했다. 정 실장은 "이제라도 문화정책 전반을 손봐야 한다"며 말을 이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만 해도 예술은 종교와 결합했다. 성직자 집단은 예술가를 지원했고, 예술가는 미술을 포함한 건축·도예 등의 분야에서 각각의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문화'가 됐다.

미술품은 공공재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예술가를 후견하는 집단은 성직자가 아닌 부호가 됐다. 이들은 화가의 그림을 사들이고, 미술관과 같은 전시공간을 만듦으로써 '문화'를 형성했다. 부르디외가 말한 '구별짓기'의 그늘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이들의 취향은 '공공의 장'을 넓힌다는  측면에서 득이다.

부호가 수집한 미술품은 미술관이란 목적지에 도달하면서 특정계급의 사유물이 아닌 범의의 '공공재'가 된다. 정 실장은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슈퍼리치들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미술품 수집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유병언 일가 수사 과정에서 미술품은 또 다시 비자금으로 둔갑했다. 전재국씨의 미술품 소장이 탈세를 위한 수단으로 비춰진 것처럼 말이다.


가장 큰 책임은 이를 확대·재생산한 집단들에 있다. 언론도 그중 하나다. 정 실장은 "매번 미술계를 파렴치한 것처럼 매도해 놓고 책임지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며 "언론도 신속하기만 했지 정확성은 떨어졌다"고 비판했다.

"전두환 일가가 은닉한 그림이 수백억원대라는 보도가 있었죠? 그런데 정작 시장에 나오니까 얼마였습니까? 73억원인가 그랬죠? 그럼 잘못된 보도에 대해 누군가는 해명을 했어야 했는데 아무도 안 했습니다. 증거를 갖고 말했어야죠. 이번에도 똑같이 유대균씨가 수집한 미술품이 수백억원대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글쎄요. 과연 몇 점이나 갖고 있을까요."

정 실장은 순수예술이 대중예술에 비해 사회적 대접은 박하면서도 책임은 많이 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독일의 경우는 작가마다 후원회가 있는데 후원자 각자의 취향에 맞춰 마음에 드는 작가를 단체로 후원하는 문화가 있다. 이는 이제 갓 미술계에 발을 들인 작가가 시장에서 버티지 못하고 도태되는 일을 방지하며, 궁극적으로 '문화적 종 다양성' 확보에 기여한다. 또 정부는 이들의 후원행위에 세제감면 혜택을 준다. 정부가 최소한의 역할을 하면서 효과적으로 예술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중앙에서 세금을 거두면 입법부로 편성권이 갔다가 문화체육관광부를 거쳐 다시 문화예술위원회(이하 위원회)로 예산이 분배되고 이 돈이 다시 민간에 투입되는 행정낭비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생기는 관리 비용은 일차적인 문제고요.

더 큰 문제는 돈을 쥐고 있는 위원회에 '권력'이 생긴다는 거예요. 한정된 예산을 타내기 위해 문화·예술단체가 이른바 '관피아'에 목을 매야 하는 구조죠. 또 정부는 전시의 '질'은 뒷전이고 오직 관람객 '수'로 예술을 계량화합니다. 장기적인 정책은 없고 당장 돈 되는 사업만 하겠다는 거죠."

'미술품=비자금' 극히 일부 사례
경제성장 과정서 문화수립 뒷전

정 실장은 "박정희정부 때 제정된 '문화예술진흥법'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생긴 최초이자 마지막 문화정책"이라며 씁쓸해했다. 당시 정부 정책을 살펴보면 '민족문화창달'이라는 기조 아래 광화문을 복원하고, 동상을 세우며 역사화를 보급하는 등 나름의 계획적인 예술 지원이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월남전에 파견됐던 '종군화가단'이 있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전두환정부 때 생긴 '국풍81'의 포맷이 지금도 쓰이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그동안 정부는 철학 없이 '돈'을 수단으로 문화를 육성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돈 주는 걸 정책이라 해서는 안 되죠. 시스템을 만들어야죠. 시스템이 없으니까 경제는 선진국인데 문화는 아직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문 것 아닙니까. 돈보다는 문화적인 혜택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하고, 국민 스스로가 문화적 자존감을 갖게 해야 합니다."

'진짜' 정책 절실

정 실장은 지난 2012년 국내 저명 예술단체 등과 함께 '미술품 기부에 대한 세제혜택'을 골자로 하는 입법을 추진한 일이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서미갤러리 사건 등으로 악화된 여론을 의식해 법제화에 반대했다. 그런데 당시 미술계 입장은 "금고 안에 있는 미술품을 공공의 영역으로 꺼내야 한다"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제도적 보완 없이 구호만 외친다면 결국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문화 애호가가 사회적 존경을 받고 그가 환원한 작품들을 미술관에서 감상하는 일. 우리에게는 너무나 먼 미래의 일일까.

 

<angeli@ilyosisa.co.kr>

 

[정준모는?]

▲중앙대 졸업, 홍익대 석사 (미술학)
▲광주비엔날레(1995) 전시부장 겸 대변인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전 덕수궁 미술관장
▲전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2011) 총감독
▲국민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논문 <미술품은 땅인가> <제3의 미학, 새로운 출구> <한국의 모던이즘, 모더니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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