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행복을 그리는 서양화가 엄옥경

2014.05.09 19:49:52 호수 0호

"모란과 연꽃을 보세요, 위로와 치유가 된답니다"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행복을 위해서는 힘들었던 시간의 고리를 먼저 끊어야 합니다." 한국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화려하면서도 깊이 있는 작품 세계를 선보였던 서양화가 엄옥경 작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평단과 미술 애호가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던 엄 작가는 최근 서울에서 귀국전시를 가졌다. 사회를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그의 작품은 관객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언어이자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언어다. 멀게만 느껴졌던 행복은 오 작가의 작품 안에서 어느덧 무지개를 꽃피우고 있었다.



엄옥경 작가는 한국의 민화라는 전통 주제를 서양화의 재료를 통해 한 화면에 드러내는 일종의 융합(컨버전스)예술을 선보이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각기 다른 이미지들은 동일한 공간에 어우러져 새로운 조형적 의미를 생성한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노스탤지어에 가깝다. 파편화된 기억들이 하나의 심상으로 모여 관객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이다.

오방색과 민화 차용

"제 그림 안에 민화를 들여 놓게 된 계기를 설명하자면요. 전 할머니 품에서 자랐습니다. 할머님은 상당히 검소한 분이셨는데 여간해서는 낡은 물건도 잘 버리는 일이 없으셨어요. 그러다보니 제게는 우리 옛 물건에 대한 향수가 진하게 남아있습니다. 예쁜 자수가 놓인 규방공예나 세월의 때가 고스란히 묻은 소품·가구 등이 떠오르는 거죠."

미술계에서는 종종 엄 작가를 이해할 때 팝아트의 정의를 차용하고는 한다. 실제로 엄 작가는 민화와 팝아트의 공통점을 나열하며 '대중예술'이라는 말을 썼다. 대중은 팝아트의 주된 소비자이며 민화 역시 마찬가지다. 엄 작가의 작품이 한정된 컬렉터가 아닌 보다 넓은 의미의 관객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입체나 원근, 비례를 무시한 구도나 형태, 이것들은 민화와 팝아트의 공통분모라고 볼 수 있는데요. 제 작품에도 일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맞겠죠. 그런데 앞서 말씀하신 동서양의 장르를 결합했다는 말은 사실 컨버전스의 개념입니다. '오방색과 민화를 차용한 (서양)회화'가 제 연구 주제였기도 하고요. 저는 그림에서 전통색채인 오방색을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색채가 화려하고 장식성이 높은 것이 특징이죠. 또 저는 민화에서 꽃과 새를 그린 화조도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모란과 연꽃을 많이 그립니다. 모란과 연꽃은 위로와 치유 그리고 소통과 나눔을 통한 행복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겠어요."


엄 작가는 모란과 관련한 특별한 기억을 갖고 있다. 엄 작가에게 모란은 '어머니의 꽃'이다. 그는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찾던 중 모란자수가 놓인 천에 담겨 있는 생모의 사진을 발견했다. 얼마나 울었을까. 그 뒤로 모란은 엄 작가에게 치유와 용서, 나아가 행복의 꽃이 되었다.

전통 주제를 서양화 재료로 표현 눈길
왕성한 대내외 활동…중국 평단서 반향

"처음에는 모란이라는 대상에만 집중해서 작업을 했는데요. 차츰 스토리텔링이 됐어요. 북경에서 그린 그림들이 이러한 변화를 두드러지게 나타냈고죠. 주로 어린 시절의 추억이나 사소한 풍경에 모란이 등장해요. 실제로는 허리춤까지 자라는 작은 식물인데 일부러 커다란 상상의 나무에 주렁주렁 피어나게 했죠. 모란이 가진 상징성, 즉 행복의 이미지를 극대화하려고 상상 속의 식물을 만든 겁니다. 전 '모란나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요. 행복을 기원하는 강한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모란나무는 뿌리까지 보이게 그리고 있습니다."

엄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본 관객들이 기분이 밝아진다거나, 그림에 붙여진 제목이 재미있다는 등의 반응을 보일 때 행복을 느낀다. 엄 작가는 얼마 전 열린 개인전에서 만난 20대 후반의 관객을 떠올렸다.
 

"박사까지 마친 재원으로 참 예쁜 아가씨였어요. 그런데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았죠. 전시장에 바람을 쐬러 왔다고 했는데 저와 환담을 하다가 이런 말을 했어요. '죽을 것 같았는데 그림을 보고 나니 기분이 나아졌다'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봐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절대 붓을 놓지 않을 거다'라고 다짐했습니다."

화려한 색감

지난 2008년 가족과 함께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갔던 그는 오직 작품만을 갖고 중국 평단의 커다란 반향을 이끌었다. 엄 작가의 작품은 중국 미술의 메카라 불리는 베이징798예술구의 화랑에 걸렸고, 상하이·베이징 옥션 등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왕성한 대외 활동으로 중국 내에서 한국 미술계의 이름을 드높였던 엄 작가는 이제 서울에 머무르며 또 다른 도약을 준비 중이다. 다가올 11월 서울 명동 세종호텔의 세종갤러리에서 열리게 될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는 엄 작가. 그의 특별한 행보에 남다른 시선이 쏠린다.

 

<angeli@ilyosisa.co.kr>

 

[엄옥경 작가는?]
 
▲홍익대 미술대학 및 동대학원 회화전공
▲개인전 21회 인사아트센터 1층 본전시장 幸福之中(2012, 서울) 등
▲KIAF, SOAF, Art EXPO YORK, Ron 등 국내외 아트페어 다수
▲그룹전 서울·베이징·상하이·개성공단 등 100회 이상
▲고등학교 미술교과서 작품 수록(미술창작/교학사 P39)
▲농협·국민은행·LG생활건강·한국투자금융지주 등 아트꼴레보레이션
▲대한민국 글로벌 미술대전 전체대상 등 수상 다수
▲북한 개성공단 관리위원회. 국립국악원, KOEX 등 작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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