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교과서 '짜깁기 교재' 유통 고발

2014.04.07 11:32:52 호수 0호

"국민 세금이 학원으로 새고 있다"

[일요시사=사회팀]  수년간 국가저작물을 이용하여 막대한 수입을 올린 스타강사와 출판업체가 있다. 국정교과서 등을 인용, 짜깁기 출판을 한 뒤 학생들에게 팔고, 이윤을 남기는 식이다. 그런데 이게 관행이라고 한다. 눈 먼 국가저작물이 아무 제제 없이 사교육시장을 살찌웠던 셈이다. 지금도 학원가를 가보면 영리를 목적으로 한 '저작권' 사용이 버젓이 계속되고 있다. '짜깁기 교재' 유통, 해법은 있을까.



지난달 감사원 앞으로 한 통의 민원이 접수됐다. 접수번호 '2014'로 시작한 민원은 감사원 측에서 민원인에게 확인 전화를 할 정도로 신빙성을 갖춘 제보였다. 민원인은 "감사원뿐만 아니라 교육부 쪽에도 관련한 내용을 질의했다"고 말했다. 기자는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제보자를 직접 만났다.

국가 저작권 침해

전직 출판사 고위 임원 A씨는 "국가 세금으로 만든 교육물이 그동안 특정 저자와 출판업자의 영리를 위해 쓰였다"고 고발했다. 이어 그는 "한 개인이 수십억원의 돈을 챙겨갔는데도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조금 더 자세한 내막을 물었다.

A씨가 밝힌 쟁점은 크게 세 가지. 첫째, 초등학교 지도서가 학원가 등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한 출판물로 둔갑했다는 것. 둘째, 특정 저자나 출판업체가 지도서를 짜깁기 한 책으로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는 것, 셋째, 지도서 저작권을 관리·감독할 의무가 있는 정부가 이를 방기했다는 것이다. 관련한 사실을 하나하나 맞춰보자.

먼저 일반인에게 '초등학교 지도서'는 생소한 개념이다. 현직 초등학교 교사에게 문의한 결과 "초등학교 지도서는 현장 교사가 아이(초등학생)들을 지도할 때 참고하는 책"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대다수 학교는 현장 교사들에게 지도서를 일괄 제공하고 있다.


때때로 교사 개인이 필요에 의해 지도서를 시중에서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정식 출고가는 0원이지만 인터넷 서점 등에서는 4000∼1만원 사이에 거래되고 있다. 하지만 현직 교사가 지도서를 찾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의 수요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어·수학·사회·과학 등 모든 기초과목 지도서 저자는 교육부(교육인적자원부·교육과학기술부)다. 듣기말하기쓰기, 실험관찰, 즐거운생활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초등학교 교과서 대부분 역시 교육부가 집필하고 있다(단 예외적으로 예체능과 관련한 교과서는 국정교과서가 아닌 검정교과서로 운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교육부가 편찬한 출판물의 저작권은 어디에 있을까. 얼핏 봐서는 교육부에 있을 법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저작권은 원저자에게 있다는 것이 교육부의 입장이다.

초등학교 지도서가 출판물로 둔갑
특정 저자·출판사 수십억원 챙겨
정부는 사실상 방치…알고도 뒷짐

교육부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교과서에 실린 콘텐츠는 원저자와 협의해 교육을 목적으로 허가를 받은 것이지 교과서에 실린 글·삽화·사진의 저작권이 국가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교과서나 지도서는 (초등)학교 수업에서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기타 영리를 목적으로 활용해선 안 된다"고 못박았다.

그런데 A씨는 답답해했다. 그는 "학원가에서 지도서나 교과서가 통째로 인용돼 정식 출판물로 유통되고 있는데도 정부가 단속하지 않는 건 직무유기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대체 어느 정도를 베꼈다는 말일까.

몇 년 전 초등학교 임용시험을 준비했다가 현재는 교편을 잡은 한 교사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A씨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했다. 이 교사는 "시험을 준비했던 사람이라면 다 알겠지만 임용교재는 지도서와 교과서를 짜깁기한 형태로 나왔다"고 회상했다. 또 그는 "만약 저작권을 문제 삼는다면 전국에 있는 모든 학원 강사가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방에서 근무 중인 한 교사도 관련한 증언을 뒷받침했다. 그는 "우리 때는 초등임용시장에 강사 '탑3'가 있었는데 지금은 판도가 바뀐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예나 지금이나 지도서를 인용하지 않고는 내용을 채우기 어렵고, '탑3' 역시 그렇게 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출판사 전 사장 B씨도 관련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과거 탑3 중 1명인 C씨와 계약을 맺고 초등임용교재를 출판했던 인물이다. 각 출판물마다 계약 조건은 달랐지만 수익의 약 10% 정도가 C씨에게 지급됐다고 한다. 가령 2만원짜리 책을 1권 팔면 2000원이 저자에게 지급되는 식이다. 이는 업계 관행상 상당히 좋은 조건이라고 한다.

B씨는 'C씨가 저자로 등재된 출판물을 아느냐'고 묻자 "인쇄나 유통 등 실무를 처리했을 뿐 저작권과 관련한 상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B씨는 "법적으로 다툴 부분이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내가 사업을 접었을 때(2008년)만 해도 교과서 인용은 별 문제가 아니었고, 이제와 따지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 자문을 구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신중한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저작권침해의 경우 친고죄인데 국가나 원저자가 문제 삼지 않으면 사실상 (제3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그렇지만 그는 "국가저작물은 보호대상인데 (동의 없이) 누군가가 영리를 목적으로 이용했다면 (관련기관이) 저작권료를 징수할 수 있다"고 의견을 냈다.

그렇다면 저작권을 보호하고 있는 정부 입장은 어떨까.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한 관계자와 통화했다. 그는 "업계 관행이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고 운을 떼었다. 하지만 그는 "어려운 일"이라며 말을 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에 따르면 가장 좋은 해결책은 책을 만들려는 저자나 출판사가 원저자나 교과부의 승인을 맡는 것이다. 그렇지만 교과부 입장에서 아무 개인에게나 허락을 내줄 리 없다는 게 해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자연히 출판사 측에선 원저자와 직접 협상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 많은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다 만나고 다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A씨는 "그들이(C씨 등 유명저자)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제본 값만 받고 나눠줬다면 내가 왜 민원을 넣었겠냐"면서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교재값으로 수만원씩 내야 하고 국가저작물을 제 마음대로 쓴 사람들은 수십억원씩 버는 게 정상은 아니지 않냐"고 되물었다.

기자는 학원가가 밀집한 서울 노량진을 찾았다. 그곳에서 만난 한 임용고시 준비생은 "교재 없이 독학은 말이 안 된다"면서 "샘(강사)이 추천해주는 교재로 공부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좋든 싫든 강사가 찝어준 책을 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와 관련해 한 학원 관계자는 "열이면 열, 교재 선정은 선생님이 한다"고 밝혔다.

서울 강남의 한 대형서점. 기자는 전산을 이용해 C씨의 이름으로 된 책을 검색해봤다. 확인된 책 수는 정확히 120건. 2003년부터 2014년까지 나온 책들이다. 가격은 1만원대부터 3만원대까지 다양했다. 이중 2007년 이전에 나온 책들은 일부 절판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절판된 책들을 빼고 남은 책들이 전부 판매금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3월에 나온 3만원대의 책을 찾아봤으나 없었고, C씨의 책은 서점에 단 1권도 남아있지 않았다. C씨가 저자로 등재된 120권의 책(공저 포함) 대부분은 임용과 관련된 책으로 파악됐다.

징수 가능할까

지난 3일 기자는 C씨에게 전화를 걸어 '책을 살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C씨는 "온라인으로 책을 살 수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C씨는 저작권 얘기를 꺼내자 "말할 게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어 그는 기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수업도 해야 하고, 연구도 해야 하고, 바쁜 일이 많은데 어떻게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교육계에 정통한 한 언론관계자는 “많은 선생들이 교재로 돈을 번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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