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부호 뜯어보기 3탄> 경제성장사와 함께한 ‘부호들의 일기’

2009.08.11 10:14:59 호수 0호

“격동의 60년 세월 버틴 10대 기업은 삼성·LG·GS 뿐…”



 삼성·LG, 60년대 사세 확장 … 재계 상위그룹 점령
‘왕자의 난’으로 쪼개진 ‘현대가’ 새로운 성장으로 우뚝

국내 기업들은 지난 1945년 광복 이후 짧은 시간 동안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며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이 기간 동안 수없이 많은 기업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부침을 거듭해야 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1955년 100대 기업 중 현재까지 남아있는 기업은 7개에 불과하다. 산업트렌드가 빠르게 변하고 외환위기까지 겹치면서 기업의 흥망이 갈린 탓이다. 무리하게 몸집 불리기에 나섰던 무수한 기업들이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반면 내실 있게 성장한 기업들은 외환위기의 높은 파고에도 세계 속에서 명성을 떨치며 성장했다. <일요시사>가 지난 60여 년간 재계의 지각 변동을 되짚어 봤다.




한국 기업의 역사는 지난 1896년 서울 배오개 고개에 둥지를 틀고 옷감 등을 내다팔던 박승직 상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의 두산그룹 효시다. 당시 박승직은 경성 상업계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누리며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50~60년대 덩치 키워
‘재벌’ 면모 갖추다

이후 1930년대로 접어들면서 오늘날 재계 판도를 거머쥔 부호들의 움직임이 가시화됐다. 일본에서의 학업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와 정미소 사업을 시작한 이병철(삼성 창업주), 인천의 한 쌀가게 배달원으로 시작해 사업가의 꿈을 키웠던 정주영(현대 창업주), 부친이 건네준 2000원의 사업자금으로 경남 진주에서 포목점을 설립한 구인회(LG 창업주) 등이다.

비슷한 시기 각 지역에서 태동한 기업들은 광복 직후 서울로 근거지를 옮기고 사세를 확장했다. 이양구(동양), 서성환(태평양화학), 전중윤(삼양식품), 박룡학(대농), 최태섭(한국유리), 서선하(삼흥실업) 등이다.

대구에 터를 잡았던 이병철도 1947년 동업자 조홍제(효성)와 서울로 상경해 삼성의 모태인 무역상 삼성상회를 주식회사 체제인 삼성물산공사로 바꿨다. 부산에선 김지태(조선견직), 양태진(국제상사), 장경호(동국제강), 정태성(성창기업), 김인득(벽산), 강석진(동명목재) 등이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광주에는 박인천(금호), 대전엔 최준문(동아건설) 등이 터를 일궜다.


우리나라 최초의 재벌그룹이라고 불리는 백락승의 태창그룹도 이때 활개를 떨쳤다. 태창은 태창방직, 태창공업, 매일직물, 대한문화선전사, 조선기계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1950년대 초까지 국내 최대의 영향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이들의 대부분은 6·25사변을 기준으로 위세가 시들해졌다.

이들이 다시 세력 확장에 나선 것은 50년대 중반이다. 삼양사를 비롯한 럭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 금성방직 등이 선두를 차지했다. 삼성·삼호·개풍·대한산업·동양 등도 ‘재벌그룹’으로서의 면모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이 중 삼성그룹은 1950년대 여러 계열사를 설립하며 미래 글로벌그룹으로의 성장 발판을 다졌다. 1953년 이병철은 당시 전량 수입에 의존했던 설탕을 국내 생산하기 위해 제당사업을 벌였고 이때 설립된 것이 제일제당이다. 이어 1954년에는 의복에 대한 국산화를 추진하며 제일모직을 설립, 1958년에는 안국화재를 인수해 보험업에  뛰어들었다.  

이외에도 조선방직을 인수하며 단번에 국내 최대의 면방직 업체로 부상한 삼호그룹, 국내 최대의 시멘트 공장을 거느렸던 개풍그룹 등이 삼성그룹과 재계 순위를 다퉜다.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까지 번성했던 그룹을 살펴보면 삼성, 삼호, 개풍, 대한, 럭희(현재의 LG), 동양, 극동해운, 한국유리, 동림산업, 태창, 삼양사, 화신, 대한제분 등이다.

그러나 이 중 일부그룹은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쇠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당대를 풍미하며 이름을 날렸던 개풍(이정림), 대한(설경동), 삼호(정재호), 화신(박흥식), 태창(백낙승) 등이다. 특히 태창그룹은 창업주 백락승이 사망하자 그의 아들 백남일이 회사를 이어받았으나 5·16 군사정변 직후 백남일이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고 일본에 귀화하면서 사라졌다.

한강의 기적 견인하며
고속성장 ‘쭉~쭉~’

반면 삼성그룹과 럭희그룹(LG그룹 전신)은 1960년대에 들어 사세 확장에 더욱 적극적이었다. 삼성그룹은 1963년 동방생명보험을 인수한데 이어 1964년 동양방송, 1965년 중앙일보를 연달아 설립하며 언론업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1969년에는 차후 삼성그룹의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게 되는 삼성전자를 설립했다.

화학사업과 플라스틱 가공업으로 주목받던 럭희그룹도 1958년 국내 최초의 전자공업사인 금성사(현 LG전자)를 설립하면서 1960~70년대 국내 가전 시장 장악을 위한 기반을 다져나갔다.

금성사는 1959년 국내 최초의 라디오 개발을 시작으로 1960년대에는 선풍기, 자동전화기, 자동 전화교환기, 냉장고, 흑백TV, 에어컨, 세탁기 등을 잇달아 개발 판매하면서 국내 전자전기 부문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1960년대 말에는 호남정유(현 GS칼텍스)가 정부로부터 제2정유공장의 실수요자로 선정되면서 럭희는 최정상의 그룹사로 급부상했다.


건설로 일어서 자동차 등으로 사세를 확장한 현대그룹의 성장도 눈부셨다. 현대그룹은 1967년 현대자동차를 설립하고 포드와 어렵사리 계약을 하고 현대 최초의 승용차 코티나를 선보였다. 그후 포니로 세계에 자동차를 수출하게 되고 현대자동차는 지금까지도 세계로 뻗어가는 원동력을 얻게 된다.

1960년대 건설·자동차·전자·화학 등이 기업 성장의 축으로 성장했다면 1970년대부터는 정부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은 중화학공업이 재계판도를 크게 바꿔 놨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로 넘어오면서 기업집단 중 삼호, 삼양, 개풍, 동아, 동양, 화신, 한국글라스가 상위 10위권에서 밀려났고 대신 현대, 한국화약, 동국, 효성, 신동아, 선경, 한일합섬이 진입했다.

특히 삼성 이병철 회장과 동업 관계를 청산한 조홍제 회장이 일으킨 효성, 국내 최초의 철강 전문기업으로 거듭난 동국제강 등이 이 시기를 대표하는 그룹들이다. 이와 함께 해태, 삼환, 국제, 선경(현 SK그룹), 벽산, 두산, 코오롱그룹 등이 큰 성장을 했다.

반면 한때 위세를 떨치던 삼호그룹과 화신그룹은 이 시기에 공중 분해됐다. 또 상위 10대 그룹에 자리하진 못했지만 1974년 등장과 동시에 ‘재계 신데렐라의 탄생’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재벌 반열에 올랐던 율산그룹은 창업 후 5년 만에 사라지는 아픔을 겪었다.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신군부가 주도했던 중화학 투자 조정 과정에서 성장 한계에 부딪힌 기업들이 쇠락한 반면 첨단산업에 눈길을 돌려 사업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꾼 기업들이 부상했다.



상위 10대 그룹 중에는 동국, 대한, 신동아, 한일합섬이 밀려나고 대우, 쌍용, 한진, 대림 등이 새로 진입했다. 이외에도 동아, 한일합성, 동부, 한화, 금호, 대성, 삼미, 한보, 진로, 기아그룹 등도 고속 성장하며 재벌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1970~80년대 정부의 적극적인 산업 육성 정책을 등에 업고 ‘한강의 기적’이라 불릴 만큼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뤄냈던 국내 유수 기업들은 1990년대에 들어 험한 산을 만나게 된다. 1990년대 말 들이닥친 외환위기. 이는 국내 역사상 유례없는 파급효과를 퍼트리며 재계 판도를 바꿔 놓았다.

특히 1995년 재계 랭킹 3위를 기록했던 대우그룹은 1999년 잠시 삼성그룹을 제치고 재계 2위에까지 올랐지만 복잡한 채무관계로 결국 그해를 넘기지 못하고 공중 분해됐다. 당시 6위까지 올라갔던 쌍용그룹도 무리하게 진출한 자동차산업 탓에 몰락하게 됐고 1998년 재계 10위에 위치했던 동아그룹도 워크아웃을 거쳐 파산신고에 이르렀다.

1998년 현대차그룹으로 흡수된 기아그룹은 1995년 8위까지 올랐으나 부실 경영으로 이듬해 상위 30대 기업에서 빠졌다. 이외에 한보, 동아, 한라, 진로, 해태, 삼미, 한일, 벽산 등 1980년대 후반부터 고속성장하며 주목을 받았던 많은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반면 삼성그룹은 외환위기의 파고에도 성장세를 이어갔다. 1993년 출시한 애니콜 브랜드를 시작으로 휴대폰 사업을 확장해 본격적인 세계시장 점유에 나섰다. 그 결과 세계시장 14%를 점유해 휴대폰 시장 세계 3위의 위상을 기록 중이다. 2001년 이후에는 재계 순위 1위를 고수하며 사실상 ‘독주’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다.

1990년대 삼성그룹과 함께 재계 쌍벽을 이뤘던 현대그룹은 2000년대에 들어 삼성과 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1990~2000년대
‘IMF’ 넘고 질적 성장

2000년 이른바 ‘왕자의 난’을 겪으며 그룹이 분리수순을 밟은 것. 1987년 공정거래위원회의 30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이 시작된 이후 한 번도 1위 자리를 놓친 적이 없던 현대그룹은 내분으로 자동차그룹이 분리되면서 삼성에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하지만 분리된 현대자동차그룹은 재계 2위를 기록하며 삼성의 뒤를 쫓고 있으며 현대중공업그룹, KCC그룹 등 방계 기업군도 상위 30대 기업집단에 소속되어 있어 여전히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이외에도 IMF 파고를 무사히 넘긴 SK그룹과 LG그룹이 현재 재계 ‘빅4’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지난 60여 년간의 국내 재계 흐름을 살펴본 결과 과거 정부의 지원정책만을 등에 업고 급격히 사세를 불린 기업의 쇠락은 빠르게 이뤄졌다. 1960~80년대 재계 상위 10대 그룹의 변화 폭이 큰 것도 이 같은 이유로 해석된다. 특히 1964년 당시 상위 재벌 그룹 중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룹은 삼성과 LG, GS에 불과하다.

경제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국내 재계는 여타 국가에 비해 짧은 기간 동안 고속 성장을 이룬 만큼 부침도 심했다”며 “급변하는 환경 속에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 이에 도태되는 기업들의 탈락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반면 “미래 경제 환경에 발맞춰 재빨리 경영혁신을 단행한 기업은 외환위기와 국제경기 침체라는 높은 장벽에도 성장세를 이어왔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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