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부호 뜯어보기 2탄> 국내 10대 그룹 18년성적표

2009.08.04 13:29:42 호수 0호

‘떵떵’거리던 기업 60% ‘역사 뒤안길’

1990년대의 시작인 1991년부터 2000년대의 끝자락인 현재까지 20년이 채 안 된 시간임에도 재계는 그동안 적잖은 지각변동을 겪었다. 1990년대 말을 전후해 찾아온 외환위기(IMF)의 파도에 휩쓸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기업이 있는가 하면, 위기를 기회로 삼아 그 빈 공간을 채우고 급속하게 성장한 기업들도 있다. 1991년 이후 풍미했던 재벌그룹들의 현 주소를 살펴봤다.

1991년 재계순위 비교… 18년 만에 다시 쓴 新 권력지도
IMF 파고 견딘 장수 기업 독주… 부실경영 기업은 ‘와해’



1991년 당시 종합소득세 납부 1위는 안병균 나산그룹 전 회장(경영은퇴)이다. 신고소득 47억원, 납세액 23억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별세)도 4위에 랭크됐다.

삼성그룹
2001년 이후 독주

또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각각 2위와 5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18년이 지난 현재 판도는 완전히 달려졌다.
10위안에 꼽혔던 나산그룹과 동아그룹은 자취를 감추었다. 1980~90년대 납세 1위를 고수했던 한진그룹도 9위로 밀려났다.
반면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은 계속 상위권을 유지, 장수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지난 4월 현재 자산총액 기준을 살펴보면 이들 그룹은 각각 자산규모 1위와 2위를 차지하며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롯데그룹이 5위로 진입, 새로운 한국 대표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자산규모 174조9000억원을 자랑하는 삼성그룹은 1991년 당시 5위에 랭크됐다가 1996년 현대그룹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1999년에는 대우그룹에 밀려 3위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2001년 이후에는 줄곧 재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전 회장은 철저히 소비자를 고려한 제품 생산으로 IMF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그룹의 질적 성장을 이뤘다. 이에 경기 한파가 몰아치는 와중에도 삼성그룹 관련주들은 변화가 없다. 이미 해외시장에서도 탄탄한 신용도와 시장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범삼성계 기업들도 활약 중이다. 1991년과 1993년 독립경영을 선언한 신세계그룹과 CJ그룹은 꾸준히 몸집을 불려 각각 재계순위 19위(12조원)와 17위(12조3000억원)에 올라있다.
현대차그룹도 빼놓을 수 없는 장수그룹이다. 1991년 당시 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대정공을 이끌고 있었으며 종합소득세 납부 2위에 랭크됐다. 이후 현재까지 재계순위 2위(117조2000억원)를 차지하며 현대가의 아성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현대자동차 선두
나산·동아·대우 퇴출


그러나 1987년 공정위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이 시작된 이후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놓친 적 없던 현대그룹의 명성은 빛이 바랬다. 2001년 고 정주영 회장이 세상을 뜬 직후 그룹 분리에 나서야 했던 탓이다.
당시 현대그룹은 IMF를 거치며 현대건설과 현대전자 등 핵심계열사의 부채가 증가하면서 경영난이 심화됐고 2000년 ‘형제의 난’을 겪은 끝에 구조조정과 계열분리 수순을 밟았다. 현대차그룹은 이후 정몽구 당시 현대차 회장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인천제철 등을 갖고 현대그룹에서 분리해 나가면서 형성됐다.
현대차그룹 이외에도 당시 떨어져 나간 현대가의 방계 기업들 중 명성을 이어가는 곳이 있다.

재계순위 6위(40조9000억원)를 차지한 현대중공업그룹, 16위(12조6000억원) 현대그룹, 29위(6조6000억원) KCC그룹, 31위(5조9000억원) 현대백화점그룹, 33위(5조7000억원) 현대산업개발 등이다.

계열분리로 각자
생존경쟁 현대그룹

현재 삼성·현대그룹과 함께 재계 ‘빅4’로 꼽히는 기업은 SK그룹과 LG그룹이다. 이들은 각각 재계순위 3위(85조9000억원)와 4위(68조3000억원)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IMF 파고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성장했다. SK그룹은 2003년 SK글로벌 사태와 소버린의 경영권 위협 등 시련을 겪었지만 순위는 오히려 상승했다.

롯데그룹은 지난 18년간 장족의 발전을 한 대표 기업으로 꼽힌다. 1991년 당시 불과 90위에 랭크됐던 롯데그룹은 2009년 현재 5위(48조9000억원)로 수직 상승했다.
업계는 롯데그룹의 이 같은 빠른 성장에 대해 국내와 일본으로 양분된 자본구조를 통한 탄탄한 자산과 2000년 이후 꾸준히 성장 중인 실적이 바탕이 된 것이라고 해석한다.

나산·동아그룹
‘이름만 아련히…’


반면 지난 18년간을 돌이켜보면 이름만 아련한 그룹들이 많다. 1990년대 초반 기업경영의 황제로 재계를 군림했던 나산그룹과 동아그룹도 CEO의 독단적인 경영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나산그룹의 몰락은 대주주의 무차별적인 자금횡령이 주요 원인이다. 실제 안병균 나산그룹 전 회장은 나산종합건설에서 756억원을 빌려 쓴 뒤 갚지 않았다. 나산종합건설의 도움으로 538억원 규모의 오피스텔을 지었지만 이 공사대금도 상환치 못했다.

뿐만 아니다. 나산그룹은 지난 1996~97년 이미 빚을 갚을 능력을 잃은 나산종합건설과 나산유통에 862억원을 빌려줘 돈을 떼였다. 결국 이후 나산그룹의 주요계열사는 법정관리로 넘어가게 됐고 안 전 회장은 사무실과 고급승용차를 비롯한 총수 프리미엄 모두를 박탈당하게 됐다.
동아그룹 역시 그룹 총수로 인해 몰락의 나락으로 빠진 경우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의 신화를 일궈내며 1991년 당시 재계순위 8위를 차지했던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은 1998년 5월 그룹이 부도위기에 몰리면서 경영권을 포기했다.

동아그룹의 몰락에는 55년 동안 명성을 떨쳤던 동아건설의 자금난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금융기관에 4조5000억원이 빚이 있었던 것이다. 채권단은 동아건설만을 살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결국 동아건설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와 함께 대한통운과 국제운송 등 4개사는 동아건설에 합병돼 매각됐다. 또 공영토건, 동아엔지니어링, 동아TV, 동아항공여행사 등 6개사는 청산됐다. 
1991년 상위권을 차지했던 그룹은 아니지만 이후 급속한 성장으로 90년대를 주름잡았던 대우그룹도 빼놓을 수 없다. 대우그룹은 1999년 잠시 삼성그룹을 제치고 재계 2위에 까지 등극한 기록이 있지만 복잡한 채무관계로 결국 그 해를 넘지 못하고 해체됐다. 업계는 90년대 삼성을 바짝 위협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우그룹이 몰락한 원인에 대해 총수 중심의 경영 시스템을 오점으로 꼽는다.

실제 당시 대우그룹의 모든 의사결정권은 김우중 전 회장에게로 통했다. 실무진에서 무모하다는 반대의견이 나와도 김 회장의 사인 하나면 모든 것이 통할 정도였다. 막대한 차입금을 안고도 김 회장의 ‘세계경영’이라는 꿈만 쫓아 해외진출에 나선 것도 그룹을 나락으로 이끈 원동력으로 해석된다.
당시 재계 6위까지 올랐던 쌍용그룹도 현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무리하게 자동차산업에 진출했다가 경영난에 빠진 탓이었다.

추억으로 사라진
90년대 거물 ‘대우’

빚더미에 오른 쌍용은 계열사들을 하나씩 팔기 시작했지만 결국 모기업인 쌍용양회마저 무너지면서 몰락했다. 이밖에도 한라·해태·신호·강원산업·진로·뉴코아·거평 등은 자산 및 지분매각으로 사실상 그룹이 해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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