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왕국 몰락<上>금간 형제경영 ‘백투더 퓨쳐’

2009.08.04 09:22:07 호수 0호

먼저 간 선대회장들 지하서 통곡한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동반 퇴진했다. 말이 좋아 동반 퇴진이지 실제론 형제간 경영 분쟁의 신호탄이나 다름없다. 그동안 외부로 노출되지 않았던 불신과 반목이 쌓이다 쌓이다 결국 터진 것. 지난 25년간 ‘형제경영’의 모범을 보여 왔던 금호가이기에 그룹 안팎의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형제의 난’이 벌어지고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과거를 되짚어보고 미래를 내다봤다.

‘창업주→장·차남→3남’ 경영권 이양…4남 차례서 올스톱
 무리한 M&A 추진으로 ‘치고’ 독단적 지분 확대로 ‘박고’


재벌총수 일가의 경영권 분쟁. 한번 터졌다 하면 속수무책이다. 가족이란 관계는 더 이상 없다. 피붙이의 치부를 낱낱이 파헤치며 말 그대로 진흙탕 싸움도 불사한다.
법정 공방은 기본. 가히 혈투를 방불케 할 정도다. 겉으론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속내는 뻔하다. 십중팔구 목적은 ‘돈’이기 마련. ‘돈이 피보다 진하다’란 말이 실감되는 대목이다.
재벌가 경영 분쟁은 창업세대가 물러나고 경영권이 2·3세로 넘어가면서 심화되고 있다. 현대그룹이 그랬고, 롯데그룹이 그랬다. 또 두산그룹, 한화그룹, 한진그룹 등 국내 내로라하는 재벌그룹들도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나 한입 너 한입’
25년간 우애 꽝

이번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말썽이다. 금호가 3·4남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갈등이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금호가의 ‘골육상쟁’은 의외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그동안 여타 기업들로부터 부러움을 샀을 정도로 돈독한 형제경영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장자 승계 원칙인 다른 그룹과 달리 형제끼리 경영권을 공유한 것. 형제간 우선순위에 따라 그룹 회장과 지주회사를 맡는 방식이다. 최근 몇년간 재계가 혈족간 경영권 분쟁으로 얼룩진 상황에서 금호가의 형제경영은 더욱 빛을 발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946년 고 박인천 창업주가 17만원의 자본금으로 미국산 중고택시 2대를 사들여 설립한 광주택시가 모태다. 이후 1948년 금호고속(옛 광주여객)을 설립하면서 버스운수업으로 사업을 확장한데 이어 1960년 금호타이어와 1970년 금호석유화학 등을 잇달아 설립하며 1973년 계열 6개사로 ‘그룹’체제를 갖췄다.
박 창업주는 슬하에 5남3녀(성용-경애-정구-강자-삼구-찬구-현주-종구)를 뒀는데, 딸을 제외한 아들들에게 각 계열사 경영을 맡겼다. 재계에선 보기 드물게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경영을 맡는 전통이 생긴 시초다.

박 창업주가 1984년 타계하자 장남인 고 박성용 명예회장이 ‘지휘봉’을 물려받았다. 박성용 명예회장은 1965년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교수로 일하다 1968년 귀국, 대통령 경제비서관과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등을 지냈다. 박 창업주의 권유로 1972년 금호실업 부사장으로 본격적인 경영인의 길을 걸었다.

박성용 명예회장은 1988년 정부로부터 제2민항 설립업체로 선정되는 등 그룹의 제2도약을 이끌었다. 그룹 매출도 수천억원대에서 수조원대로 끌어올렸다.
2005년 세상을 뜬 박 명예회장은 65세가 되던 1996년 바로 아래 동생인 고 박정구 명예회장에게 자리를 넘겼다. 박성용 명예회장이 그룹의 도약기를 이뤄냈다면 박정구 명예회장은 지금의 궤도에 오른 안정기를 일궜다.

마찬가지로 박정구 명예회장도 65세가 되던 2002년 별세하자 3남인 박삼구 회장이 그룹 4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65세가 되면 형제에게 경영권을 이양하는 금호가의 ‘총수 정년 65세 원칙’이 여기서 나왔다.
박삼구 회장이 올해 64세인 점과 5남 박종구 전 교육기술부 차관이 줄곧 공직에 몸을 담고 있어 경영에 나서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인 점 등을 감안하면 내년께 4남 박찬구 회장이 무난히 사령탑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그룹 내부 한 관계자는 “금호가는 형제 중 한 명이 회장을 맡지만 집안의 대소사부터 그룹의 경영현안까지 중요한 의사결정은 철저한 가족회의를 통해 결정돼 왔다”며 “재벌가 재산 싸움이 툭하면 터지는 가운데 금호가의 모범적인 형제경영 모델은 충분히 재계에 교훈이 될 만했다”고 말했다.
특히 박 창업주는 혹시나 모를 분쟁의 불씨를 제거하기 위해 아들들에게 지분을 동등하게 나눠줬다. 금호가는 경영에 참여하지 않은 5남 박종구씨를 제외한 4형제의 지분이 모두 동일했다.

공교롭게도 금호가 4형제는 아들을 1명씩 두고 있는데 이들 또한 사이좋게 비슷한 비율로 계열사 지분을 늘려갔다. 실제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룹의 양대 지주회사 격인 금호석유화학과 금호산업의 지분구조를 보면 2·3세 부자들의 지분 합계가 오차 없이 딱 맞아 떨어졌다.
금호석유화학 지분은 ▲박성용(0%)-재영(10.01%) ▲박정구(0%)-철완(10.01%) ▲박삼구(5.30%)-세창(4.71%) ▲박찬구(5.30%)-준경(4.71%) 등 한결같이 10.01%씩 보유했다. 금호산업 지분도 ▲박성용(0%)-재영(3.4%) ▲박정구(0%)-철완(3.4%) ▲박삼구(1.36%)-세창(2.04%) ▲박찬구(1.36%)-준경(2.04%) 등 3.4%로 역시 같았다.

다른 계열사의 경우에도 세 가족이 똑같은 지분 비율로 사고팔았다. 일례로 2006년 6월 박삼구 회장 부자는 금호타이어 주식 6만7770주를 매입했는데 박찬구 회장 부자도 형 식구와 같이 6만7770주를 사들였다. 같은 날 이들의 두 형을 대신해 재영-철완씨도 금호타이어 주식 6만7770주를 매수했다.
 
‘황금 지분율’ 깨고
지주회사 지분 늘려

하지만 이도 잠시. 금호가의 ‘황금 지분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형제경영에 흠집이 나기 시작한 것.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가 화근이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건설업계 1위인 대우건설에 이어 여세를 몰아 지난해 물류업계 1위인 대한통운을 삼켜 단숨에 재계서열 11위에서 8위(민영화 공기업 제외)로 뛰어올랐다. 그룹 측은 2건의 대형 인수·합병(M&A)에 무려 10조원에 달하는 돈을 쏟아 부었다. 국내 M&A 사상 최대의 자금이 투입된 사례다.
이때부터 경영난이 가중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두 대어를 낚기 위해 회사채 등을 늘렸고, 이는 부채 증가로 이어져 그룹 전체의 유동성 위기를 불러왔다.

이 와중에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실적 악화는 ‘금호 왕국’을 완전히 코너로 몰았다. 급기야 대우건설 인수 당시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풋백옵션’이 발목을 잡으면서 대우건설을 재매각하는 등 아슬아슬한 벼랑 끝에 서게 됐다.
자연스레 박삼구 회장의 책임론이 불거졌다. 그룹 안팎에서 무리한 덩치 키우기가 그룹의 재무건전성을 망쳤다는 추궁이 쏟아졌다. 박찬구 회장은 “대우건설, 대한통운 등을 무리하게 M&A하면 경영 상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적극 반대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찬구 회장 측에서 박삼구 회장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붓자 재계 호사가들 사이에선 “형제간 우애에 금 가는 소리가 들린다”는 불화설이 나돌았다. 당초 그룹 측은 “전혀 근거 없는 악의적인 음해성 악성 루머”라고 일축했지만 ‘설’은 금세 현실로 나타났다.
형에게 불만을 품은 박찬구 회장이 ‘황금 지분’ 원칙을 깨는 ‘쿠데타’를 일으킨 것. 박찬구 회장 부자는 최근 금호산업 지분을 모두 팔고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18.47%로 늘렸다.

<박찬구> ‘유동성 위기’ 박삼구 책임론 추궁
<박삼구>‘동생 먼저 배신’ 전격 동반퇴진 결정


반면 박삼구 회장 부자의 지분율은 11.77%다. 결과적으로 ‘형제경영의 표본’이라 불릴 만큼 우애를 과시했던 금호가의 25년 아름다운 전통이 막 내린 셈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우건설 등에 대한 무리한 M&A로 유동성 위기에 몰린 이후 책임소재를 놓고 두 형제가 벌인 ‘기 싸움’이 경영권 분쟁으로까지 이어졌다”며 “형제간 불화로 회사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으로 빠져드는 등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고 전했다.

박삼구 회장도 지켜만 보지 않았다. 박찬구 회장을 끌어내리는 동시에 자신도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동반 퇴진 결정을 내렸다.
앞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그룹 경영위원회를 개최해 대주주 가계간 협의내용을 토대로 박삼구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는 대신 박찬법 항공부문 부회장을 5대 그룹 회장으로 추대했다. 거의 동시간대 열린 금호석유화학 이사회에선 박찬구 회장의 대표이사 해임안을 가결했다.
박삼구 회장은 지난달 28일 퇴진 기자회견에서 “(제가) 유고 시 내부 전문경영인이나 덕망 있는 외부인사를 영입해 그룹을 이끌기로 이미 선친과 형님들인 선대 회장들과 (별세 전) 합의가 있었다”며 “앞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그룹에서 40년 넘게 일해온 전문경영인 박찬법 부회장이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기장을 잃은 ‘금호기’는 패닉 상태다. 그 원인이 총수일가의 경영 분쟁이란 점에서 더욱 충격적인 분위기다. ‘형제의 난’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상당기간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갈 길이 먼 회사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박삼구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도 재무구조 개선작업을 예정대로 진행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회사 측은 다급할 수밖에 없다. 풀어야 할 숙제가 산더미인 탓이다.

당장 유동성 개선이 문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과 금호생명, 강남터미널부지 등 돈 될 만한 자산을 내다팔아야 하는 처지다. 향후 그룹 유동성 개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 지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중에서도 대우건설의 풋백옵션 해결이 급선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 인수 때 투자자들과 맺은 풋백옵션에 따라 올해 말까지 대우건설 주가가 3만2000원을 밑돌면 약정 가격으로 주식을 모두 되사야 한다.

그룹 현안 산더미
다툼 본격화 전망

재무적 투자자들이 사들인 대우건설 주식은 1억2000만주로, 전체 주식의 약 40%에 달한다. 대우건설의 주가가 현재 1만2000원대에 머물고 있어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선 올해 말까지 4조원 가량의 ‘실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회사 측은 주요 매각 작업에 적지 않은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너의 부재로 구조조정 현안을 조속히 매듭짓지 못할 것이란 지적이다.
무엇보다 박찬구 회장이 ‘재반격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만약 형제간 갈등이 법정다툼으로 비화되는 등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될 경우 그만큼 매각 작업은 순탄치 않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룹 측은 유동성 개선 로드맵이 중단되거나 차질을 빚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룹 관계자는 “그룹의 사활이 걸린 유동성 확보 작업은 새로 추대된 박찬법 회장이 경영을 맡아 별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라며 “금호생명 매각이 막바지에 달하는 등 자산 매각이 속도를 내고 있어 대우건설의 풋백옵션 등 나머지 현안도 순차적으로 해결해 곧 안정을 되찾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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