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석촌동 살인사건’의 범인들이 이전에 4명을 더 살해한 사실이 드러났다. 묻히는 듯했던 이들의 여죄가 드러난 것은 편지 한 통이 화근이었다. 이들 일당은 밝혀지지 않았던 살해사실을 적은 편지를 옥중에서 주고받다 편지를 읽은 또 다른 수감자의 신고로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범행을 할 때마다 마약을 복용한 상태에서 잔인하게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5년 전 살인사건으로 복역 중이던 범인의 여죄 드러나
공범과 주고받은 편지 속에 살인사실 내용 담겨 들통
“세월이 갈수록 (살해한) 사람들 모습이 떠올라 괴롭다.”
살인을 저지른 혐의로 복역 중이던 이모(43)씨는 자신과 함께 범행을 저질러 복역 중인 또 다른 이모(63)씨에게 위의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를 본 것은 이씨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수감자가 편지를 보고 있었고 이를 경찰에 신고하면서 감춰졌던 진실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수면 위 부상한 미제사건 진실
웃지 못할 사건의 주인공인 두 이씨는 이미 5년 전에도 잔혹한 범인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른바 ‘석촌동 상가 연쇄 살인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던 것. 두 사람은 2004년 12월8일 낮 1시, 서울 송파구 석촌동 모 상가 3층의 전당포에 침입해 금품을 털다가 이에 반항하는 전당포 주인을 둔기와 흉기로 살해했다. 또 살인현장을 목격한 인근 비디오방 종업원을 쫓아가 살해했다. 당시 대낮에 벌어진 잔혹한 ‘묻지마 살인’에 세간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러나 범인은 좀처럼 잡힐 줄을 몰랐다. 그러는 사이 두 이씨는 성형외과에 침입해 의사를 흉기로 위협하고 돈을 빼앗는 등 10여 차례에 걸쳐 강도행각을 하며 도망자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강도짓으로 빼앗은 수표를 쓰고 다닌 것이 화근이었다. 경찰의 추적 끝에 강도행각이 들통 났고 살인사실까지 드러난 것.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2004년 초 막노동판에서 만나 필로폰을 함께 투약한 것을 계기로 친해진 뒤 병원, 전당포 등 현금을 많이 보관하는 업소를 골라 강도짓을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이들은 살인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철창신세를 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4년 후인 2008년 8월, 43세의 이씨는 63세의 이씨에게 편지 한 통을 보낸다. 이 편지에는 “2004년 방이동 빌라에 들어가 부녀자 2명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자 모습이 떠올라 괴롭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편지를 본 것은 이씨뿐만이 아니었다. 우연히 또 다른 재소자 A씨가 이 편지를 읽었고 편지에서 본 내용을 적어 경찰에게 보냈던 것. 덕분에 4년에서 10년 이상 미궁에 빠져 미제사건으로 빠질 뻔했던 4건의 살인사건 전모가 밝혀졌다.
먼저 43세 이씨는 2004년 10월 다른 이씨 집에 가던 중 송파구 방이동의 한 빌라에 가스 검침원이라고 속이고 들어가 김모(56·여)씨 등 2명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그는 필로폰을 투약한 상태였으며 빌라에서 훔친 현금카드로 50만원을 인출했다. 그는 경찰에서 “집에 들어가 흉기로 위협하는데 여자들이 나를 공격한다는 환상이 생겨 범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사건 발생 당시 현금인출기 CCTV에 모자와 마스크를 쓴 용의자의 모습이 찍혔지만 수사에는 아무런 진척이 없어 미제사건으로 남을 뻔했다.
그러다 편지의 내용을 본 경찰이 부검기록과 사건기록을 면밀히 살펴본 뒤 43세 이씨를 조사해 범인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경찰은 10개월에 걸쳐 방이동 사건 현장 주변의 탐문수사를 벌였고 당시 조사를 받았던 참고인을 재조사해 진실이 드러나게 됐다. 63세 이씨가 저지른 두 건의 살인사건도 덩달아 밝혀졌다. 이씨는 2001년 2월 전북 익산의 한 서점에 들어가 점원을 살해했다.
또 1995년 필로폰 투약 상태에서 차를 몰다 사람을 친 뒤 시신을 내다버린 혐의도 추가로 드러나 관할 경찰서가 수사에 나선 상태다. 이 밖에도 두 이씨의 공동 범행 몇 가지가 추가로 드러났다. 그중 하나는 2004년 1월에 벌어졌다. 두 사람은 당시 서울 논현동에서 신문사 직원을 가장해 남모(45)씨의 승용차에 접근했다. 그리고 금품을 훔치려다 남씨에게 발각돼 남씨의 오른팔을 찌른 뒤 도주했다. 한 달 뒤에는 월계동 이비인후과 병원에서 의사를 흉기로 위협해 20만원을 빼앗아 달아나기도 했다.
마약 하고 흉기 휘둘러
이들은 범행을 할 때마다 마약에 취해 별다른 죄의식 없이 잔혹하게 살인행각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석촌동 사건을 비롯해 살인을 할 때마다 마약에 취해 있었다”며 “환각 상태라 죄의식 없이 잔인하게 범행을 저질렀다”고 전했다. 서울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는 복역 중인 두 이씨에게 강도살인 혐의 등을 추가해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