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구 표방하고 철저히 조직원 훈련시킨 ‘이태원파’ 경찰에 덜미
깔끔한 외모, 날렵한 몸매 엘리트 조직원 뽑아 수습과정 2~4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조직폭력배(이하 조폭)들을 선발하고 훈련하는 방식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거부감을 주지 않는 용모와 긴 가방끈이 폭력배의 자격조건이 될 정도다. 누가 봐도 위협을 느낄 만한 험상궂은 얼굴과 거대한 몸집은 더 이상 매력적인 조폭의 조건이 아니다. 최근 덜미를 잡힌 이태원파의 조직원 선발과정이 이를 여실히 보여줬다. 전국구로 뻗어나갈 채비가 한창이었던 이태원파는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조직원들을 길들여왔다. 달라진 조폭사관학교 풍경을 취재했다.
‘키 175cm 이상, 용모 단정, 대졸자 우대.’
최근 세상에 알려진 폭력조직 이태원파가 내세운 신입조폭 자격조건이다. 언뜻 보면 서비스직의 신입사원 모집 광고 같지만 이는 엄연히 조폭을 뽑는 기준이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두 패로 나뉘어 활동하다 ‘전국구 조폭’을 표방하며 세력을 합친 이태원파는 조직원 선발부터 훈련, 행동강령 교육, 원로조폭 대접까지 철저하고 까다로운 방식으로 조직을 꾸려나갔다.
전국구로 발돋움하려
엘리트조폭 뽑아 교육
가장 먼저 이태원파가 중점을 둔 것은 조직원들의 외모관리였다. 이들이 가장 경계하는 외모는 ‘나 조폭이야’라고 써놓은 듯한 험상궂은 얼굴. 얼굴에 흉기 자국이나 흉터가 있거나 타인에게 거부감을 주는 얼굴을 가진 지망생은 가차 없이 탈락시켰다.
소위 ‘깍두기’라고 불리는 각진 머리스타일도 이 조직에선 환영받지 못하는 헤어스타일. 비만에 가까운 둔해 보이는 몸집을 가진 이들도 이태원파의 식구가 될 수 없었다.
한마디로 전형적인 조폭의 외모를 가진 이들은 선발조차 하지 않았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일반인들과 섞여도 튀지 않는 평범한 외모였기 때문이다. 이태원파는 단순 무식해 보이는 겉모양새보다는 깔끔하고 엘리트 같은 준수함을 필요로 했다.
이처럼 외모관리에 신경을 쓴 이유 중 하나는 자신들이 폭력배라는 사실을 감춰 경찰 등의 타깃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또 하나는 조직에서 운영하는 각종 불법 사업을 합법적인 사업으로 위장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학벌도 중요했다. 조폭의 세계에서는 도무지 쓸모없을 것 같은 가방끈을 자격요건에 넣은 것은 과거처럼 싸움만 잘한다고 해서 전국구 조직으로 클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때문에 대학생을 영입하기도 했다고 한다. “글로벌 조폭이 되려면 무식해서는 안 된다”며 조직원에게 고등학교에 들어갈 것을 강요했던 코믹영화의 한 장면이 현실 속에서도 나타난 것.
조직원 선발만큼이나 행동강령도 까다로웠다. 먼저 일본 야쿠자를 모방해 ‘조직을 이탈하면 손가락을 자른다’는 규칙을 만들어 충성심을 강요했다. 실제 지난 2006년에는 이태원의 한 호텔에서 조직을 탈퇴하겠다는 행동대원 이모(26)씨 등 7명에게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위협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지 관리도 행동강령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태원파는 조직원들에게 ‘동네에서 술 먹지 않는다’는 규칙을 주지시켜 왔다.
행여라도 관할구역에서 술을 마시다 일반인들과 시비가 붙으면 품위가 손상될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에게 폭력조직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탓이다. 경찰은 “자신들이 일류조폭이라는 이미지 관리를 위해 철저한 사생활 관리를 강조했다”고 전했다.
단체생활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조직원 결혼식에는 반드시 단체로 참가해 선배들에게 90도로 인사해야 하는 등 겉으로 보이는 단결력에 중점을 둔 것. 휴대전화를 항상 켜 놓고 일이 벌어지면 10분 내 출동해야 한다는 규칙도 만들었다.
이처럼 까다로운 선발조건을 거쳐 행동강령을 익힌 후에는 혹독한 훈련이 조직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뽑혔다고 해서 모두 조직원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신입사원이 인턴과정을 거치듯 2~4년 정도의 수습기간이 있었던 것. 이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이태원파의 정식 조직원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들은 용산구 이태원 일대의 주택을 빌려 인턴조폭들을 합숙시키며 체계적인 교육을 했다. 인근 헬스클럽에서의 체력훈련을 기본으로 흉기사용법, 문신을 드러내며 상대를 위협하는 기술, 출동 명령 후 정해진 시간 안에 신속하게 집결하는 훈련 등을 집중적으로 시켰다.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워크숍 행사도 주기적으로 가졌다. 경기 가평의 민박집에서 2박3일간 합숙훈련을 하며 싸움 연습, 문신 새기기 등을 했고 선배와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키웠다.
이처럼 이태원파가 조직원선발부터 훈련까지 까다로운 절차를 만들어 조직을 운영한 것은 전국구 조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조직의 역사가 짧은 신생 조폭인 이태원파는 빠른 시간 안에 전국 조직으로 인정받기 위해 철저하게 조직을 관리해 왔다.
조폭 티 안 내고
손쉽게 돈벌이
조직의 후계자를 미리 뽑은 뒤 전국을 돌며 지방 조폭들과 친목을 도모하며 네트워크를 쌓아가기도 했다. 이들은 연간 3~5차례 광주와 부산 등을 돌며 해당 지역의 거물급 폭력조직으로부터 향응과 접대 등을 받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과거 이름을 날렸던 원로 조폭들을 극진히 대접해 점수를 따기도 했다. 칠성파나 신상사파 등 유명 조직의 원로들을 호텔 등에서 대접하며 유명세를 얻어간 것. 이 같은 방식은 실제로 효과를 얻어 서울 대표 조직으로 인정받을 만큼 급성장했다.
그러나 돈을 버는 방식은 여느 조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불법 도박장이나 오락실 등을 운영하거나 각종 이권에 개입해 폭행과 협박으로 대신 돈을 받아주는 등의 전통적인 돈벌이가 그들의 주 수입원이었던 것.
2008년 8월22일에는 서울 서초구 N빌딩 철거 현장에서 보상에 불만을 품은 세입자 김모(32)씨의 의뢰를 받아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드러났다. 구속된 김씨 등 이태원파 조직원들은 이날 공사를 중단시키기 위해 철거 인부 10여 명에게 각목을 휘둘러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히고 건물주를 협박해 퇴거 합의금 명목으로 6억원을 받아 3억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또 한남동과 역삼동 등에 불법 카지노 등 사설 도박장 7곳을 바지사장을 내세워 운영하며 활동 자금을 마련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태원파는 불법 유흥업소나 재개발지역 철거 용역 등 전통적인 조폭사업을 합법적인 사업으로 위장하기 위해 외모 등 이미지 관리를 철저히 한 것으로 보인다”며 “요즘 조폭은 이태원파처럼 평범한 겉모습을 한 경우가 많아 적발이 쉽지 않다”고 전했다.
서울경찰청 형사과는 폭력조직 결성 등의 혐의로 이태원파의 부두목 김모(32)씨 등 13명을 구속하고 조직원 손모(24)씨 등 7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요즘의 조폭들은 과거와는 달리 특유의 조폭색깔을 지우고 일반인들과 융화해 손쉽게 돈벌이를 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한때 조폭사관학교를 전담했던 A(50)씨도 최근 달라진 조폭합숙생활에 대해 입을 열었다.
A씨는 “요즘 조폭들은 일반인들이 밀집해 있는 아파트 등에서 합숙을 하는데 주민들과의 마찰을 없애기 위해 조폭 특유의 색을 감추는 데 중점을 두고 훈련한다”고 밝혔다.
예전 같으면 기피대상 1호였던 은신처인 아파트나 주택이 조폭들의 훈련소가 되면서 일반인들에게 폭력배라는 사실이 들통 날 것을 우려하게 된 것.
A씨는 “주로 3명에서 5명이 한 아파트에서 합숙하는데 동별로 이런 합숙소가 존재한다. 단지 내 적게는 10개에서 20개 정도다. 유사시 이들은 기동대 역할로 순식간에 모이면 50~100명 정도가 된다”고 전했다.
주택가에서는 서로를 부르는 호칭에도 주의한다고 한다. 조폭들의 상징인 ‘형님’이란 호칭도 주민들 앞에선 힘을 빼고 부르도록 시킨다. 또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는 90도 인사도 금지시킨다고 한다.
A씨는 “이 같은 교육의 이면에는 주민신고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 자리한다. 신고로 경찰의 습격을 받기라도 하면 점조직으로 만들었던 은신처가 모두 해체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라고 설명했다.
아파트 합숙하는 조폭들
주민과 마찰 없애려 노력
그렇다면 이들이 아파트 안에서 하는 훈련은 어떤 것일까. 예절교육, 몸 만들기, 행동강령 익히기 등이 주요 일과다.
A씨에 따르면 합숙소에서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예절교육이다. 서열이 확실한 조폭세계에서 그들만의 예절은 조직을 순탄하게 끌어나가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또 조직에 순응하고 명령에 복종하는 일원으로 훈련시키면 필요한 곳에 빠르게 집합하는 등의 효과도 얻을 수 있어 조직마다 다른 규칙이 있기 마련이다.
A씨는 “합숙에서 무엇보다 철저하게 교육시키는 것은 선후배 사이의 기율 확립이다. 조직에 가입하면 기수를 묶어 주는데 이 기수가 중요하다. 기수는 주로 나이 순으로 묶어주는 게 관례다. 조직에 몸담은 순서대로 기수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때문에 잔인한 방법을 동원, 기강을 확립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직을 배신하면 꼭 보복한다’는 법칙도 필수 교육 사항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본보기 차원에서 배신한 조직원을 집단 구타하는 현장에 합숙 조직원들을 참여시키기도 한다고.
이 밖에도 헬스클럽이나 검도, 격투기장 등에서의 운동으로 체력과 순발력을 기르는 훈련, 실제 상황에 대비해 흉기로 인형 등을 찌르는 실습훈련 등도 훈련소의 주요한 일과들이다.
A씨는 “요즘 조폭들은 경찰들의 눈을 속이고 원활한 사업을 위해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교육을 받고 있다”며 “겉모습은 화려해졌을지 몰라도 생계유지조차 힘든 것이 많은 조폭들의 실제 모습이기 때문에 조폭에 대한 환상은 버리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