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애도! 비통한 대한민국의 죽음

2009.05.26 13:22:11 호수 0호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전대미문의 충격적인 사건이 대한민국에서 발생했다.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검찰 수사를 받고 사법처리만을 남겨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저인 김해 봉하마을 뒷산에서 투신해 한 많은 인생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이를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지난 토요일 아침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접한 국민들의 충격과 상처는 감당하기조차 힘든 지경이다.

직접적 원인은 두 달여가 넘는 검찰의 수사에 엄청난 심적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때문으로 확인됐다. 그는 유서에 “그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해 책도 읽을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고 남겼다.

대명천지에 어떻게 이런 비극이 일어날 수 있는지 참으로 애석하고 비통하기 그지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국가의 지도자가 아무리 큰 비리와 만행을 저질렀어도 이처럼 끔찍한 최후를 선택한 예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노 전 대통령을 ‘삶과 죽음이 하나’임을 절감하게 할 만큼 그렇게 힘들게 했던 것일까.

그보다 더한 비리를 저지르고도 버젓이 살아서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받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만한 일’로 왜 하필 죽음이란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상황 앞에 할 말을 잃는다.


지금 비탄에 빠진 대한민국 국민들은 한마디로 정신적 공황상태임에 분명하다. 얼마 전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될 때만 해도 엇갈린 반응을 보였던 국민들이었다.

“처음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누구보다 도덕성을 강조해놓고 어찌 이럴 수 있냐”며 씻을 수 없는 배신감에 분노하는 국민들이 있는가 하면 “수천억원을 해먹은 전직 국가원수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인데 검찰이 너무하는 것 아니냐”며 오히려 이명박정부를 대놓고 힐난하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이는 “4년 후에 물러날 이 대통령도 과연 무사할까”란 의문을 제기하기까지 했다.

어디 그뿐이랴. 충격에 빠진 국민들은 “고양이가 쥐를 몰 때도 막다른 궁지로 몰진 않는다”는 말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석해하고 있다. “과도한 치부를 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대통령이 후원자로부터 그 정도의 돈은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무리한 검찰 수사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오죽하면 “현 정권의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 너무 지나쳤다”는 얘기까지 나올까.

이유와 경위야 어찌됐든 노 전 대통령은 지금 국민들 곁을 떠나고 없다. 정직하고 열심히 사는 보통 사람들이 성공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던 이상과 뼈아픈 회한만 가득 남긴 채 모든 굴레를 지고 홀연히 결자해지(結者解之)를 택한 ‘스스로 바보’ 노무현.

그의 죽음은 단순히 전직 대통령 개인의 서거가 아닌 ‘대한민국의 죽음’이다. 죽음도 초죽음이다.

역사 속 9명의 전직 대통령 가운데 단 한 명도 깨끗하고 당당한 지도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국민들에게 그나마 가장 추앙받고 존경받을만한 존재 가치와 여지를 지닌 그였기에 대한민국도 함께 죽었다.

그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을 때 국민들은 한결같이 그만은 사저인 봉하마을에서 여생을 편안히 보내길 바라고 또 원했다. 하지만 그 여망은 퇴임 후 1년 남짓한 시점에 처참하게 무너졌기에 대한민국은 여지없이 죽었다.

그의 죽음을 바라보는 세계인의 시선이 대한민국을 부정부패와 정치보복이 난무하는, 그래서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까지 끊는 측은한 나라로 여기기에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은 비참하게 죽었다.


전직 국가원수로서 마지막 선택을 하기 전 이런 사실을 한 번만 더 깊게 생각했더라면 이 같은 참담한 비극은 없었을 것이기에 더 가슴이 시리고 아프다. 얼마나 애통하면 ‘수행했던 경호원이 담배 한 개비만 가져 갔더라도…’란 말이 나올까.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말로를 눈뜨고 지켜봐야만 하는 국민들의 가슴은 이미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고 시커멓게 피멍까지 들었다.

이제 그를 둘러싼 사건의 모든 의혹은 죽음으로 끝났다. 끝까지 살아서 당당하게 밝히고 떳떳하게 대가를 치렀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죽음으로 모든 걸 묻고자 했기에 수사 역시 종결됐다.

하지만 그 진실은 먼 훗날 역사에서라도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그래야 두 번 다시 이 같은 불행하고 참담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삼가 고개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생에서의 원과 한은 모두 훌훌 떨쳐버리고 정쟁과 비리가 없는 세상에서 생전에 못 다 이룬 꿈과 이상을 맘껏 펼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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