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어설픈 '방송장악' 꼼수 대해부

2013.04.01 14:30:14 호수 0호

목 조르면서 해치지 않겠다 "그걸 믿으라고?"

[일요시사=정치팀] 박근혜 정부가 발의한 정부조직개편안이 여야의 첨예한 대립 끝에 지난달 22일 통과됐다. 지난 1월 말 법안이 제출된 이후 무려 52일만이다. 핵심쟁점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를 둘러싼 이견이었다. 야권은 박근혜 정부의 조직개편안대로라면 방송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며 끝까지 버텼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방송장악 의도는 추호도 없다며 발끈했다. 야권의 방송장악 우려는 정말 기우였을까? <일요시사>가 박근혜 정부의 어설픈 방송장악 음모를 분석해봤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4일 청와대에서 기습적으로 정부조직개편안과 관련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정부조직개편안이 국회에서 한 달 넘게 발목이 잡혀있었기 때문이었다.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의 정치공세에 국가에 대한 자신의 충정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방송산업을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하는 것은 정부가 방송산업을 장악하려는 것이라는 의혹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착한 대통령
나쁜 야당?

박 대통령은 "방송의 공정성, 공익성의 핵심인 지상파, 종편, 보도채널 주제를 모두 방통위에 남겨두기로 했고 뉴미디어 방송사업자가 보도방송을 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뉴미디어 방송사업자가 직접 보도방송을 하는 것을 보다 더 엄격히 금지하는 방안도 제시했다"며 "소셜미디어들과 인터넷언론이 넘치는 세상에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 과거의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본질에서 벗어난 정치적 논쟁으로 이 문제를 묶어 놓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 읍소 끝에 민주당은 '착한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 '나쁜 야당'으로 전락했다. 여론의 압박을 느낀 민주당은 많은 논란을 낳았던 정부조직개편안을 결국 거의 원안 그대로 통과시키고 말았다. 하지만 야권이 박 대통령의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발목잡기라는 비판을 받아가며 끝까지 반대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정부조직 개편 완료, 커지는 방송공정성 우려
"방송장악 의도 없다?" 착착 진행되는 방송장악

당초 박 대통령이 처음 제안한 정부조직개편안에는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의 기능 대부분을 신설될 핵심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로 넘기는 내용이 담겼었다. 지상파방송 허가 추천권과 종합편성·보도전문채널 승인권 등만 방통위에 남기고, 전반적인 방송진흥정책과 아이피티브이(IPTV)·종합유선방송(케이블)·위성방송에 관한 정책 권한을 미래부로 넘기도록 한 것이다. 방송 광고 정책, 8000억원의 방송통신발전기금 운용권, 방송 관련 법령 입법권도 미래부가 가져갈 예정이었다.

방송장악 착착
무조건 믿어라?

이명박 정부에서 방통위와 관련한 잡음이 많긴 했지만 방통위는 그나마 합의제 기구다. 방통위는 상임위원 5명 중 야당 추천 인사 2명이 포함돼 어느 정도 견제의 원리가 작동한다. 그런데 방통위가 맡던 방송 정책 대부분을 미래부로 귀속시킨다는 것은 장관이 혼자 전권을 쥐고 방송정책을 좌지우지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게다가 장관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그럴 생각이 없다지만 조직개편안이 원안대로 처리된다면 박 대통령이 얼마든지 방송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야권이 방송장악을 우려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실제로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 때에는 독임제 부처인 공보처가 방송 정책을 전담했는데, 김대중 정부 때인 지난 2000년부터 합의제 독립기구인 방송위원회에서 방송 정책을 맡았다. 방송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들어 정보통신부와 통합돼 방통위가 됐다. 그런데 방송 정책권 대부분을 장관이 지휘하는 독임제 부처에 다시 귀속시키자는 것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로 회귀하자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였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에서는 보도채널은 계속 방통위가 규제할 것이라면서 방송장악 의도가 없음을 거듭 주장했지만 비보도채널 역시 사회적 영향력을 지니고 여론을 형성한다. 비보도채널에서 방송하는 시사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를 미래부라는 독임제 부처에서 관리하겠다는 것은 언제든지 방송장악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었다.

때문에 야권은 정부조직개편안과 관련 새정부 발목잡기라는 비판 속에서도 무려 52일간이나 버티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야 협상에 따르면 정부조직 개편안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변경 및 허가와 지상파방송 재허가 문제는 민주당의 입장이 대부분 반영됐다. 여야는 방통위가 전파법상 방송국의 무선국 개설 등에 대한 허가·재허가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으며 SO 등의 변경 및 허가에 대해서도 방통위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했다.

이들 쟁점은 당초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강력히 반발했던 내용이지만 원내대표 협상을 통해 전격 선회한 것으로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별장 성접대 의혹으로 사퇴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 박 대통령의 인사 난맥상을 희석시키기 위한 조치가 아니었냐는 지적들도 나왔다. 그러나 방송장악 의도가 없다며 국민들에게 읍소하던 박 대통령은 정부조직개편안이 통과되자 돌변했다.


돌변한 새정부
순진한 민주당?

정부조직법 통과 뒤 이어진 박 대통령의 방송통신위원장과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인선 결과를 본 야권 관계자들은 "방송장악 의도가 없다던 말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방통위원장에 이경재 전 새누리당 의원을 내정했다. 이경재 방통위원장 내정자는 대표적인 친박계 인사다. 이 내정자는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비주류로 칩거하던 2009~2011년에는 친박계 중진으로 무게중심 역할을 했다. 개헌론, 세종시 수정론 등을 놓고 당내 친이계와 친박계가 충돌할 당시에는 박 대통령의 입장을 적극 옹호했다.

정치인 출신 비전문가인 이 내정자를 박근혜 정부 초대 방통위원장에 내정한 데 대해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국정철학을 공유하고 있다"는 황당한 이유를 댔다. 52일을 끈 정부조직개편안 협상에서 '방송 중립성 확보'를 명분으로 방통위에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도록 했던 민주당은 그야말로 뒤통수를 맞았다.

박 대통령은 방송통신융합을 기반으로 한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을 우리나라의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정작 방통위원장은 정치인 출신 비전문가를 임명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정부조직개편안의 원안을 고수한 이유가 정말 신성장 동력 육성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방송장악을 위한 것인지는 더욱 헷갈리게 됐다. 

또 지난달 23일 공포한 '미래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에 따르면 여야 합의에 의해 방통위의 소관업무로 존치하기로 한 방송광고, 방송프로그램 편성, 방송채널, 이용자 보호 정책 등이 미래부 관할 업무로 교묘히 둔갑했다.

여야 합의는 어디로 "새정부 발목 잡는 나쁜 야당?"
방통위원장에는 전례 없는 정치인 출신 측근 임명

특히 이 과정에서 미래부는 방송광고와 관련해 '방송통신광고'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면서까지 광고업무를 미래부의 소관사무로 정했다. 광고시장은 지상파, 뉴미디어 구분이 없이 같은 시장을 공유하며 현실적으로 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방송광고정책은 일관되고도 균형 잡힌 정책이 필수다. 기존에는 방통위가 '방송광고균형발전위원회 운영'을 업무로 지정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미래부는 여야 합의사항을 무시한 채 방송광고 업무와 거의 동일한 방송통신광고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방송광고 업무를 미래부의 업무로 지정해놓은 것이다. 이는 사실상 미래부가 편법을 써서라도 방송광고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방송프로그램 편성 정책과 채널정책, 개인정보보호정책에 대해서도 미래부의 양다리 걸치기는 심각했다. 이러한 정책은 여야가 지난달 22일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할 때 방통위 존치업무로 합의했던 사항이다.


미래부는 그러나 이번에 공포한 직제에서 ▲방송광고 및 방송프로그램 편성비율과 관련된 ‘방송법’ 위반에 관한 업무 ▲방송국의 채널배치 및 허가제원 조정 ▲개인정보 침해관련(접수된 사항에 한정한다)에 대한 자료 제출요구 및 검사를 소관 업무로 정해놓았다.

이와 같은 내용은 필연적으로 방통위 업무와 충돌할 수밖에 없고 정부가 방송을 입맛대로 주무르는데 큰 무기가 된다. 민주당의 신경민 의원은 이에 대해 "여야 합의를 뒤엎는 명백한 위약이며 독임제 부처가 방송정책을 관할하려는 꼼수"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여야 합의 무시
이어지는 꼼수

야권의 한 관계자는 "누군가가 절대 해치지 않을 거라면서도 서서히 목을 조이면 무조건 믿고 기다려야 하는가? 제도는 방송장악을 위한 플랜대로 착착 진행해나가면서도 방송장악 의도는 없고 야당만 나쁘다고 한다"며 "실제로 본인은 방송장악을 할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도 제도 자체를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방송장악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는 것은 나중에라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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