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천리' 대기업 주총 총결산

2013.03.25 14:25:29 호수 0호

혹시 했는데 역시…'짜고 친' 의사봉

[일요시사=경제1팀]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짜고 치는 고스톱' 같았다. 소액주주들의 권리는 올해 역시 '동면'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검찰 및 공정위 출신 사외이사 영입은 원안대로 의결됐고 기존 사외이사들도 대폭 재선임됐다. 3월 열린 주요 대기업 주주총회 모습이다. '일사천리'로 끝난 대기업 주주총회 교집합을 모아봤다.



3월 기업들의 주주총회가 막바지로 달려가고 있다. 삼성, 신세계, 현대차, CJ, 롯데, SK, 포스코 등 주요 그룹사의 계열사 등 상장사는 지난 15일과 22일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사내이사 선임, 정관변경 등의 안건을 처리했다. 일부 기업의 주총에서는 소액주주들의 반란이 예상됐지만 미풍에 그쳤다.



일부 그룹사에서는 후계자들의 위상 강화 움직임이 포착됐고 논란이 됐던 검찰 및 공정위 고위 인사 출신 사외이사 영입은 원안대로 의결됐다. 기존에 있던 사외이사들도 대폭 재선임됐다. 개혁은 없었다. 대부분의 주총은 30분 내외로 마무리됐다. '찬성이요' '동의합니다'라는 말이 남발했다.

두드러진 오너
경여참여 확대

이번 주총에서는 특히 오너 일가의 경영참여 확대가 두드러졌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현대모비스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에 재선임됐다. 정 회장은 이미 현대자동차, 현대제철, 현대건설 등 6개 회사의 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자동차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이로써 정 부회장은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기아자동차, 현대제철, 현대오토에버 등 6개 회사 이사가 되면서 현대차의 핵심 계열사 등기이사직을 모두 맡게 됐다.
지난 1월 계열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된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만장일치로 사내이사에 재선임됐다. 최 회장은 SK(주),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 등 3개 회사에서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재계 최고령 총수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롯데쇼핑 사내이사로 재선임됐다.


신 총괄회장은 롯데쇼핑 외에도 롯데제과, 롯데건설, 호텔롯데 등 6개 계열사에 등기이사로 등록돼 있다. 대홍기획과 롯데리아, 롯데알미늄 등 6개 계열사의 비상근이사직도 겸직하고 있다. 롯데그룹 주요계열사의 등기이사는 다 맡고 있는 셈이다.

롯데그룹의 최대 계열사인 롯데쇼핑의 등기이사 5명 중에는 신 총괄회장을 비롯해 그의 자녀들인 신동빈 이사와 신영자 이사가 있어 지배주주 일가가 전체 등기이사의 60%를 차지하게 됐다.

이미 CJ제일제당과 CJ, CJ E&M, CJ대한통운의 상근이사와 CJ시스템즈 등 4개 회사의 비상근 이사를 겸하고 있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CJ제일제당 사내이사에 올랐다.

'책임경영'이라는 명목으로 각 그룹 경영진들이 사내이사로 대거 진입한 점도 주목할만하다.

삼성전자는 주총에서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윤주화 제일모직 사장 대신 윤부근 생활가전(CE) 부문 사장과 신종균 IM(IT·모바일) 부문 사장, 이상훈 경영지원실장(CFO·사장)이 새롭게 사내이사에 합류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호텔신라는 차정호 면세유통 사업부장과 채홍관 경영지원실장을 신규 사내이사로 선임했으며 현대차는 김충호 사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의결했다. 현대모비스의 경우 전호석 사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을 의결했고 신세계는 정용진 부회장이 3년 만에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난 대신에 김해성 경영전략실 사장과 장재영 신세계 대표, 김군선 지원본부장을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관료·법조계 출신 사외이사 선임 원안대로 처리
30분 내외로 주총 마무리…소액주주 여전히 무시

이마트의 경우 김해성 사장과 박주형 경영지원 본부장을, KT는 표현명 T&C부문장과 김일영 그룹코퍼레이트센터장을 각각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현대제철은 박승하 부회장, 우유철 사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했다.

포스코는 장인환 부사장과 김응규 전무의 사내이사 선임안건을 의결했다. 장 부사장은 포스코의 주력인 탄소강사업부문장을, 김 전무는 부사장으로 승진해 경영지원부문장을 맡게 됐다.

기존 사외이사 재선임과 논란이 됐던 검찰 및 공정위, 법조계 출신 고위인사들의 사외이사 영입도 별 다른 문제없이 원안대로 의결됐다.


신세계의 경우 지난 14일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가 신세계의 이사선임건과 관련해 후보인 손인옥·손영래 후보에 대해 반대할 것을 권고했지만 15일 열린 신세계 주총에서는 사외이사 선임안이 무사 통과됐다.

손인옥 후보는 법무법인 화우 고문으로 최근 신세계가 인천시를 상대로 제기한 인천종합터미널 관련 가처분 신청 법률자문을 맡은 이력이 있다. 손영래 후보는 현재 법무법인 서정의 고문으로 있으며 국세청장을 지낸 이력이 있고 직권남용 등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및 추징금을 선고받은 바 있다.

삼성전자는 송광수 전 검찰총장과 김은미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원장을 신규 선임하고 이인호 전 신한은행장을 재선임했다. 송 전 총장은 검찰 재직 당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 의혹 수사와 대선 비자금 수사의 최고책임자였다.

현대제철은 정호열 전 공정거래위원장을 사외이사로 신규선임하는 안건을 의결했으며 김승도 한림대 환경생명공학과 교수를 사외이사로 재선임했다. 이와 동시에 김승도 사외이사와 성낙일 사외이사(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를 감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했다. GS는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현대차는 남성일 전 서강대 경제대학원장과 이유재 전 한국마케팅학회장을 사외이사로 재선임했다. 남 전 원장은 미국 로체스터 대학 박사 출신으로 현대 서강대 경제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 전 학회장은 미국 스탠포드대 박사 출신으로 현재 서울대 경영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SK C&C는 이용희 NICE신용평가 부회장이 사외이사로 신규선임됐으며 현재 사외이사인 주순식 전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이 감사위원으로 신규선임됐다.

CJ제일제당은 이기수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과 최정표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김갑순 딜로이트코리아 부회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사외이사 선임안
만장일치 통과

LG전자는 임기가 만료된 이규민 SK경제경영연구소 고문과 김상희 변호사가 재선임 됐다. LG화학은 김반석 부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했으며 김장주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와 김진곤 포항공대 화학공학과 교수를 신규선임했다.

포스코는 신재철 전 한국IBM 대표와 이명우 전 소니코리아 회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논란이 됐던 김재형 법무법인 지평지성 고문변호사는 일신상의 이유로 자진 사퇴했다.


송 전 총장을 삼성전자에 뺏긴 GS리테일은 서울고등법원 검사를 거쳐 감사원 감사위원을 지낸 박성득 현 리인터내셔날 변호사를 대신 영입했다.

검찰총장 뺏기고
검사 출신 영입

두산과 CJ에서 사외이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오대식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은 SK텔레콤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CJ에는 김갑순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이 자리를 잡았다. 문창진 전 보건복지부 차관은 CJ제일제당과 함께 올해부터 이마트 사외이사도 겸임하며 지난 2011년부터 한화 사외이사로 일해 온 정진호 전 법무부 차관은 호텔신라 사외이사직도 맡았다.

한미숙 전 대통령실중소기업비서관은 기업은행과 LG유플러스 사외이사를 동시에 맡았으며, 황이석 서울대 교수는 풀무원홀딩스와 LG생활건강을, 전성빈 서강대 교수는 신한금융지주와 LG유플러스 사외이사를 맡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고위 관료 출신을 비롯해 대학교수,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가들이 아닌 사람들이 사외이사를 장악하는 한국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아야 된다"며 "대기업 전방위로 펼쳐진 왜곡된 사외이사 제도를 이번 기회에 뜯어고쳐야 된다"고 지적했다.

거세지고 있는 경제민주화 바람과는 달리 대부분의 주총은 조용한 분위기 속에 '일사천리'로 끝났다. 삼성전자는 정기 주총을 1시간 만에 끝냈다.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 실적에 대한 칭찬 릴레이가 이어졌고 이사진 개편 등 3개 안건을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작년보다 30분 이상 빨리 주총이 마무리 된 셈이다.

"찬성이요" 남발
쉐도우보팅 악용

같은 날 오전 9시에 주총을 시작한 현대자동차도 30분 안에 마무리했다. 현대차는 이사 선임의 건 외에도 재무제표 승인의 건,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의 건, 정관 일부 변경의 건, 이사 보수한도 승인의 건을 모두 무리 없이 통과시켰다.

LG전자 역시 반대 의견 하나 없이 재무제표 승인과 정관 개정 승인, 이사 선임의 건 등 5개의 안건을 처리하면서 오전 8시30분 시작한 주총을 25분 만에 끝냈다. 의장의 감사 및 영업보고 시간을 제외하면 약 10분 만에 모든 안건이 통과한 셈이다. 지난해 주총은 23분 만에 마무리됐다.

LG화학도 오전 10시30분 시작한 주총을 25분 만에 끝냈고 LG이노텍 주주들도 40분 만에 주총장을 정리했다. 신세계와 이마트도 20∼30여분 만에 주총을 마무리했다.

올해 역시 주총이 금요일 아침 시간으로 몰리면서 직장에 묶인 소액주주들의 참여는 어려웠다. 소액주주들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도입된 전자투표제도를 신청한 상장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지난 2010년부터 시행된 전자투표제는 소액주주가 주총에 직접 참석하는 대신 인터넷전자투표시스템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설사 참여를 했다고 하더라도 간간히 들려오는 소액주주의 발언은 철저히 묵살됐다. 소액주주들의 반발 및 소란 등으로 5분여 만에 종료된 KT 주총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대기업은 주총일정을 순조롭게 마쳤다.

전자투표제 신청
단 한 곳도 없어

정족수 미달로 주총이 무산되지 않도록 주총에 참석하지 않은 주주들의 투표권을 예탁원이 임의로 행사하는 제도인 쉐도우보팅은 주주 감시를 피하고, 경영권을 보호하려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원활한 주총 진행을 위해 도입된 제도가 오히려 소액주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얘기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외부에서 주주와 회사 간 대결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며 "보유지분 차이가 크다는 점에서 소액주주들의 의견이 주총에 반영되기는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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