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토사구팽 정치' 대해부

2013.03.28 13:38:41 호수 0호

"사냥철 끝났으니 사냥개는 삶아 먹는다?"

[일요시사=정치팀] '대통합'은 지난 18대 대선의 최대 화두 중 하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국민 대통합'을 기치로 내걸고 반대 진영과의 스킨십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진정성 논란과 잡음도 있었지만 박 대통령의 행보 자체는 큰 의미가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대통령은 결국 지난 대선에서 51.6%라는 역대 최고의 득표율로 당선될 수 있었다. 그런데 대선이 끝나고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웬일인지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서는 대통합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어찌된 사연일까? <일요시사>가 박 대통령의 전형적인 '토사구팽 정치'를 살펴봤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는 그야말로 '종횡무진'이었다. '국민 대통합'을 기치로 내건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경선에서 승리한 다음 날인 지난해 8월21일 기습적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방문해 참배했다. 노 전 대통령은 박 대통령에겐 최대의 정적이나 다름없는 인물이었다. 가장 강력한 대선 상대후보였던 문재인 전 대선 후보의 정치적 기반이 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국민 대통합
극우 대통합

며칠 후에는 역시 대통합 행보의 일환으로 노동계를 끌어안겠다며 전태일 재단을 방문했다.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의 강력한 항의로 재단 관계자와 만남을 갖지 못하고 돌아서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지만 당시 박 대통령의 행보 자체는 박수를 받았다.

이후에도 박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보단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전통적 취약층인 호남과 2030세대 득표율에서 의외의 선전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대통합을 기치로 내건 박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지역 간, 이념 간, 세대 간 갈등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호남눈물 닦아준다더니? 대놓고 호남홀대
선거 끝났으니 '팽' 선진당 관계자 '황당'

그로부터 벌써 한 달이 지났다. 하지만 어떤 연유에선지 지금까지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서 대통합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다. 한 가닥 희망을 품었던 반대진영의 사람들은 허탈함을 넘어 분노를 느끼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15일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 4대 권력기관장과 17개 장·차관 및 외청장 인선을 끝으로 사실상 첫 인사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4대 권력기관장에 호남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그나마 외청장 17명 중 2명이 호남출신으로 분류됐다.

또 지금까지 단행된 17명의 장관 인선 중에서도 호남출신은 단 2명에 불과했다. 호남출신 차관은 전체 20명 중 3명으로 5년 전 이명박 정부 초반 차관인사 때보다도 절반 이상 줄었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실시한 정무직 인사까지 포함하면 호남출신은 총 63명 중 8명에 불과했다. 반면 영남출신은 23명, 서울출신은 15명으로 호남배제, 영남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호남 홀대
MB 뺨치네

박 대통령이 인선에서 지역안배에 실패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채동욱 검찰총장 후보자는 서울 출생이지만 선산이 전북 군산에 있어 매년 선산을 다니는 사람"이라며 선산이 호남에 있으니 호남사람으로 이해해 달라는 억지 주장을 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오히려 거센 반발만 불러왔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호남의 눈물을 닦아주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호남의 인재들, 아들과 딸들이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대탕평 인사를 펼치겠다"고 수차례 약속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보수진영 후보로는 처음으로 호남에서 두 자릿수 득표율을 거뒀다. 그러나 대선이 끝나자 호남을 토사구팽 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노동계도 토사구팽 했다.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이 노동계로부터 별다른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대선 기간 노동계를 향해 끊임없이 손을 내밀었던 것을 감안하면 현재 박 대통령의 행태는 비판을 피하긴 힘들 듯 하다.

요즘 노동계의 분위기는 흉흉하다. 현대자동차, 쌍용자동차, 재능교육 등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곳이 4~5곳에 이르지만 해결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대선 기간 대통령이 되면 정기적으로 노사 대표들을 직접 만나 현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지만, 막상 취임 후에는 노동계의 목소리에 철저히 귀를 닫고 있다. 새 정부의 노동정책과 관련해 '사실상 정책이 없다'는 불만이 나올 정도다.


노동 관련 공약도 줄줄이 후퇴하고 있다. 당초 2015년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은 국정과제에서 그 시기가 빠져 버렸다. 사회보험 확대도 비정규직 대책이라기보다는 저임금 근로자를 위한 방안이다. 특수고용직 대책은 '립서비스' 수준이라는 냉혹한 평가를 받았다. 정년 연장과 관련해서도 '단계적 시행'이라는 표현을 추가해 사실상 임기 내 실행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내각이나 대통령 비서진엔 노동문제를 조언할 전문가가 아예 보이지 않는다. 애당초 노동문제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이유다. 이를 방증하듯 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취임식에서 노동분야와 관련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을 하지 않았다.

무대응 일관
답답한 노동계

진보진영과 2030세대도 박 대통령으로부터 호되게 뒤통수를 맞았다. 우선 진보진영의 경우 박 대통령이 대선 기간 국민 대통합을 강조한 만큼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대탕평 인사를 펼칠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특히 지난 대선이 보수와 진보로 극명히 갈린 채 치러졌다는 점에서도 이 같은 화해절차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대선이 끝난 후 돌변해 주변인물들을 극우인사들로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당선 후 첫 인사부터 국민대통합과는 거리가 먼 인물을 기용했다. 인수위 수석대변인에 극우논객 윤창중 '칼럼세상' 대표를 임명한 것이다. 그는 야권 인사들을 '정치적 창녀'라고 비난하는 등 거친 언사로 유명한 극우인사였다.

이 밖에도 박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정권에 기여했던 인사들의 2세들을 대거 기용했고, 극우적 안보관을 지닌 국방장관과 공안검사 출신의 법무장관을 내정했다. 안보라인을 육사출신 인사들이 독점한 것에 대해서는 군사정권이 부활한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들린다. 지금까지 박 대통령의 인선을 두고 국민 대통합이 아니라 극우 대통합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2030세대에서도 대선이 끝난 후 '속았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지난 대선은 세대 간 대결로 치달았지만 박 대통령은 의외로 2030세대에서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20대에서 33.7%, 30대에서 33.1%의 지지를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지상파 3사 출구조사 기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세대별 득표율을 따로 집계하지 않는다). 실로 의외의 결과였다. 이 또한 박 대통령이 국민 대통합을 외치며 2030세대와 스킨십을 확대한 결과였다. 

국민 대통합은 어디가고 극우인사 잔뜩
사라진 대탕평 의지…자기 사람 먼저

하지만 대선이 끝나자 2030세대의 가장 대표적인 숙원사업이던 '반값 등록금' 시행은 또다시 불투명해졌다. 박 대통령은 대선공약에서 소득 2분위까지는 등록금 전액, 소득 3~4분위 학생에게는 75%, 소득 5~7분위 학생에게는 절반, 소득 8분위 학생에게는 등록금의 25%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올해 책정된 국가장학금 예산은 2조7750억원. 각 대학들이 부담하는 교내외 장학금은 2조2000억원 정도다. 반면 박 대통령의 공약대로 장학금을 통한 '반값 등록금'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7조원 정도가 필요하다. 결국 올해 국가장학금은 지원비율을 전체적으로 줄이거나 특정 소득분위 계층만 공약대로 집행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정부는 내년 국가장학금 예산을 4조원으로 늘릴 계획이고, 여기다 대학들의 자체 노력이 더해지면 7조원을 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지만, 이는 정부의 추산에 불과하다. 내년에도 박 대통령의 공약이 시행될 지는 불투명하다.

이밖에도 박 대통령은 심지어 대선과정에서 합당한 선진통일당을 사실상 토사구팽 했다는 논란에도 휘말렸다. 새누리당이 대선 직전 선진통일당과의 합당과정에서 합의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내홍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당의 일부 인사들은 대선과정에서 박 대통령 측이 저지른 불법선거운동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믿은 내가 바보"
벌써 때늦은 후회

새누리당과 선진당은 지난해 11월 선관위에 합당을 신고했다. 합당 당시 새누리당은 선진당 소속 총 45명의 유급직원 중 26명에 대해 '대선 이후 고용'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한 명도 고용승계가 이뤄지지 않았다. 게다가 선진당 출신 정치인들은 기존 새누리당 정치인들의 텃세로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당장 다음 공천에서 선진당 출신들이 대거 탈락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있다.

한 정치전문가는 "사실 대선 기간 박 대통령이 국민대통합을 부르짖을 때부터 이 같은 상황은 어느 정도 예견됐었다"며 "모든 사람들을 섭섭함 없이 다 챙긴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최소한 대통합 약속을 지키려는 시도는 있었어야 하는데 대선이 끝났으니 모두 끝이라는 무관심한 태도는 전형적인 토사구팽 정치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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