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⑥최원석의 동아그룹

2013.03.26 16:35:00 호수 0호

3번 결혼 3번 이혼…한눈팔다 국대 건설사 '와르르'

[일요시사=경제1팀]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산다.'
잘 나가던 기업이 망했다는 소식은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런데 망한 재벌이 '깡통'을 찼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IMF 이후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줄줄이 공중분해 됐지만 해당 기업에서 중책을 맡았던 경영진과 그 가족들은 멀쩡히 잘 살고 있다. 미리 '주머니'를 채워놔서일까.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망한 기업' 수뇌부들의 현주소를 조명해봤다.



동아그룹은 고 최준문 창업주가 1945년 8월 대전에서 설립한 충남토건사를 모체로 한다. 충남토건사는 53년 3월 대전지방의 청라저수지·남포간척지·대천간척지 토목공사를 통해 기반을 굳히고 57년 동아건설산업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했다.



동아건설은 그해 본사를 대전에서 서울 중구 서소문동으로 이전했다. 60년대 들어 동진강 간척공사, 왕십리발전소공사, 경부고속도로 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으며 특히 제1차 경제 다목적 토목사업이었던 동진강 간척공사는 동아건설이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받침대 역할을 했다.

대한통운 안고
훨훨 날았지만

그룹으로서의 골격을 형성하게 된 때는 68년 당시 국영기업이었던 대한통운을 인수하면서 부터다. 정부는 대한통운을 민영화하면서 동아건설에 경영권을 맡겼다. 동아그룹은 대한통운을 토대로 건설·운송 체제로 외형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만성 적자와 경영부실의 늪에 빠져 있던 대한통운은 동아건설에 인수된 지 3년 반 만에 완전히 정상화됐으며 한국 경제 발전에 든든한 징검다리역할을 했다.

동아그룹은 73년 투자회사인 동아종합상사를 건립해 무역업에 진출하고 기업을 공개,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다. 75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지사를 설치한 후 리야드·지다·뉴욕·도쿄·런던 등지에도 지사를 설치했다.

이에 앞선 66년부터 동아콘크리트 사장으로 경영 수업을 받던 최 창업주의 장남 원석씨는 77년 건강악화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동아그룹 회장직에 올랐다


최 회장은 80년대 세계에서 가장 큰 공사로 평가받던 리비아 대수로공사를 수주했다. 사하라 사막지하에서 뽑아낸 물을 리비아 북부 벵가지와 시르테까지 보내는 총 1874km의 인공수로를 건설하는 역사적인 프로젝트를 한국의 작은 건설사가 따낸 것.

최 회장은 83년 39억달러 규모의 리비아 대수로 1단계 공사를 따내면서 카다피 리비아 원수와 인연을 맺은 뒤 공사 수행능력을 인정받아 90년 62억달러 규모의 2단계 공사, 98년 51억달러 규모의 3단계 공사까지 따냈다.

부도후에도 동아일가 남부럽지 않은 호화생활
학원 이사장 지내면서 "한푼 없다" 세금 체납

동아건설은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통해 현대건설과 함께 국내 최고 건설회사 반열에 올랐고 '인류 역사상 최대 토목공사'라는 찬사를 받음과 동시에 세계 최대 백과사전인 '브리태니커'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만일 동아그룹이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리비아와의 인연은 물론이거니와 동아건설을 비롯한 한국 기업들이 중동이라는 유력한 성장 시장에서 확고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동아그룹 해체 후인 2010년 간첩 사건으로 리비아와 외교문제가 불거졌을 때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수행하면서 카다피와 막역한 관계를 맺었던 최 회장을 외교사절로 활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 정도였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동아그룹은 97년 12월 기준, 동아건설·대한통운·동아생명·동아증권·동아엔지니어링·공영토건 등 22개 계열사를 둔 재계서열 10위의 대기업 자리를 꿰찼다. 주력 기업인 동아건설과 대한통운의 매출은 3조원과 1조1500억원으로 매출 순위 각각 31위와 75위의 기업이었다.

하지만 해외에서 잘 나간 동아그룹은 국내에서는 연일 뭇매를 맡고 있었다. 국내 다른 그룹 계열 건설사들은 아파트 건축과 그룹 자체 공사로 상당한 양의 일감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해외 공사에 주력했던 동아건설은 국내 재개발과 재건축 공사를 따내는 데 그쳤다. 신축과는 달리 이주비가 들어가는 재개발과 재건축 공사를 위해 동아건설은 제2금융권으로부터 막대한 단기자금을 차입할 수밖에 없었고 94년 49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성수대교(동아건설 시공) 붕괴와 외환위기까지 맞으면서 회사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결국 98년 초 최 회장이 부실 경영의 책임을 지고 경영권과 700억대의 재산을 내놓고 경영에서 물러났고 그해 8월 동아그룹은 국내 최초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기업으로 최종 확정됐다. '동아건설을 제외한 모든 계열사를 매각해 경영을 정상화하라'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동아그룹은 2000년 11월 법정관리 대상기업으로 결정돼 퇴출됐다가 2001년 5월 파산선고를 받으면서 55년 역사를 자랑하던 대형 건설사는 공중분해됐다.

재개발·재건축에
매달리다 급추락

2004년 분식회계, 배임, 불법 사기대출 등 혐의로 구속된 최 전 회장은 2008년 특별사면으로 자유의 몸이 됐지만 3번의 결혼과 3번의 이혼, 그리고 끊임없는 여자 연예인과의 스캔들 등 '불량총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 전 회장 일가는 회사가 분해된 뒤에도 남부럽지 않은 호화생활을 누려왔다. 먼저 최 전 회장은 학교법인 공산학원 이사장으로 있으면서도 회사 부도 후 돈이 없다는 이유로 줄곧 세금을 체납해왔다. 지난해 말까지 최 전 회장이 체납한 세금은 6억6000만원에 이른다.

2007년에는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동아방송예술대학의 학내 기업이 만드는 <굿바이 테러리스트>라는 영화에서 총감독을 맡아 영화계에 입문하기도 했다.

최 전 회장은 국세청의 눈을 피해 2011년 1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빅혼골프클럽의 회원권환급금 25만달러를 차남에게 양도하기도 했다. 또한 공산학원의 공금 10억원을 빼돌린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검찰은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최 전 회장을 체납처분 면탈혐의로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건설 대표이사와 예음 문화재단 이사장 등을 지낸 최 전 회장의 동생 원영씨는 1997년 10월부터 1998년 3월까지 경원학원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경원대와 경원전문대 학생들이 낸 등록금 201억원을 자신이 운영하던 예음그룹 산하 계열사의 부도를 막는데 사용한 혐의로 지난해 말 구속됐다. 이에 앞서 원영씨는 1993년 11월에 자산이 운영하던 예음문화재단 명의의 부동산을 성남교육청에 매각하고 받은 99억원 상당을 횡령한 혐의도 받았다. 이와 함께 경원전문대학의 강의동 등에 대한 공사를 자신이 운영하는 동아종합환경에 발주하도록 하고 선급금 명목으로 28억원을 지급, 법인에 손해를 입힌 혐의도 있다.

검찰 수사 시작되자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원영씨는 1998년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처벌을 피하기 위해 핵심인물인 예음그룹 종합기조실장인 장모씨 등을 일본으로 도피시키고 그해 12월 미국으로 도주했다가 지난해 말 미국 내 소재지가 노출되며 수사망이 좁혀지자 지난해 11월28일 자진 귀국해 수사에 응했다.

원영씨는 동아그룹 해체 전 최 전 회장과 공산학원을 둘러싸고 재산을 둘러싼 법정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형제의 모친인 임춘자씨가 최 전 회장을 고발한 것이 원인이 됐다. 두 형제가 가까스로 화해한 것은 지난 97년 2월이었다. 이에 앞서 95년에는 최 전 회장의 이복 여동생 혜숙씨가 최 전 회장을 상대로 재산 분할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에서 혜숙씨가 패소하면서 소송은 물거품이 됐지만 동아그룹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할 무렵 벌어진 두 번의 골육상잔은 채권단들이 최씨 형제로부터 등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됐다.

최 전 회장에게는 공식적으로 혼외 자식을 비롯해 전처들에게서 난 4남2녀가 있다. 최 전 회장이 20살일 때 한 여배우 사이에서 낳은 딸 선희씨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형 고 이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의 차남 재찬씨와 결혼했으며 지난해 3월 아들 준호·성호군과 함께 이건희 회장과 삼성에버랜드를 상대로 1000억원대 주식인도 청구소송을 내 주목을 받았다.

영화배우 전도연씨와 2000년대 초 염문설이 터지면서 화제가 됐던 장남 우진씨는 최 전 회장의 첫 부인인 김혜정씨의 소생이다. 김씨는 60년대 한국 영화계를 주름잡던 대표적 육체파 배우. 최 전 회장은 62년 김씨와 첫 결혼식을 올렸으나 파경했다. 우진씨는 옛 '동아맨'들이 포진하고 있는 W엔지니어링에서 전략기획실장(상무)으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씨 가족들도 밥 걱정 없다"
감시 피해 자녀에 재산 양도
기업 사위·명문가 며느리로

우진씨의 여동생 유정씨는 강수창 대원화성 명예회장의 장남 상엽씨와 혼인을 올렸다. 대원화성은 나이키, 아디다스 등 세게 유수의 스포츠사에 인공피혁을 공급하고 벽지제품을 생산하는 중견회사다.

76년 최 전 회장이 두 번째 부인으로 맞은 배인순씨는 70년대를 풍미한 가수 펄 시스터즈의 멤버다. 배씨는 2003년 출간한 저서 <30년 만에 부르는 커피 한 잔>에서 최 전 회장과 결혼하기까지의 사연, 고초, 고액 위자료설 등에 대한 심경을 털어놨다. 특히 최 전 회장과 스캔들이 있었던 연예인들이 J, K, L 등의 이니셜로 등장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둘 사이에는 3명의 아들이 있으며 98년 이혼했다.

배씨의 첫째 아들이자 최 전 회장의 차남 은혁씨는 2003년 6월 액상원두커피, 차, 인스턴트식품 등을 취급하는 쟈댕의 윤영노 회장의 딸과 혼인했다. 윤 회장은 윤영달 크라운해태 회장의 친동생이다. 은혁씨는 최 전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공산학원에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며 체납처분 면탈 방조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라와 있기도 하다. 

최 전 회장의 삼남 용혁씨는 2006년 경 당시 정일순 라스포사 사장의 딸과 결혼설이 돌았지만 현재 생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사남 재혁씨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숨기고
아들은 모른 척

최 전 회장이 99년 세 번째 부인으로 맞아들였다가 2010년 4월 이혼한 KBS 아나운서 출신 장은영씨와는 자녀가 없다. 장씨는 연세대 재학 시절인 92년 미스코리아 선에 뽑혀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대중적 인기를 모은 KBS <열린음악회>를 진행하다가 27살 연상의 최 전 회장과 결혼했다. 장씨는 그의 언니인 혜영씨와 함께 방배동 서래마을에 위치한 커피숍을 운영 중이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동아그룹은?>

▲1945년 충남토건사 설립
▲1957년 동아건설산업(주)로 사명 변경
▲1968년 대한통운 인수
▲1973년 동아종합상사 설립(해외 사업 진출)
▲1977년 최원석 회장 취임
▲1983년 리비아 대수로 공사 수주
▲1990년 리비아 대수로 2단계 공사 수주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8년 최원석 회장 퇴진, 국내 최초 워크아웃 대상기업 확정
▲2000년 11월 법정관리 대상기업 결정
▲2001년 5월 파산선고, 그룹 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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