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김용준 후폭풍'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첫 국무총리로 지명했던 김 전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문턱 조차 밟지 못하고 닷새 만에 자진 사퇴한 탓이다. 박 당선인은 이와 관련 큰 충격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김 전 후보자의 낙마는 정치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인수위 운영방식부터 임명직 인선 과정과 기준까지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란 전망이다. 따라서 <일요시사>는 김 전 후보자의 사퇴와 함께 불어 닥칠 정치권의 후폭풍을 미리 예측해봤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김용준 총리 후보자 지명은 무척 파격적인 것이었다. 지난달 24일 박 당선인이 총리 지명을 예고한 뒤 인수위 공동기자회견장에 나타났을 때 기자들은 김용준 전 후보자가 당연히 인수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김 전 후보자 옆에 나란히 선 박 당선인은 갑자기 그를 총리 지명자라고 소개하며 "늘 약자 편에 서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분"이라고 지명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김용준 당신마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깜짝 인사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박 당선인의 깜짝 인사는 성공하는 듯 했다. 민주통합당에서조차 "강하게 몰아붙이기가 애매한, 우리를 난처하게 만드는 인선"이라는 말이 나왔다. 75세인 그는 소아마비를 딛고 최연소 판사에 임용돼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에 오르는 입지전적인 삶을 산 사회적 약자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박 당선인은 김 전 후보자의 청문회 통과를 그 누구보다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명 다음 날부터 김 전 후보자의 두 아들이 각각 체중 미달과 통풍을 이유로 병역면제를 받은 사실이 밝혀지며 논란이 시작했다.
부동산 붐이 일던 1970~80년대와 대법관 재직 중이던 88년~90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땅을 사들인 사실도 드러나면서 재산 증식 과정을 둘러싸고 투기 의혹도 제기됐다.
결국 김 전 후보자는 지난달 29일 돌연 후보직 사퇴를 선언했다. 이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가족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결정타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모두에게 존경받던 그는 한 순간에 각종 비리로 점철된 부도덕한 고위공직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유야 어찌됐든 김 전 후보자의 낙마는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김 전 후보자는 박 당선인이 공동선대위원장에서 인수위원장, 총리후보자로 연달아 발탁하면서 전폭적인 신임을 보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 전 후보자의 사퇴는 정치권에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제일 먼저 박근혜식 인선 스타일의 변화가 예상된다. 당선인 주변에선 능력도 중요하지만 청렴성 면에서 흠결이 없는 인물을 우선 기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도덕성이 인선 제1의 조건이 될 전망이다.
박근혜식 밀봉인사 만큼은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인선 과정에서 청와대의 검증을 받는 등 박근혜식 인사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식을 취하게 될 것이란 예측이다. 하지만 이 같은 인선 스타일의 변화는 자칫 제일 중요한 능력 검증을 소홀하게 될 가능성도 있어 우려스럽다.
새 정부의 장관 인선도 잇따라 늦춰지게 됐다. 최악의 경우 이명박 정부가 첫 국무회의를 노무현 정부 시절 기용된 총리 및 장관들과 치렀던 사태가 재현될 수도 있다. 사실 박 당선인은 장관 인선을 이미 대부분 마무리 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신만은 믿었는데…" 뒤통수 맞은 박근혜
확 바뀐 인사기준, 후폭풍 휩싸인 정치권
하지만 장관후보자 중 또다시 중도 낙마자가 생길 경우 박근혜 정권은 도덕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따라서 장관 인선을 앞두고 박 당선인 측은 후보자들을 일일이 다시 한 번 검증해보고 있다는 후문이다. 인사청문회 등의 일정을 고려한다면 새 정부 출범 날짜까지 일정을 맞추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또 김 전 후보자의 사퇴를 계기로 정치권에선 너도 나도 임명직을 고사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신상털기식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들의 사생활까지 적나라하게 노출되는데다 퇴임 후 재취업이 제한된다는 점 등이 고사 배경의 주요인으로 분석된다.
이와 함께 한국식 인사청문회 방식의 개정 논란도 본격화 될 것으로 보인다. 여권에선 "공직 업무와는 별 상관없거나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일들로 공직자 후보자들이 인신공격을 당하고 있다"며 "후보자의 정책 검증은 공개적으로 하되 개인 사생활이나 후보자의 인격에 관한 부분은 비공개로 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야권에선 "미국의 경우 인선 발표 전 백악관과 언론이 후보자의 도덕성을 철저하게 스크린하기 때문에 청문회장은 정책검증의 무대로 자리 잡을 수 있다"며 "이런 시스템이 부실한 우리나라의 청문회에서는 공직자들의 도덕성을 더욱 혹독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전 후보자의 사퇴로 엉뚱하게 불똥이 튄 곳도 있다. 바로 헌법재판소다. 헌법재판소는 낙마를 눈앞에 둔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의 비리 의혹, 안창호 재판관의 검찰총장 지원, 김용준 전 헌재소장의 부동산 투기 의혹 등 잇따라 터진 전·현직 헌법재판관들의 대형 악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헌법재판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무너진 것은 물론이고,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헌법재판관들이 정치권에서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는 모양새가 되면서 그동안의 판결 자체도 공정성을 의심받게 됐다.
무엇보다 김 전 후보자의 사퇴로 박 당선인의 리더십이 크게 상처를 받게 되면서 박 당선인의 국정운영 방식 전반의 변화도 예상된다. 박 당선인의 불통 리더십은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박 당선인 지지층에선 언론이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것 아니냐는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박 당선인의 일방적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는 것이다. 이미 국민들의 신뢰가 깨진 상태에서 박 당선인이 더 이상 일방적 리더십을 고집하기는 힘들 것이란 예상이다.
정치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으로 박 당선인이 야권과의 대화를 재개하는 등 불통을 깨는 순기능의 역할도 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박 당선인은 당선 이후 지금까지 야당과는 단 한번도 만남을 갖지 않았다.
청문회 기피증
마지막으로 한 정치 전문가는 "김 전 후보자의 사퇴는 박 당선인에게 악재임에 분명하지만 어떤 의미에선 예방주사일 수도 있다"며 "박 당선인이 지금까지의 불통을 깨고 앞으로의 인선 과정에서 참신한 인물들을 내세운다면 다시 한 번 정국의 전환을 꾀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