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들의 활약상이 날이 갈수록 기상천외해지고 있다. 이들 브로커는 전문적 지식이 필요한 분야에서 다리역할을 하면서 개인 또는 조직에게 도움(?)을 주고 수수료를 받고 있다. 문제는 불법행위를 알선해 돈을 챙기는 브로커들이다. 돈만 주면 뭐든 대행해주는 이들 브로커는 위장결혼, 연예인스폰서, 취업사기, 성매매, 불법대출 등의 분야에까지 손을 뻗어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는 상태다. 각종 분야에 진출해 더욱 쉽고 교묘하게 부정부패를 낳는데 한 몫 하고 있는 브로커의 세계를 쫓았다.
브로커의 사전적 의미는 ‘독립된 제3자로서 타인 간의 상행위의 매개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특정 상인에 종속되지 않고 매개가 이뤄지는 쌍방으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들 브로커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부동산에 있는 공인중개사, 변호사, 회계사도 엄밀히 말하면 브로커에 속한다. 사이버 공간에도 브로커는 수없이 존재한다. 대형 인터넷 마켓플레이스, 미팅·중매 사이트, 파일공유사이트 등 물건이나 사람 사이에서 거래를 도와주는 이들도 브로커의 범주에 들어간다.
브로커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약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 법률, 정치, 의료 등에는 빠지지 않고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브로커다. 이들이 없다면 개인이나 조직은 일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 비용을 더욱 많이 들여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브로커와 사기꾼
종이 한 장 차이?
문제는 이런 가운데 ‘검은 브로커’들이 판을 치고 있다는 것. 사실 ‘브로커와 사기꾼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브로커라는 직업은 범죄나 불법행각과 가까운 직업이기도 하다. 이들은 특히 권력과 돈, 성(性)이 결합되어 서로 주고받기를 하는 곳에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그중 하나는 정치 브로커다. 이들은 정치권력을 이용해 각종 청탁과 민원을 하려는 이들과 정치인사들을 연결시켜주는 가교역할을 한다. 그 사이에 부정한 검은 돈이 오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각종 ‘게이트’ 사건에는 언제나 브로커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커넥션과 거래의 한가운데에서 다리역할을 수행하며 불법과 비리가 원활하게 일어나게 한다. 공천장사에도 브로커는 빠질 수 없다. 이들은 정치판에 들어가길 원하는 이들을 정치권에 연결시켜주고 중간에서 수수료를 받아먹으며 부당이득을 챙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도 노 전 대통령이 재직할 당시 브로커 역할을 톡톡히 하다 망신을 당한 케이스다.
노씨는 태광 실업 박연차 회장의 재산을 개인금고처럼 사용하며 부산, 경남 지역의 각종 선거에 개입해 실세로의 입지를 굳혔다. 이처럼 돈과 권력이 상생하는 정치판은 브로커들에게는 매력적인 시장으로 한국 정치를 퇴보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법률, 의료, 부동산, 정치 등 각종 분야에 브로커 활약 두드러져
돈 노린 불법 브로커도 기승 부려 부정부패에 한몫 거들기도 해
정치계의 검은 브로커, 의료관광브로커, 위장결혼브로커 등 다양
불황 속에서 절박한 심경 가진 이들 노리고 접근하는 브로커까지
권력과 성(性)을 연결해주고 돈을 버는 브로커도 적지 않다. 이들 중 하나는 최근 그 존재가 부각되고 있는 연예인 스폰서 브로커다. 스폰서를 원하는 연예인과 그 연예인을 후원해 줄 능력이 되는 사람을 연결해 주고 일정 수수료를 챙기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모 여자가수의 폭탄발언과 고 장자연 사건으로 인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 여자연예인과 스폰서 간의 관계는 스폰서 브로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월에는 한 케이블 TV에서 스폰서 브로커의 고백이 방영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브로커가 출연해 스폰서와 연예인이 연결되는 과정과 계약조건 등이 담긴 계약서를 공개해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이 브로커는 연예인들이 A급부터 3~4단계로 나눠지며 A급 톱스타는 한 달 최대 10억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지금까지 톱스타 50여 명을 관리해왔다는 이 브로커가 스폰서로부터 받는 수수료는 대략 10%. 스폰서는 주로 기업체 회장이나 사업가, 의사, 조직폭력배 등이라고 했다.
이 브로커는 “TV나 영화에서 마음에 든 연예인을 찍은 스폰서의 주문에 따라 연락하기도 하고 돈이 필요한 연예인이 먼저 스폰서를 알아봐 달라고 전화를 걸어오기도 한다”며 연예인과 스폰서가 연결되는 방식을 설명했다.
무엇보다 스폰서 관계가 밖으로 새나가지 말아야 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스폰서 브로커의 역할이 큰 것은 당연지사. 스폰서 브로커가 거액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출 도와줄게”
검은 손의 유혹
최근에는 대출 브로커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불황과 함께 급전이 필요한 이들이 늘면서 이들은 더욱 활개를 치는 분위기다.
지난 3월에는 한국은행 출신 대출 브로커가 대출을 알선해 거액을 챙기다 덜미를 잡혔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는 대출 알선 대가로 거액을 받아 챙긴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한국은행 전 과장 유모(56)씨를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유씨는 한국은행을 퇴직한 후인 2005~ 2006년 H상호저축은행 대표이사 오모씨에게 부탁해 중소기업 세 곳에 657억원의 대출을 알선해 주고 그 대가로 11억5000만원과 20억원 상당의 사업 지분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 업체들이 유씨의 알선으로 대출을 받았으나 갚지 못했고 전남권 최대 상호저축은행이었던 H저축은행은 결국 2007년 3월 부실 대출이 쌓여 6개월간 영업정지된 뒤 파산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또 100억원대 대출을 받게 해주는 대가로 10억원대 알선 수수료를 챙긴 브로커도 적발됐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는 지난 5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양모씨를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양씨는 지난 2005∼2006년 H사 등 2개 업체가 H상호저축은행으로부터 각 100억원대 대출을 받도록 해주는 대가로 모두 10억원대 알선 수수료를 받아 챙긴 혐의다.
양씨는 또 당시 H은행 대표이사 오씨와 친분을 이용, 부동산 매입에 관여하면서 H상호저축은행이 시가보다 비싸게 부동산을 매입토록 한 뒤 5억여원의 뒷돈을 챙긴 혐의도 받고 있다.
의료계에서도 브로커들은 어김없이 활약 중이다. 병원과 환자를 연결시켜주고 커미션을 챙기는 이들이다. 특히 정부가 외국인 진료 알선을 법적으로 허용한 이후 의료관광을 오는 해외교포와 외국인들을 연결해주는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들 브로커는 서울 강남의 성형외과 등에 찾아가 환자를 알선해 줄 것을 약속하며 수수료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관광과 의료, 쇼핑을 접목시킨 패키지상품을 만들어 환자들을 유치한 뒤 30~40%의 높은 수수료를 받고 있다. 이처럼 과도한 리베이트로 인해 진료비를 떼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의료계관계자의 전언이다.
불법으로 장기매매를 알선하는 브로커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기불황이 지속되면서 돈벌이를 위해 신체 일부를 파는 것도 서슴지 않는 이들이 늘면서 브로커의 활약은 더욱 두드러지는 형편이다. 이들은 인터넷에 장기매매와 관련된 카페를 만들어 장기를 원하는 환자와 팔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연결해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다.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서 2007년부터 2008년 9월 동안 실시한 인터넷 장기매매 모니터링 결과 장기매도 2915건, 장기매수 82건, 브로커 25건이 적발되어 장기매매 브로커의 현주소를 알려주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장기매매를 원하는 이들에게 착수금을 가로채고 연락을 끊는 브로커사기까지 늘고 있어 환자들을 두 번 울리고 있기도 하다.
위장결혼을 알선하는 브로커도 적지 않다. 이들은 주로 한국 남성과 결혼을 원하는 조선족이나 동남아시아지역 여성들에게 돈을 받고 위장결혼을 돕고 있다. 지난 3월에는 한국에 입국하길 원하는 중국여성에게 위장결혼을 알선한 일당이 붙잡혔다.
경기도 구리경찰서는 중국여성을 상대로 위장결혼을 알선한 혐의(공전자기록등불실기재 등)로 최모(61·여)씨와 아들 엄모(35)씨 등 3명을 불구속입건했다. 경찰은 또 위장결혼에 가담한 이모(51)씨 등 내국인 남성 3명과 조선족 박모(44·여)씨 등 중국 여성 3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입건했다.
돈만 주면 무엇이든…
불법행위 ‘부채질’
경찰에 따르면 최씨 등은 2004년 4월 중국 심양에서 이씨와 박씨의 만남을 주선해 3개월 뒤 이들이 국내에서 허위로 혼인신고를 하게 하는 등 모두 4쌍의 위장결혼을 알선해 2000만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결과 최씨 등은 한국에서 취업을 원하는 박씨 등에게 소개비 명목으로 600만∼1200만원을 받았으며 이씨 등에게 위장결혼 대가로 300만∼40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가하면 자금난을 겪는 중소기업을 노린 브로커들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은 주로 은행권 대출이 막혀 제2금융권을 전전하는 중소기업에 접근해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접근한다. 그리고 자신이 정부쪽 사람들과 친분이 있다며 신청서류를 작성하면 정부의 지원금을 받게 해주겠다고 한 뒤 대출금의 40%에 달하는 수수료를 챙기는 것.
이처럼 절박한 중소기업인들을 두 번 울리는 브로커들이 늘자 중소기업청은 신고센터를 설치ㆍ운영하며 정책자금 지원관련 불법 브로커 신고자에 대해 최고 1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하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처럼 각종 분야를 가리지 않고 돈 되는 일이라면 어김없이 마수를 뻗치는 불법 브로커들. 불황으로 절박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노린 악덕 브로커들 역시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우려감이 팽배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