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시리즈> 김성수 기자가 파헤친 재벌가 신(新)혼맥 [제13탄] 불행의 씨앗

2009.04.07 00:39:17 호수 0호

‘출생의 비밀’ 배다른 형제는 용감했다

[일요시사=경제1팀] 재벌가 혼맥은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한두 다리만 건너면 사돈’이란 말이 통용될 정도로 ‘그들만의 성’은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다. 물론 재벌가문은 정·관계 및 학계 쪽으로도 거대하고 강력한 연줄망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사세 확장을 위해 권력층과의 정략결혼도 서슴지 않는다. 전략적 통혼을 통해 최고의 부와 명예, 권력을 한 손에 쥘 요량에서다. 5년 전인 2004년 시사지 최초로 재벌가 혼맥을 집중 해부해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일요시사>가 2009년 새해를 맞아 새 식구를 포함한 재벌가 신 혼맥을 유형·테마별로 새롭게 재구성해 봤다.





재벌가엔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배다른 식구’들이 많다. 재벌그룹 총수들의 일시적인 유희나 탐욕으로 세상에 홀로 남겨진 그들이다. 문제는 불행의 씨앗이 가족 간 갈등의 빌미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이복 형제간 재산 다툼이 단적인 예다. 

사실 재벌그룹을 일군 창업주 치고 이른바 ‘세컨드’를 곁에 두지 않은 사례는 드물다. 국내에 버젓이 살아있는 부인을 두고 해외에 ‘현지처’를 거느리는가 하면 요정문화의 산물인 ‘애첩’을 두기도 했다.

아슬아슬한 ‘양다리’를 걸친 경우는 대부분 창업 1세대에 집중돼 있다. 그룹 지휘봉을 물려받은 후세 경영인으로선 집안의 치부로 숨기고 싶은 비밀이 아닐 수 없다. 해당 그룹 측도 하나같이 총수 일가의 개인사란 이유로 ‘쉬쉬’하며 언급 자체를 극도로 꺼린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겐 배다른 동생이 있다. 그의 부친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한국에 부인이 있었지만 일본에서 일본인과 결혼해 소생을 더 뒀다. 이 창업주는 모두 10명의 아들딸이 있는데 이중 8명(3남5녀)만 본처인 고 박두을씨와 사이에서 낳은 자녀다. 맹희-창희-건희-인희(한솔그룹 고문)-숙희-순희-덕희-명희(신세계그룹 회장) 등이다.

나머지 2명은 이 창업주가 일본을 드나들면서 만난 일본인 부인과 사이에서 낳았다. 이들은 이 창업주가 타계 전까지 국내에 거주하다가 사망 후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전해진다. 


사정은 삼성가 줄기인 CJ일가도 마찬가지다. 이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씨는 부인 손복남(CJ그룹 고문)씨와 사이에서 재현(CJ그룹 회장)-재환(CJ제일제당 상무)-미경(CJ엔터테인먼트 부회장) 등 2남1녀를 뒀다. 이들 3남매는 숨겨진 남동생을 한 명 더 두고 있다.

부친 이맹희씨가 박모씨와 사이에서 몰래 낳은 재휘씨다. 재휘씨는 부친을 찾아 반평생을 헤매다 삼성가 장남이 아버지란 사실을 알고 2004년 이맹희씨를 상대로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 2006년 10월 대법원으로부터 승소 확정 판결을 받았다. CJ 일가의 공식적인 가족관계에 변화가 생긴 셈이다.

업계에선 향후 CJ그룹의 경영구도를 놓고 말들이 많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낌새는 없다. 재휘씨는 소장에서 “행방이 묘연한 아버지를 찾고 자식들에게 할아버지를 만나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재산을 물려받거나 가족으로 인정받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소송 이유를 밝힌 바 있다. 

CJ그룹 측도 “이맹희씨가 경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는데다 지분도 없어 현 경영구도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범현대가도 배다른 형제들이 뒤늦게 “유산을 달라”는 소송을 걸어 곤욕을 치렀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서녀’인 두 자매가 2006년 1월 유산분배 문제를 들고 나타난 것. 과거 50억원씩의 유산을 받은 것도 모자라 100억원을 더 달라는 요구다. 결국 이들은 법원의 조정으로 각각 20억원씩 추가로 받아냈다.

1960∼70년대 활동한 여배우로 알려진 자매의 어머니는 19세 때 정 창업주를 만나 두 살 터울의 두 딸을 낳았고 이내 딸들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이들은 숨어 살다가 2001년 “정 창업주가 1970년대 자신들을 낳았지만 세간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시킨 뒤 호적에 올려주지 않았다”며 친자확인 소송을 냈고, 법원은 “정 창업주의 친딸들이 맞다”고 자매의 손을 들어줬다.

뿐만 아니다. 범현대가엔 생모가 석연치 않은 형제들도 있다. 정 창업주는 부인 고 변중석씨와 사이에서 9남매(8남1녀)를 뒀다. 몽필(전 인천제철 사장)-몽구(현대·기아차그룹 회장)-몽근(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몽우(전 현대알루미늄 회장)-몽헌(전 현대그룹 회장)-몽준(국회의원·현대중공업 최대주주)-몽윤(현대화재해상그룹 회장)-몽일(현대기업금융 회장)-경희 등이다.

이중 일부 자녀들이 생모를 둘러싸고 여러 소문에 오르내린다. 관련 회사 관계자들은 “총수 일가의 개인적 사안”이라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아슬아슬 ‘양다리’창업 1세대 대부분 애첩 관리 
해외 칩거 등 행방 묘연…뒤늦게 친자·상속 소송


고 이원만 코오롱그룹 창업주도 미국에 혼외 아들을 두고 있다. 내연녀와 사이에서 태어난 동구씨다. 이 창업주는 부인 고 이위문씨와 2남4녀를 뒀다. 동찬(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부친)-동보(전 코오롱TNS 회장)-봉필-매란-미자-미향 등이다. 

미국에 홀로 떨어져 있던 동구씨는 2004년 11월 배다른 형제들을 상대로 500만 달러(약 50억원)의 상속재산을 요구하는 소송을 미국 캘리포니아 지방법원에 내면서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동구씨는 언론 등을 통해 이 창업주와의 관계를 폭로했다. 

이 창업주는 72세였던 1977년 이모씨를 처음 만나 이듬해 동구씨를 낳았고 매달 생활비와 양육비를 보냈다. 하지만 동구씨는 이 창업주가 타계 후 미국으로 입양됐고 생모 이씨와도 헤어졌다가 소송을 계기로 재회했다.
이어 지난해 4월엔 이 창업주의 ‘혼외 딸’이라 주장한 정현씨가 나타나 코오롱가가 또 다시 술렁이기도 했다. 정현씨는 현재 모친 기모씨와 함께 스웨덴에 거주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코오롱그룹 측은 “이 사안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둘러댔다. 

롯데가의 가족관계도 다소 복잡하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은 1940년 첫 번째 부인 고 노순화씨와 결혼, 1942년 장녀 영자(롯데쇼핑 사장)씨를 낳았다. 이를 모른 채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간 신 회장은 1952년 일본인 시게미쓰 하츠코씨와 만나 동주(일본롯데 부사장)-동빈(롯데그룹 부회장) 두 아들을 얻었다.


이런 탓에 생

모가 다른 영자씨와 동빈씨의 갈등설은 호사가들의 단골 메뉴다. 툭하면 영자씨의 분가설이 나도는 까닭이기도 하다. 

여기에 신 회장은 미스롯데 출신인 서미경씨와 사이에 딸을 더 두고 있다. 롯데그룹 경영권에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유미씨다. ‘영원한 샤롯데’이자 ‘롯데가 별당마님’으로 통하는 서씨는 1977년 미스롯데로 뽑힌 뒤 연예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다 1980년대 초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당시 60대 신 회장과 사실혼 관계로 사실상 그의 세 번째 부인이 된 것이다.

서씨는 1983년 유미씨를 낳았고, 유미씨는 1988년 신 회장의 호적에 올랐다. 이들 모녀는 롯데가문에서 철저히 소외되다가 지난해부터 ‘애첩 일가’란 족쇄에서 벗어나 그룹 주력사인 롯데쇼핑 등 관련 계열사 지분을 사들이며 본격 대외 행보를 시작했다. 

업계는 서씨와 유미씨가 앞으로 롯데그룹 재산분할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시선을 고정하고 있지만, 정작 그룹 측은 “총수의 집안 일”이라며 애써 모른 척하고 있다.

고 최준문 동아그룹 창업주도 아슬아슬한 양다리를 걸쳤다. 최 창업주는 모두 4명의 부인과 사이에 모두 7명의 자식을 뒀다. 첫째 부인과 사이에서 은정-원석-원영 3남매를, 둘째 부인과 사이에서 혜숙씨를 낳았다. 그 뒤로도 아들과 딸 둘을 더 낳아 호적에 올렸다.


이 같은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혜숙씨가 1995년 이복오빠 원석(전 동아그룹 회장)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다. 소장에 따르면 최 창업주는 본처가 있는 상태에서 1950년대 초 신모씨를 만나 혜숙씨를 낳았고 이후 모녀는 몸을 숨겨 은둔생활을 해왔다. 

그러던 중 “최 창업주의 이복 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기자회견까지 자청한 혜숙씨는 원석씨에게 “생부가 자신의 몫으로 남겨놓은 빌딩과 땅, 주식, 현금 등을 돌려 달라”며 300억원의 재산반환을 요구했지만, 2001년 1월 대법원으로부터 최종 패소 판결을 받았다.

애첩이 안방을 꿰찬 경우도 있다. 동아제약 일가 얘기다.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은 4남3녀를 뒀는데, 장남 의석씨와 차남 문석(수석무역 부회장)씨 등 2남3녀만 본처인 박정재씨의 친자다. 나머지 3남 우석씨와 4남 정석(동아제약 부사장)씨는 둘째 부인 최영숙씨의 소생이다. 

강 회장은 박씨와 오랜 별거 끝에 2006년 7월 합의 이혼했다. 강 회장은 당시 79세였다. 이 사건은 재벌가 ‘황혼 이혼’으로 시선을 모았다. 앞서 박씨는 2005년 8월 강 회장을 상대로 위자료 53억원 등을 요구하는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서울가정법원에 냈다.

이 사건은 특히 부자간 갈등이 증폭되는 계기가 됐다. 강 회장이 박씨 소생인 장·차남을 배제하고 배다른 3·4남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후계구도 정비에 나서자 양측은 동아제약 경영권을 두고 수년간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동아제약 관계자는 “오너의 가족사로 일일이 해명하거나 대꾸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외도가 아닌 합법적인 재혼을 통해 이복 자녀를 얻었지만 집안의 분란을 불러온 사례도 허다하다. 대림그룹, 파라다이스그룹, 대한전선그룹 등이 대표적이다.

대림그룹 일가는 삼촌과 배다른 조카가 ‘숙질간 전쟁’을 벌였다. 고 이재준 대림그룹 창업주는 고 이경숙씨와 결혼해 장남 준용(대림그룹 명예회장)씨를 낳았으나 이 여사는 출산 4년 만에 타계했다. 

이후 이 창업주는 박영복씨와 재혼, 부용(전 대림산업 부회장)씨를 얻었다. 준용-부용이 이복형제인 셈이다. 이 창업주는 가족 간 불협화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생전 그룹의 모기업인 대림산업을 장남 준용씨에게 물려주면서 계열분리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사고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이 창업주의 동생 재우(대림통상 회장)씨와 부용씨가 대림통상 경영권을 놓고 1999년부터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다 8년 뒤인 2007년에서야 숙부와 조카간 오랜 분쟁이 일단락됐다.

파라다이스그룹 일가도 생모가 다른 자녀간 법정 싸움을 벌였다. 고 전락원 파라다이스그룹 창업주는 부인 고 최경애씨와 사이에 필립(파라다이스그룹 회장)-원미 등 1남1녀를 뒀다. 여기에 재혼한 서모씨와 사이에서 얻은 막내딸 지혜씨까지 있다. 

지혜씨는 전 창업주가 2004년 11월 세상을 뜨자 “오빠가 수조원대의 아버지의 재산을 독차지했다”며 필립-원미 남매를 상대로 상속재산 분할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남매의 손을 들어줬다.

슬하에 4남2녀를 둔 고 설경동 대한전선 창업주의 아내도 두 명이었다. 첫 번째 부인 고 이태하씨와 사이에 원식(전 대한방직·대한산업 회장)-원철(전 대한방직·대한산업 고문) 등 2남을, 두 번째 부인 고 유인순씨와 사이에 원량(전 대한전선 회장)-명옥-원봉(대한제당 회장)-영자 등 2남2녀를 뒀다.

설 창업주와 아들 원식씨는 5·16 군사쿠데타 직후 부정축재환수금 분담액수를 두고 법정 다툼을 벌였다. 이 싸움은 후처의 자녀 원량씨가 그룹의 적통을 이어받자 이복형제들의 이해관계까지 얽히면서 가족간 갈등으로 확대되는 등 다소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형제 기업’인 대한산업과 대한전선은 한때 남대문로 사옥을 같이 사용했는데 분쟁 이후 칸막이를 칠 정도로 이복형제간 왕래를 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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