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당선에 절망 '노동자 최강서' 자살 사연

2013.01.07 12:12:13 호수 0호

"문제가 뭔지도 모르는데 문제 푼다고?"

[일요시사=정치팀]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승리에 한창 도취해 있던 지난해 12월21일. 최강서 전국금속노조 부양지부 한진중공업지회 조직차장은 "박근혜 정권하에서 5년을 더 버틸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혹자는 그의 죽음에 대해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결정이었다며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죽음에는 뭔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 사연을 <일요시사>가 적나라하게 공개한다.



구랍 21일 최강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직차장이 노조사무실에서 목을 매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최씨의 나이는 향년 서른다섯. 두 아이의 아빠다. 최씨는 자신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휴대폰에 남긴 메모에서 "박근혜가 대통령 되고 5년을 또…. 못하겠다"라고 적었다.

어리석은 죽음?

혹자는 그의 죽음을 두고 "원하는 대통령이 당선 안 됐다고 자살이라니 한심하다"며 단순한 대선후유증으로 치부하고 희화화하기도 했다. 남겨질 가족들을 생각하지 않은 책임감 없는 행동이라고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측도 사실상 선 긋기에 나섰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와 한광옥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민대통합위원장 등이 구랍 31일 최씨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지만 노조 측의 한 관계자가 "사람을 죽여 놓고 뻔뻔하다"고 말하자, 서용교 새누리당 의원은 "언제 죽였다고 그러나? 말조심하라"라고 응수하면서 소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런 새누리당의 고압적인 태도에 유가족들은 "조문을 온 것이 아니라 조문을 당한 격"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박 당선인 측은 최씨의 죽음과 관련해 지금까지도 논평 한마디 없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편 최씨를 죽음으로 내몬 한진중공업사태는 지난 2010년 12월15일, 경영악화를 이유로 한진중공업 측이 생산직 근로자 400명을 희망 퇴직시키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됐다. 노조 측은 '정리해고 전면 철회'를 주장하며 맞섰지만 사측 은 용역을 동원해 이들을 탄압했다.

2011년 1월부터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내의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에 들어갔다. 이후 희망버스운동 등으로 한진중공업사태가 여론의 큰 관심을 받자 사 측은 사회적 압력에 떠밀려 지난 해 9월 해직노동자 92명을 복직시키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변한 것은 없었다. 사 측은 바로 이틀 뒤 복직 노동자들에 대해 무기한 휴업 발령을 냈고, 손해배상 가압류를 남발하고, 노조 사무실 폐쇄를 협박하는 등 탄압을 지속했다.

업무방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가압류는 이명박 정권에서 사용자가 노조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가장 공공연하게 활용한 방법이다. 파업 투쟁 등을 한 사업장에서는 어김없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뒤따랐다.

158억 손해배상 소송에 목 졸린 노동자의 죽음
일주일새 4명 목숨 끊었는데…침묵하는 박근혜

노조 관계자는 "사실상 돈이 없는 노동자를 상대로 피해를 부풀려 청구하는 방법으로 노동자들이 회사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가장 악랄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일으킨 한진중공업은 노동자들 사이에선 이미 악명이 자자하다. 역대 노조위원장 가운데 두 명이 해고·구속됐고, 투쟁과정에서 노동자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씨가 사망했다. 김주익씨는 '손배가압류를 철회하라'며 35미터 높이 크레인에 올라 문을 걸어 잠그고 129일을 버티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씨 역시 그동안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사 측은 휴직기간에도 월평균 220여만원의 임금을 지급했다고 주장했으나 노조 측은 사 측이 실제로 지급한 임금은 월 120여만원에 불과했다고 맞서고 있다. 한 가족의 삶을 지탱하기엔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다.

사 측은 일감이 없어 노동자들의 복직이 힘들다고 주장했으나 노조 측은 사 측이 컨테이너선 등을 수주하고도 임금이 싼 해외공장으로 일감을 분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 측이 노조를 고사시키기 위해 고의적으로 영도조선소에 일감을 내려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사 측이 노조 측에 제기한 158억원의 손해배상도 최씨의 숨통을 옥죄었다. 사 측은 지난 2011년 노사합의에 따라 조합간부 등 개인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및 형사 고소, 고발을 모두 취하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이 최씨의 직접적인 자살 원인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여전히 남아있다. 노조 측 관계자는 "노조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노조가 패한다면 당연히 노조원들이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사 측이 말장난으로 노조원들을 우롱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씨는 유서에서 "나는 회사를 증오한다. 자본, 아니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심장이 터지는 것 같다"는 글을 남겼다. 그는 또 "민주노조 사수하라.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죽어라고 밀어내는 한진 악질자본"이라고 말했다.

사실 벼랑 끝에 몰린 최씨에게 정권교체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노조 측 관계자는 "박 당선인은 대선 전에도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면담도 거부했고 노동현안 해결 요구에 대해서도 미지근한 반응을 보여왔다. 박 당선인이 대통령후보시절 전태일 열사 유족을 찾았을 때 노동자들이 강력히 반발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명박 정권에서 박 당선인이 그동안 보여준 태도로 미뤄볼 때 박근혜 정권 하에서는 노동자들에게 희망이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박 당선인의 대선 승리 이후 불과 일주일 사이 노동자들이 네 명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박 당선인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신이 얼마나 강한지를 익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이후에도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죽음?

박 당선인 측 박선규 대변인은 "박 당선인은 이미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 이대로 안 된다는 말을 여러차례 했다"며 "하지만 어떤 한 분이 유서에 박 당선인의 이름을 거론했다고 해서 일일이 대응해야 한다는 것은 과하다. 박 당선인은 이러한 문제를 구조적으로 푸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서에 박 당선인의 이름이 나온 것이 우연이 아니라 박 당선인의 반노조적 성향 때문이라는 지적에는 "박 당선인이 반노조적 성향이라면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 정리해고를 자제해달라고 부탁했겠는가? 노동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답변을 전해들은 노조 측의 한 관계자는 "박 당선인 측은 그동안의 자신의 행태가 문제라는 것조차 인식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문제를 풀 수도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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