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갤러리 ‘메가톤 세풍’ 내막

2012.12.31 11:00:51 호수 0호

회장님·사모님 잡을 ‘그림 스캔들’ 또?

[일요시사=경제1팀] ‘또 서미갤러리야?’ 재벌 비자금 세탁처 단골로 등장하는 서미갤러리가 또 다시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국세청 특별 세무조사에서 검은 돈 흐름이 포착돼 조사기간이 전격 연장됐기 때문. 관심은 예상외로 매서운 고강도 조사가 아니라 재벌가의 비자금이 드러날까 하는 데에 쏠리고 있다. 갤러리와 재벌의 ‘검은 그림 커넥션’. 그 끝은 어디까지 일까.  



최근 업계에 따르면 국세청은 지난 11월로 예정됐던 서미갤러리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를 12월 말까지 한 달간 연장했다. 지난 9월 세무조사 착수 후 4개월 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이어온 것이다.

업계에서는 국세청의 조사기간 연장을 두고 서미갤러리 측이 빼돌린 자금이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이나 불법 상속 과정에 개입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으로 관측하고 있다. 정권 교체기 대기업 사정자료 확보에 나선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돈세탁’하려면
서미세탁소로?

서미갤러리는 각종 ‘그림 커넥션’에 수차례 등장하면서 여러 차례 그 실체를 드러냈다. 지난 2008년 특검의 삼성그룹 비자금 수사 당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을 거래하며 자금을 세탁해 줬다는 의혹을 받았고 2007년 5월에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서미갤러리에서 사들인 최욱경 화백의 그림 ‘학동마을’을 전군표 당시 국세청장의 부인에게 인사 청탁 대가로 건넨 것으로 드러나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2010년에는 오리온그룹의 횡령·배임 사건에 연루돼 결국 재판장에 섰다.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는 오리온그룹이 비자금 세탁용으로 사들인 루돌프 스팅겔의 ‘무제’ 등 그림 3점을 임의로 대부업체에 담보로 맡기고 208억원의 대출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재판에 넘겨져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6월에는 홍 대표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 홍라희 삼성리움미술관장을 상대로 “2009년 8월 중순부터 2010년 2월 사이에 구입한 미술작품 14점에 대한 대금 781억 8000만원 중 250억원만 지급했다”며 “남은 작품 대금 531억원 중 우선 50억원을 먼저 내놓으라”고 민사소송을 제기했다가 오해가 풀렸다며 11월 돌연 취하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쿠닝의 작품 수입 당시 관세청에 신고한 가격 271억 원과 판매가가 약 40억원 이상 차이나는 등 작품 14점의 신고가와 판매가가 280억 원 가까운 차이를 보여 그림 거래의 수상한 흔적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서미갤러리는 지난해 11월 서울 청담동 고급 빌라의 사업 자금 명목으로 23억원을 받아 가로챘다며 가수 최성수씨의 부인 박모씨를 상대로 가수 인순이씨가 지난해 제기한 고소 사건에도 휘말렸다.

국세청 특별 세무조사 연장…수상한 돈 흐름 포착?
탈루·저축은행 사건연루 추적 “대기업 연관설도”

이 빌라 부지는 애초 오리온그룹 소유지로 전략담당 사장 조모씨가 부동산 허위·이중 매매를 통해 40억 여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뒤 서미갤러리 계좌에 송금해둔 것으로 조사됐다.

국세청은 9월부터 지난 5년 여간 서미갤러리가 판매한 작품의 세관 신고 내역과 거래 및 송금 내역, 미술품 중개판매수수료에 대한 전방위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또 이번 세무조사 연장 과정에서 서미갤러리와 대기업이 거래하는 과정에서 수상한 흐름을 추가로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은 증빙 서류가 없는 무자료 거래나 세관 신고가와 판매가가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경우, 작품 구입 대금의 출처가 불분명한 경우 등을 집중적으로 추적하면서 서미갤러리가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은 물론 편법 상속, 불법 재산 축적을 도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의혹이 사실일 경우 서미갤러리의 탈세액 규모만 수백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국세청은 이와 함께 저축은행 비리 연루 여부도 확인하고 있다. 서미갤러리는 구속된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과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 간의 불법 교차 대출에 관여한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등 구설에 오른바 있다.

홍 대표는 자신이 보관 중이던 박수근 화백의 ‘노상의 여인들’, 김환기 화백의 ‘무제’등 그림 수십점을 담보로 제공하고 미래저축은행으로부터 285억 원을 대출받고 2010년 솔로몬저축은행 유상증자에 30억 원을 투자한 의혹을 받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서미갤러리에 대해 국세청이 강도 높은 조사에 나선 것은 홍 대표와 대기업의 커넥션 실체가 더 드러났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국세청이 대기업관련 탈세 등과 관련해 확실한 혐의점을 포착했다는 것이다. 정권 말, 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주요 대기업을 파헤치면서 사정자료 확보에 나선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느닷없는 칼날에
대기업 ‘벌벌’

이에 대해 국세청 관계자는 “정당한 세무조사”라며 일축했지만, 대기업들은 ‘가시방석’에 놓인 분위기다. 그동안 서미갤러리를 이용한 비자금 조성 사실이 드러나 모두 사법처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세무조사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서미갤러리의 세무조사 연장으로 몇몇 대기업들은 대규모 후폭풍이 예상된다”며 “사정당국들이 과거 정권과 달리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고삐를 죄고 있어 ‘사정 태풍’에 휩싸이지 않을까 눈치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세청 조사결과에 따라 연루된 대기업 등 구체적인 실체가 더 드러날 경우 과거보다 판이 훨씬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대기업들은 왜 하필 비자금으로 미술품을 구입하는 것일까. 수천만원에서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고가 미술품’에는 특별한 용도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거액의 뇌물이나 담보물로 쓰이거나 수상한 자금이동, 자금세탁, 재산증여와 탈세에까지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고가 미술품이 국내 일부 재벌들의 비자금 루트로 활용되는 까닭은 크게 두 가지이다. 우선 그림 거래에는 세금이 붙지 않는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원칙의 예외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부동산이나 각종 유가증권에는 다양한 세금이 따라 붙고 훗날 원하는 방향으로 처리하기도 까다롭지만 그림은 세금이 붙지 않기 때문에 작품이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팔렸는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수사기관의 추적도 그만큼 어려워져 자금 세탁이나 탈세 또는 뇌물의 수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

베일에 싸인 미술시장 바닥
재벌 비자금 사건마다 등장
안주인들 쌈지 창구로 활용

다른 의미로 이는 ‘대가 없는 부의 이전’에도 유용하다는 말이 된다. 특히 거래 고객과 이를 대행해주는 갤러리가 상속ㆍ증여 등 재산이동과 증식이 가능하다. 가격이 정해지지 않는 미술품은 수십억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자녀에게 돈을 주거나 부동산을 물려주면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내야 하지만 미술품은 상속이나 증여 사실이 잘 포착되지 않는다.


미술품 거래가 대부분 비밀리에 이뤄지는 것도 또 다른 이유다. 고객에 대한 비밀 유지가 철저해 비자금 조성이 쉽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특히 고가의 미술품은 더욱 음성적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소유주를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 예를 들어 고가의 미술품을 거래함에 있어 현금으로 거래를 하고 회계장부는 만들지 않는다고 치면 검은 돈이 흘러들어온다 해도 자금의 출처와 흐름이 불투명 하게 된다. 결국 활용도만 놓고 보자면 비자금 마련에 그림처럼 편리한 수단이 없는 셈이다.

미술업계 한 관계자는 “사실 미술판에서 재벌이 일부 기금을 미술관의 기금으로 쓴 것처럼 꾸며서 비자금을 조성하는 경우, 구입 자금을 부풀려 차액을 비자금화 한다는 의혹 역시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비밀”이라며 “공과 사가 분명하지 못한 미술관 운영행태를 볼 때 서미갤러리처럼 별다른 대중전시 없이 중개만 하여 차액을 남기는 갤러리들이 많고 이들과 같은 전문 중개화랑 중 일부를 통해 비자금을 세탁, 자금을 챙기는 일들이 (전부는 아니지만)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 또한 새삼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어둠 속 그림시장
비자금 창구로

또 다른 관계자는 “1월1일부터 미술품 양도세 시행을 앞두고 미술시장 위축 등 일각에서 반발이 심하게 일고 있지만, 미술품 거래가 좀 더 투명해지는 전화위복 기회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서미갤러리 홍송원 대표는?

화랑가 주무르는 ‘큰손’

 

‘갤러리 불신’의 정점에 서있는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는 이화여대 체육교육과 출신으로 미국 뉴욕 화랑가에서 미술품 경매를 익혔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1989년 서울 가회동에서 그림 장사를 시작했다. 2003년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 인근으로 갤러리를 옮기면서 재벌가 인사들을 대상으로 미술품 중개 활동에 주력해 왔다.

서미갤러리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홍 대표의 작품 보는 눈이 상당히 예리하다는 데 있다. 그는 1990년대에 미국과 유럽의 추상미술과 팝아트 등을 소개하는 데 힘쓰며 당시 국내에서는 생소했던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게르하르트 리히터, 월렘 드 쿠닝 등의 작품을 들여왔다.

세계적인 작가들이 뜨지 않았을 때부터 주목, 작품을 미리 확보해 뒀다가 한국에 소개해 왔던 것이 화랑가 내에서 신뢰를 쌓게 된 배경이다. 이때부터 홍 대표는 삼성, 한솔 등 주요 재벌가의 미술 컬렉션 수집 창구 노릇을 도맡아오며 인맥을 넓혀갔다.

지난 2000년에는 갤러리를 다시 가회동으로 옮기고 2004년에는 차남을 통해 분점 성격인 서미앤투스를 청담동에 오픈했다. 서미갤러리는 이후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고가의 미술품을 주로 취급했다. 서미앤투스는 도날드 저드·알렉산더 칼더·프랭크 스테라·데미안 허스트 등의 작품을 자주 선보였다.

홍 대표는 해외에서도 ‘고가 미술계의 큰 손’으로 인정받는 편으로 유망한 작품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들여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1990년대 중반 들여온 루이스 부르주아의 조각품 ‘스파이더’는 당시 2억원 정도였지만, 지금은 국제 경매 가격이 100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홍 대표는 리움미술관에 외국 유명 화가들 작품을 조달하며 홍라희씨와도 친분을 쌓아왔다.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홍 관장이 좋아하는 미니멀리즘 계통의 추상화 명품들을 다수 납품하며 친분을 쌓은 것이다.

이 밖에도 홍씨는 이화여대 출신이라는 인맥을 이용해 여러 재벌가들과도 친분을 나누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잇단 구설수로 잡음이 끊이지 않자 한국화랑협회는 지난 7월 협회와 회원의 이미지 실추, 회원 품위유지 위반 등을 이유로 ‘서미갤러리’에 대해 무기한 권리정지 조치를 내렸다.

홍 대표는 1990년대 중반 한국화랑협회와 판화 공동전을 열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 들여온 피카소의 복제 작품을 언론에 원본으로 소개해 협회에서 제명됐다가 2006년 준회원 자격을 회복한 바 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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