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공천은 룰이 아닌 신뢰

2026.04.28 08:00:17 호수 0호

50% 민심 지운 순간, 선거는 이미 반쪽

이번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내세운 공천 원칙은 분명했다. 권리당원 50%, 주민투표 50%. 당심과 민심을 절반씩 반영해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는 구조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룰이 아니라, 조직과 민심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정치적 약속이다. 특히 조직 기반이 강한 후보와 그렇지 않은 후보 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문제는 그 약속이 실제 과정에서 무너졌다는 점이다. 현역 의원 보좌관 출신 후보가 출마한 지역에서, 주민투표가 사실상 배제되고 권리당원 투표만 반영되는 일이 벌어졌다. 표면적인 이유는 단순했다. 여론조사 참여 인원이 내부 기준치에 미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설명은 결과를 정당화하기엔 지나치게 가볍다. 애초에 민심 50%를 반영하겠다고 한 룰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은 숫자가 아니라 구조다. 권리당원 투표는 조직력이 강한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특히 현역 의원과 긴밀하게 연결된 보좌관 출신이라면, 이미 당내 네트워크가 구축돼있는 상태다. 반면 주민투표는 상대적으로 외연 확장과 실제 민심을 반영하는 장치다. 그래서 이 둘을 50:50으로 맞춘 것이다. 그런데 주민투표를 제거하는 순간, 이 균형은 붕괴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기준의 일관성이다. 어떤 지역은 기준치를 근소하게 넘겼다는 이유로 결과가 반영되고, 어떤 지역은 기준치에 미달했다는 이유로 통째로 배제됐다. 불과 작은 차이로 지역 전체 민심의 반영 여부가 갈린 것이다. 이는 기준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준이 결과를 위해 선택적으로 적용됐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주민투표 참여율은 후보자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표본 추출 방식, 조사 시간, 응답 환경 등 외부 변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후보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부당하다.

나아가 이미 투표에 참여한 주민들의 의사까지 무효화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행위다. 투표는 참여하는 순간 의미를 갖는다. 그 결과를 사후적으로 폐기하는 것은 정치적 신뢰를 근본부터 흔든다.

특히 3월 중순 여론조사에서 상대 후보가 월등히 앞섰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결정은 더욱 의심을 낳는다. 결과적으로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룰이 작동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물론 이를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만이 아니라 ‘인식’이다. 공정하지 않다는 인식이 형성되는 순간, 그 경선은 이미 실패한 것이다.

이 사안에서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은 시간이다. 여론조사 참여 인원이 부족했다면, 기간을 연장해 재조사를 실시하는 것이 상식이다. 특히 민심 50%를 반영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면,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한 추가 절차를 밟는 것이 맞다. 그런데도 이를 하지 않고 주민투표 자체를 배제했다는 것은, 민심을 반영할 의지가 있었는지 되묻게 만든다.

국민의힘 역시 유사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단수공천을 통해 사실상 경쟁 자체를 차단했고, 경선 기준을 사후적으로 변경해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드는 사례가 발생했다. 특히 여론조사 비율 조정, 컷오프 기준 변경, 전략공천 명분 확대 등 절차가 뒤늦게 흔들리면서 공정성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공천 과정이 투명하지 않고, 기준이 일관되지 않다는 비판은 양당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같다. 기준이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그 기준이 언제·어떻게 적용되느냐다. 사전에 공지된 룰이 사후적으로 흔들리는 순간, 공천은 경쟁이 아니라 조정으로 변질된다.

결국 유권자가 보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며, 그 과정에 대한 불신은 선거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공천은 권력을 나누는 과정이 아니라, 신뢰를 만드는 과정이어야 한다. 룰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결과를 정당화하기 위한 기준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은 정반대다. 결과가 먼저 정해지고, 룰은 그 결과를 맞추기 위해 조정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 순간 공천은 정치가 아니라 기술이 되고, 민주주의는 절차가 아니라 형식으로 전락한다.

여기서 정치가 반드시 직시해야 할 현실이 있다. 경선 과정에 불만을 가진 후보 지지자 일부는 본선에서 투표장에 가지 않거나, 침묵으로 등을 돌리거나, 반대 진영을 선택할 수도 있다. 선거는 조직이 아니라 참여로 결정된다. 특히 박빙 구도에서는 이탈한 몇 퍼센트의 표가 승패를 뒤집는다. 경선의 불공정은 본선 패배로 직결될 수 있는 구조적 위험을 안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5월 중순 후보자 등록 이전까지, 각 정당은 경선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전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기준이 어떻게 설정됐는지, 왜 다르게 적용됐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문제가 확인된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불편하더라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선거 결과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가 유지된다.

선거는 이기기 위해 치르는 것이지만, 정당은 신뢰를 잃으면 이겨도 진다. 이번 6·3 지방선거는 단순한 승패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정당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정당이 더 공정한 과정을 보여주느냐의 문제다. 민심을 지운 공천은 승리해도 정당성을 얻지 못한다. 반대로 공정한 과정을 지킨 정당은 패배해도 신뢰를 얻는다.

공천은 숫자가 아니라 원칙이다. 그리고 그 원칙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전략이 아니라, 더 명확한 기준이다. 민심 50%를 약속했다면, 그 50%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 그것이 무너지는 순간, 선거는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끝난다.

<skkim5961@naver.com>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