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성인용품 ‘리얼돌(사람의 신체를 본뜬 인형)’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최근 리얼돌 수입을 일률적으로 막은 세관 조치가 위법하다는 취지의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면서다. 이번에도 ‘풍속’이라는 모호한 기준이 논쟁에 불씨를 지핀 모양이다.
2020년 당시 수입업체 A사는 여성의 신체를 본뜬 이른바 ‘리얼돌’을 들여오려 했지만, 김포공항세관은 이를 ‘풍속을 해치는 물품’으로 보고 통관을 보류했다. 관세법상 공공질서나 풍속을 해칠 우려가 있는 물품은 수입을 제한할 수 있다는 조항을 적용한 것이다.
뭐가 문제?
이에 A사는 “리얼돌은 성인의 사적 영역에서 사용되는 성기구일 뿐이며, 이를 일률적으로 금지할 법적 근거는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모두 업체의 손을 들어줬고, 대법원 역시 이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비교적 명확했다.
리얼돌이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할 정도로 노골적인 음란성을 띠거나, 16세 미만 미성년자의 신체를 사실적으로 본뜬 경우라면 ‘풍속을 해치는 물품’으로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일률적으로 수입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대법원은 세관의 판단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해당 물품의 사용 목적이나 주체, 사용 환경 등을 따지지 않은 채 단순히 외관만으로 통관을 보류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즉, ‘리얼돌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입을 제한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취지다. 다만 대법원은 리얼돌이 사적 공간을 벗어나 유통되거나 공적 영역에서 사용될 경우에는 ‘풍속을 해칠 우려’가 인정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사용 맥락에 따라 규제 가능성은 열어둔 셈이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리얼돌을 둘러싼 논쟁은 오히려 더 격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법적 판단은 일정 부분 정리됐지만, 사회적 합의는 여전히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판결이 알려진 지 며칠 만에 국회 국민동의 청원 게시판에는 ‘리얼돌 제조·유통·판매 전면 금지’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리얼돌이 단순한 성인용품이 아니라 인간의 신체를 재현한 성적 대상물이라며, 성적 대상화와 성착취 문화 확산 등 부작용을 우려했다.
여성의당의 반발도 이어졌다. 여성의당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판결을 규탄하며 리얼돌 수입 전면 금지를 촉구했다. 이들은 리얼돌이 여성의 신체를 노골적으로 재현한 상품일 뿐 아니라, 실제 유통 과정에서는 특정 인물이나 연예인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사적 공간에서의 사용’이라는 전제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대법원은 성인용품이 개인의 사적 영역에서 사용되는 경우 국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현실에서는 리얼돌 사용이 사적인 공간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법 판결에 즉각 반발
기준 없는 규제가 불씨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리얼돌 체험방’이다. 온라인을 통해 쉽게 홍보되는 이들 업소는 일정 비용을 받고 공간과 리얼돌을 함께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현행법상 이를 직접 규제할 명확한 조항이 부족해 단속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반대 측에서는 리얼돌이 개인용 성기구를 넘어 새로운 형태의 성 산업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리얼돌에 대한 논쟁이 수년째 반복되는 배경에는 리얼돌을 직접 규율하는 명확한 법이 없다는 점이 거론된다. 현재 국내에서 리얼돌은 별도의 금지 규정 없이 관세법상 ‘풍속을 해치는 물품’에 해당하는지 여부로만 판단되고 있다.
문제는 이 ‘풍속’ 기준 자체가 추상적이라는 데 있다. 초기에는 관세청이 리얼돌을 관세법상 ‘풍속을 해치는 물품’으로 보고 수입을 일괄적으로 막았다.
하지만 2019년 대한민국 대법원이 “성인의 사적 사용을 전제로 한 성기구 수입을 금지할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하면서 흐름이 뒤집혔다.
이후 리얼돌 수입이 허용됐지만, 다른 사건에서는 ‘미성년으로 보일 수 있다’는 이유로 다시 금지되는 등 판결이 엇갈리기도 했다. 세관 역시 기존 지침을 유지하며 통관을 계속 보류하면서, 같은 유형의 제품을 두고도 통관 여부가 달라지는 혼선이 이어졌다.
결국 반복된 소송에서 세관이 잇따라 패소하자 관세청은 2022년부터 부분적으로 통관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지침을 바꾸기 시작했다. 신체 일부를 본뜬 ‘부분형’ 리얼돌이 먼저 허용됐고, 이후 전신형까지 범위가 확대됐다.
법원은 그동안 리얼돌이 사람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정도의 노골적 음란성을 띠는지, 또는 미성년자의 신체를 본뜬 것으로 볼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 왔다.
그러나 이 역시 구체적인 수치나 외형 기준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사건마다 달리 해석됐다. 특히 ‘미성년 형상’ 여부는 대표적인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리얼돌의 키나 체형, 얼굴 묘사 방식 등에 따라 판단이 이뤄지지만, 이를 명확히 규정한 기준은 없다. 같은 길이와 무게의 제품이라도 ‘성인’으로 볼지 ‘미성년으로 오인될 수 있다’고 볼지에 따라 통관 여부가 달라진다.
이 같은 불확실성은 현장의 혼란으로 이어진다. 수입업자들은 어떤 제품이 통관 가능한지 예측하기 어렵고, 세관 역시 명확한 기준 없이 개인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로 리얼돌 통관 보류를 둘러싼 소송에서 세관이 패소하는 사례가 발생한 것도 이처럼 기준 부재와 무관하지 않다. 유통 방식에서도 규제의 공백이 드러난다. 신체 일부를 본뜬 ‘부분형’ 제품은 비교적 수입이 용이한 반면, 이를 조합해 전신형으로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별도의 제재 기준이 없다.
‘풍속 해치는 물건’이 기준?
미성년 관련 기준도 모호해
또 특정 인물의 외형을 연상시키는 제품이나 미성년으로 오인될 수 있는 형태의 리얼돌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꾸준히 유통되고 있지만, 이를 명확히 처벌할 수 있는 기준은 마련돼있지 않다.
리얼돌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해외 주요 국가들은 허용 여부를 두고 장기간 논쟁을 거친 끝에 일정한 기준을 만들어 왔다. 대체로 성인을 형상화한 리얼돌에 대해서는 개인의 사적 영역이라는 이유로 허용하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논리가 반영된 결과다. 반면 아동·청소년 형상을 본뜬 리얼돌에 대해서는 국가별로 강한 규제가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유통이나 판매뿐만 아니라 소지 자체까지 처벌 대상으로 삼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아동 형상의 리얼돌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수입과 유통을 제한하고 있다. 영국 역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통해 아동형 리얼돌의 수입과 소지를 금지하고 있다. 기준 없이 규제만 하는 한국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한편, 국내 리얼돌 시장은 꾸준히 확대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부분형 리얼돌 통관이 허용된 이후 수입 건수는 빠르게 증가해 1000건을 넘어섰다. 이후 전신형까지 허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국내 유입 규모는 더욱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리얼돌은 해외 직구는 물론 국내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서도 비교적 쉽게 구매할 수 있다. 가격 역시 수십만원대의 부분형부터 수백만원대의 전신형까지 다양하게 형성돼있다.
국내 제작은?
외형 역시 키 140cm대부터 170cm대까지 폭넓게 제작되며, 피부 질감이나 혈관 표현 등 실제 인체와 유사성을 높인 제품도 유통되고 있다. 일부는 국내에서 직접 제작·판매되기도 한다.
문제는 이 같은 시장 확대 속도에 비해 제도적 관리가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풍속을 해치는 물품’이라는 통관 기준만 존재할 뿐 유통과 판매, 제작 전반을 포괄적으로 관리하는 법적 장치는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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