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데이트 애플리케이션으로 시작된 인연이 결국 1억4000만원대 ‘로맨스 스캠(연애 빙자 사기)’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가해자가 해외로 도주해 현지에서 검거된 이후, 국내 수사가 ‘수사 중지’로 멈췄다는 점이다. 피해자는 “가해자는 잡혔다는데 왜 나는 아무 보호도 못 받느냐”고 호소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의사 사칭’과 ‘투자 미션 사기’가 결합된 이중 범죄 형태다. 두 사건 모두 동일하게 앱을 통해 접근한 뒤 신뢰를 쌓고, 반복적인 금전 요구로 피해자를 몰아넣는 방식이었다. 첫 번째 사건은 자신을 의사라고 소개한 남성으로부터 시작됐다. 해당 남성은 양산부산대병원 근무 이력과 개인 병원 개원 준비를 언급하며 피해자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해당 병원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털리고도
첫 번째 가해자는 “퇴직금을 받지 못해 인테리어 비용이 부족하다”며 돈을 요구했다. 피해자는 처음에는 단호하게 거절했지만, 지속적인 전화와 부탁에 결국 소액을 빌려주게 됐다. 이후 일부 금액이 실제로 상환되면서 신뢰를 확보한 가해자는 점차 요구 금액을 키웠다.
결국 피해자는 대출까지 받아 약 5000만원을 건넸다. 하지만 이후 가해자는 “사채까지 썼다”며 변제를 미루기 시작했고, 경찰 신고를 언급하자 오히려 “해보라”며 배짱을 부렸다. 피해자가 실제로 경찰에 신고하자 상황은 더 악화됐다. 경찰이 가해자를 특정해 접근하자,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신고했냐”며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이후 조사 출석을 앞두고 잠적했다.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해당 가해자는 중국으로 도주한 뒤 현지에서 검거된 것으로 전해졌지만, 한국 수사기관은 이를 이유로 사건을 ‘수사 중지’ 처리했다. 피해자는 형사사법포털을 통해 이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가해자가 특정됐고, 해외에서 신병까지 확보된 상황임에도 국내 수사가 중단된 것이다. 피해자는 “잡힌 사람이 있는데 왜 한국에서는 수사가 멈췄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경찰은 먼저 연락도 없었고, 진행 상황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고 분노했다.
두 번째 사건은 더욱 치밀했다. 또 다른 남성은 자신을 유통업 종사자라고 소개하며 접근했다. 피해자보다 한 살 어리다고 밝히며 자연스럽게 친밀감을 형성했고, ‘누나’라고 부르다가 스스로 ‘자기’라는 호칭을 쓰자고 제안하는 등 관계를 빠르게 좁혔다.
며칠 뒤 그는 중국 항저우로 출장을 간다고 했고, 현지에서 휴대폰을 떨어뜨려 액정이 깨졌다는 이유로 “노트북으로만 연락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후 본인이 하고 있는 ‘부업’을 대신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피해자가 접속한 사이트는 특정 쇼핑몰 형태였다. 아이디와 비밀번호까지 제공받아 로그인하는 구조였다. 가해자는 “해외 PC라 직접 작업이 안 된다”며 대신 미션을 수행해 달라고 요구했다. 초기에는 기존 포인트로 진행되는 간단한 작업이었고, 피해자는 별 의심 없이 이를 수행했다.
“퇴직 의사” 접근…1억4000만원 피해
중국 도주 현지 검거 “국내 수사 종결”
문제는 이후 ‘그룹 미션’이었다. 가해자는 라인(Line) 아이디 ‘wjddus712’를 연결해 주며 별도의 담당자와 접촉하도록 유도했다. 해당 인물은 미션 수행을 지시하며 추가 입금을 요구했다. 미션이 진행될수록 금액은 커졌고, “실패하면 다른 참여자의 손실까지 전부 배상해야 한다”는 압박이 이어졌다.
피해자가 자금 부족을 이유로 거부하자 “지금 하지 않으면 더 큰 손해가 발생한다”며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
실제 과정에서는 ‘주문 수량 입력 실수’를 이유로 이전 단계부터 다시 진행해야 한다는 식으로 반복 입금을 유도했다. 피해자는 결국 대출까지 받아가며 미션을 이어갔고, 총 피해액은 9530만원에 달했다. 모든 미션을 완료한 뒤에도 출금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소득세를 별도로 납부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졌다. 피해자가 의문을 제기하자 “수익이 많기 때문에 세금을 먼저 내야 한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이후에도 “계정 활성화를 위해 추가 입금이 필요하다” “지금 더 넣으면 기존 돈을 찾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40일 이후에나 출금이 가능하다”는 식의 요구가 계속됐다. 현재도 라인을 통해 지속적으로 연락이 오고 있는 상태다. 가해자들은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주민등록번호와 신분증 사진까지 제공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주민등록번호는 이름과 일치하지 않는 등 허위 정보였다. 의사 사칭범 역시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로맨스 스캠’과 ‘투자 미션 사기’가 결합된 전형적인 조직형 범죄로 보고 있다. 초기 친밀감 형성, 소액 거래를 통한 신뢰 구축, 반복 입금 유도, 출금 차단 후 추가 입금 요구까지 모든 단계가 정교하게 설계된 구조다.
하지만 무엇보다 논란이 되는 지점은 수사 대응이다. 가해자가 해외로 도주한 뒤 현지에서 검거된 정황이 있음에도, 국내에서는 ‘수사 중지’ 처리가 내려졌다. 사실상 피해자만 남겨진 상황이다.
피해자는 “돈을 잃은 것도 억울한데, 가해자는 해외에 있고 수사는 멈춰 있다”며 “이런 식이면 누가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해외를 거점으로 한 조직형 사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국내 수사 체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은 연락 없었고
상황도 설명하지 않아”
피해자가 증거를 확보하고 가해자를 특정해도, 국경을 넘는 순간 사건은 멈춰선다. 결국 남는 것은 피해자의 빚과 상처뿐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 피해를 넘어, 해외 도주 범죄에 대한 수사 공백과 제도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가 모든 증거를 제출하고 가해자 위치까지 특정했음에도, 결과는 ‘중지’였다. 사기 수법은 진화하고 있지만, 대응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한편, 해외로 도주한 로맨스 스캠 범죄자를 송환한 사례도 있다. 캄보디아에 본거지를 두고 로맨스 스캠과 투자 사기를 벌여 120억원을 가로챈 기업형 범죄 핵심 가담자인 한국인 부부가 지난 1월 강제 송환돼 검찰에 넘겨졌다.
울산경찰청은 사기와 범죄단체조직·가입·활동,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 등의 혐의로 30대 A씨 부부를 구속 송치했다고 지난 1월30일 밝혔다.
경찰은 이들과 함께 범행을 주도한 한국인 총책 김모씨 등 26명에 대해 적색수배를 내리고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추적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 조직은 2024년 3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한국인 피해자 100여명을 상대로 약 120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딥페이크 인공지능(AI) 기술로 가상의 여성 인물을 만들어 채팅앱과 SNS를 통해 무작위로 접근한 뒤 매일 연락을 이어가며 연인 관계인 것처럼 신뢰를 쌓았다. 이후 재력을 과시하며 투자 관련 유튜브 채널이나 전문가를 소개하고 주식·가상화폐 투자 등을 권유해 돈을 가로챈 뒤 연락을 끊는 수법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
도망가면 그만
또 실제 존재하는 회사나 투자거래소를 사칭한 가짜 사이트를 만들고, 허위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게 해 계좌까지 개설하도록 했다. 다른 사람의 SNS·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도용해 딥페이크로 합성하거나 화상 채팅과 영상까지 제작해 피해자들이 정상적인 투자로 오인하도록 속였다. 피해자와 장기간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열흘 분량의 대본을 사전에 작성한 정황도 확인됐다.
<smk1@ilyosis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