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특별감찰관, 권력 감시하는 강력한 방식?

2026.04.20 20:34:33 호수 0호

존재가 아니라 작동⋯신뢰는 그때 증명된다

지난 19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회에 특별감찰관 임명을 요청했다. 인도·베트남 순방 직전에 나온 이 메시지는 단순한 절차 촉구가 아니다. 권력의 구조를 어디에 두고,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선언이다. 권력은 행사되는 순간부터 의심받는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

권력은 누가 감시하는가? 이번 요청은 그 질문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답이다.

특별감찰관은 대통령의 친인척과 특수 관계인, 권력의 가장 가까운 영역을 감시하기 위한 장치다. 가장 은밀하고, 가장 위험한 지점이다. 권력은 외부에서 무너지기보다 내부에서 붕괴된다. 그래서 이 제도는 보조 장치가 아니라, 권력을 지탱하는 마지막 구조다.

국민의힘은 이재명정부 출범 직후부터 특별감찰관 추천을 제안해왔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미뤄왔다. 이 대통령 역시 취임 초 공약으로 특별감찰관 임명을 약속했고, 지난해 7월 관련 절차를 지시한 바 있다. 그러나 늦어졌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지금 이 요청은 지연된 약속의 이행이자, 권력 운영 방식의 재설정이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만시지탄이지만 환영한다”고 하면서도 “야당 추천 인사를 수용하라”고 요구했다. 정치적 공방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본질은 단순하다. 누가 추천하느냐가 아니라, 감시가 실제로 작동하느냐다. 제도는 사람으로 시작되지만, 신뢰는 결과로 완성된다.

특별감찰관은 새로운 제도가 아니다. 이미 법으로 존재하고, 목적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자리는 10년째 공석이었다. 존재는 있었지만, 작동은 없었다. 그 공백은 곧 권력의 사각지대였고, 그 사각지대에서 문제는 반복됐다.

이 제도가 왜 필요한지는 역대 정부가 이미 증명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권력형 비리는 대부분 대통령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에서 시작됐다. 친인척, 측근, 비서 라인. 감시받지 않는 권력 주변부가 언제나 출발점이었다.

박근혜정부에서는 ‘비선 실세’ 국정 농단이 탄핵으로 이어졌고, 문재인정부에서도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 권력 주변 논란이 이어졌다. 윤석열정부 역시 배우자와 측근을 둘러싼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권력이 바뀌어도 반복되는 이 구조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감시 시스템의 공백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패턴은 명확하다. 문제는 항상 권력의 주변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최근 10년 동안 이를 상시적으로 통제할 구조는 없었다. 특별감찰관은 이 반복을 끊기 위해 설계된 제도다.

과거에도 감시 기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그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구조적 한계는 분명했다. 감시 대상과 감시 주체가 같은 권력선 안에 있었다. 그 결과 감찰은 선택적으로 작동했고, 때로는 멈췄다. 제도가 있었지만, 권력을 넘어서지 못했다.

특별감찰관의 의미는 여기서 시작된다. 권력 내부가 아닌, 권력으로부터 거리를 둔 감시. 바로 그 거리에서 감시는 힘을 갖는다.

이번 요청이 출국 직전에 나왔다는 점도 중요하다. 외교를 향해 나가는 순간에도 내부 통제 장치를 강조했다는 것은 권력 운영의 우선순위를 보여준다. 외부로는 확장, 내부로는 통제. 이 두 축이 함께 작동할 때 국가의 신뢰는 비로소 안정된다.

4·19 혁명 기념식에서의 메시지와도 이어진다. 민주주의는 쟁취의 역사가 아니라 통제의 역사다. 권력을 갖는 기술이 아니라, 권력을 제한하는 기술이다. 특별감찰관은 그 기술을 제도화한 장치다. 그래서 이 제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제 남은 것은 설계다.

첫째, 독립성이다. 대통령이 요청했다고 해서 대통령의 영향 아래 있어서는 안 된다. 임명 과정이 정치적 거래로 변하는 순간, 제도는 시작부터 무너진다. 국회는 감시자의 거리를 보장해야 한다.

둘째, 권한이다. 조사 권한이 약하면 제도는 장식이 된다. 자료 접근, 조사 개시, 결과 공개까지 실질적 권한이 확보돼야 한다. 권한 없는 감시는 감시가 아니다.

셋째, 공개성이다. 감시의 결과는 국민에게 돌아가야 한다. 보고서가 묻히는 순간 제도는 존재 이유를 잃는다. 투명성은 선택이 아니라 본질이다.

넷째, 상시성이다. 사건이 터진 뒤 움직이는 구조로는 늦다. 권력형 비리는 작은 신호에서 시작된다. 특별감찰관은 대응 기구가 아니라 예방 시스템이어야 한다.

공은 이제 국회로 넘어갔다. 대통령은 요청했고, 방향도 제시됐다. 남은 것은 응답이다. 절차를 늦추는 것은 정치일 수 있지만, 그 대가는 신뢰의 붕괴로 돌아온다. 시간을 끌수록 제도는 약해지고, 국민의 의심은 커진다. 특별감찰관은 특정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 구조의 문제다.

더불어민주당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특별감찰관 임명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 제도의 정상화다. 그러나 이 제도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용 도구로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타이밍이 의심을 낳는 순간, 제도의 정당성은 스스로 훼손된다. 감시는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권력을 위한 방패가 아니다.

특별감찰관은 권력의 수준을 보여주는 기준이어야 한다. 스스로를 감시할 수 있는 권력은 강하고, 감시를 피하는 권력은 이미 무너진 권력이다. 존재만으로 신뢰를 만든다는 말은 절반의 진실이다. 나머지 절반은 단 하나다. 작동이다. 그리고 작동하지 않는 감시는 권력이 아니라 면죄부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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