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물 칼럼> 법치의 위기

2026.04.17 13:56:15 호수 1580호

사법을 정치 도구로 삼는 나라

대한민국이 위험한 길목에 서 있다. 법원의 판결이 내려지고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는 그 순간에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은 사법의 권위를 흔들고 그 결과를 무력화하거나 역이용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이것은 특정 정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법치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경보다.

세계정의프로젝트(WJP)의 2023년 법치 지수에서 한국은 143개국 중 19위를 기록했지만 2015년 0.79점에서 2023년에도 0.74점으로 10년째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수치가 보여주는 정체는 우연이 아니다. 정치권의 고질적인 사법 도구화가 그 원인이다.

재판 중 대선 출마 - ‘유권자의 심판’이 사법 대체할 수 있는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복수의 형사재판이 진행되는 도중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 사실 자체를 두고 ‘민주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다. ‘국민이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위험한 선례를 낳는다. 선거에서 이기면 사법적 판단이 유예되거나 무력화될 수 있다는 인식, 나아가 ‘표가 판결을 이길 수 있다’는 착각을 제도 안에 심어놓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상호 보완의 관계이지, 하나가 다른 하나를 지배하는 관계가 아니다.

유권자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것이 진행 중인 형사재판의 정당성 자체를 소거할 수는 없다. 대통령 취임 이후 헌법상 형사불소추특권으로 재판이 정지된 상황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이 권력의 무게에 눌리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조작기소‘ 프레임에서 국정조사 강행까지 - 입법권으로 사법을 대체하다

대통령 당선 이후 일부 여권 인사들과 친여 논객들 사이에서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관련 재판 등을 두고 ‘검찰이 조작한 기소’라는 서사가 빠르게 확산됐다. 이화영 사건의 대법원 판결이 마무리된 이후 임에도 이 흐름은 멈추지 않고 있다.

더 나아가 민주당은 2026년 3월,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를 강행 처리했다.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 심지어 대법원 판결이 확정된 사건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다. 이원석 전 검찰총장은 즉각 입장문을 내고 “수년간 수십~수백회에 걸쳐 법원의 증거 조사와 판단이 이뤄진 사실관계와 법리를 단 며칠 만에 송두리째 뒤집고 있다”며 “법치주의와 사법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행 국정조사법은 재판·수사에 관여할 목적의 국정조사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해당사자인 집권여당이 자기당 대통령의 재판을 겨냥한 국정조사를 주도하는 것은 명백한 이해충돌이자 삼권분립의 정면 위반이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가 있었다면 마땅히 법적으로 다퉈야 할 일이다. 항소하고, 상고하고, 재심을 청구하는 것이 법치국가가 마련한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 국회를 제2의 법정으로 삼으려 한다면, 우리는 ‘법치’가 아니라 ‘인치’ - 정치인치(政治人治)'의 나라에 살게 된다.

‘사법개혁 3법’은 판사 겁줘서 판결을 바꾸려는 시도

지난달 국무회의를 통과한 이른바 ‘사법 3법’은 재판소원 도입, 법왜곡죄 신설, 대법관 증원을 골자로 한다. 70여년을 다듬어온 형사사법체계를 전면적으로 뒤흔드는 내용이다. 법원이 여러차례 반대 의견을 냈음에도 정치권은 이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헌법학 권위자 허영 전 경희대 석좌교수는 이를 “77년 헌정사를 퇴행시키는 초유의 사태”라고 진단했다. 특히 ‘법왜곡죄’는 그 파장이 심각하다. 법원 내부에서는 ‘항소심에서 파기되면 법왜곡죄로 기소되고, 재판소원이 인용되면 법왜곡죄가 확정된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마음에 들지않는 판결을 내린 판사를 형사처벌로 위협하는 것은 사법독립의 근간인 ‘법관의 양심에 따른 재판’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다수가 틀렸다고 해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관이 사법부다. 그 사법부가 무너지면 오히려 소수자와 약자가 기댈 곳이 사라진다. 사법개혁이라는 명분이 실제로는 사법부를 정치권의 영향력 아래에 두는 수단이 된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사법의 정치 예속화다.

유죄 확정 후 재보선 출마 - 김용의 사례가 보내는 신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2심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그런데 그 이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출마 움직임이 확인되고 있다. 공직선거법상 일정한 형이 확정되면 피선거권이 제한되지만, 그 경계를 타진하며 출마 가능성을 저울질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법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다.

유죄 판결을 받은 정치인이 선거를 통해 정치적 복권을 시도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당이 묵인하거나 지원한다면 이는 유권자에게 ‘사법적 판단은 선거로 뒤집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반복될 때 우리 사회의 법 감수성은 무뎌지고, 결국 선거는 사면의 도구로 전락한다.

까르띠에 시계 수수 - 전재수 의혹 해소돼야

부산시장 출마가 확정된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은 고가의 까르띠에 시계 수수 의혹을 받고 있다. 아직 수사 결과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광역단체장 선거에 나선다는 것은 유권자를 향한 예의가 아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법정에서의 권리지, 공직 출마의 면죄부가 아니다. 공직 후보자에게는 더 높은 수준의 도덕적 기준이 요구된다. 의혹에 대한 충분한 해명과 납득할 만한 사유를 제시한 후 출마를 결정하는 것이 공직자로서의 최소한의 책임이다. 그 과정을 건너 뛰고 정치적 기회를 먼저 계산하는 행태는 권력을 향한 욕망이 공적 책임감을 앞서고 있음을 방증한다.

탄핵 정국의 사법 방해 - ‘윤 어게인’ 야권의 사법 부정

반대편에서도 노골적인 사법 부정이 자행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이 진행되는 동안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을 의도적으로 지연했고, 검찰은 윤석열 구속 취소 결정에 즉시항고를 포기하여 사법 절차를 스스로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삼권분립의 수호자여야 할 법 집행기관이 권력자 보호의 방패가 된 것이다.

내란 혐의로 사법적 판단을 받는 상황에서도 ‘윤 어게인(Yoon Again)’이라는 이름의 정치 운동이 조직됐다. 이들은 재판 결과에 승복하기보다 정치적 탄압이라는 프레임으로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정치적 재기를 모색한다.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결정은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민주주의 공동체가 집단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판단이다. 그 판단에 법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판결 자체를 ‘정적에 의한 음모’로 규정하고 이를 정치 동원의 기제로 삼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다. 이것이 어느 방향에서 오든 그 해악은 동일하다.

법치는 ‘내 편일 때’만 작동하는 게 아니다

지금 한국 정치의 공통된 병리는 명확하다. 사법은 내 편에 불리할 때는 조작이요, 내 편에 유리할 때는 정의다. 이 이중성이 여야 모두에서 작동하고 있다.

노태악 전 대법관은 퇴임사에서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안을 사법부로 가져오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며 “양극화된 사회에서 정치의 사법화는 결국 사법 불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조희대 대법원장도 근거없는 사법 폄훼와 법관 악마화를 중단해 달라고 호소했다.

사법부 스스로 위기를 고백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진보든 보수든, 법치주의는 나에게 불리한 판결도 수용하는 데서 비로소 성립한다. 내가 동의하는 판결만 법이고 내가 동의하지 않는 판결은 음모라고 부르는 순간, 법은 더 이상 사회를 통합하는 규범이 아니라 권력투쟁의 무기가 된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

대한민국은 수십년에 걸쳐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동시에 세워 온 나라다.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이룬 역사, 그리고 그 위에 사법 독립과 헌정 질서를 쌓아온 과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판결은 정치로 뒤집는 것이 아니라 법적 절차로 다투는 것이다. 그 유산을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허물어뜨리는 것은 지금의 정치인들만의 손해가 아니다. 다음 세대가 살아갈 나라의 기초를 갉아먹는 일이다.

의혹은 선거로 덮는 것이 아니라 수사와 해명으로 해소하는 것이다. 국정조사는 삼권분립의 틀 안에서 입법부의 정당한 감시기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특정인의 재판 결과를 뒤집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원칙 위에서만 지속 가능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사법을 정치의 시녀로 삼으려는 모든 시도에 우리 국민이 더 단호하게 경계해야 할 때다.

<bmw47@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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