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자영업 현장에선 고객의 요구가 부당하다고 판단되더라도 평판 피해 등을 우려해 이를 수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최근 한 식당 손님이 업주에게 1000만원의 합의금을 요구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 14일 네이버 카페 ‘아프니까 사장이다’엔 ‘손님의 1000만원 요구와 언론 제보 협박’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서울에서 식당을 운영 중이라는 작성자 A씨는 “최근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을 겪어 몸과 마음이 모두 무너졌다”며 말문을 텄다.
A씨에 따르면 이달 초 손님에게 제공된 소주잔에서 실금이 발견됐다. 당시 휴무였던 그는 며칠 뒤 해당 손님이 전화로 보상을 요구해 내용을 알게 됐고, 당일 즉시 보험 접수를 마쳤다.
문제는 상대방이 보험사가 아닌 업주 개인에게 직접 합의금을 요구하며 압박을 이어왔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A씨는 “해당 손님이 ‘피를 토하는 중상해를 입었다’는 주장과 함께 1000만원의 합의금을 요구했다”며 “‘가족이 대학병원 관계자라 진단서를 부풀릴 수 있다’는 식으로 엄포도 놨다”고 주장했다.
합의금 산정의 기준도 분명치 않았고, 액수 역시 700만원으로 낮췄다가 다시 번복하는 등 일관성이 없었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그는 “사건이 발생한 지 2주가 넘었지만 상대방은 지금까지 인과관계가 입증된 전문의 진단서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면서 “그동안 변호사 사무실을 통해 ‘합의금을 주지 않으면 경찰 고소는 물론 언론사에 제보하겠다’는 취지의 내용증명을 3차례 보내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당한 치료비와 보상을 회피할 의도는 전혀 없다”며 “증거 하나 없이 언론 제보 등을 무기로 거액을 요구받는 상황에 피가 마르는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극심한 스트레스로 호흡이 이상해 응급실도 다녀왔지만,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가게라 마음을 다잡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혹시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 알려달라”고 호소했다.
사연을 접한 카페 회원들은 “언론사에서도 받아주지 않을 것 같다” “연락을 끊고 관련 자료를 모두 보관해 둬라” “보험사와 합의하면 되는데 왜 개인에게 따지는지 이해가 안 된다” “대학병원 지인을 들먹이는 것부터 어이가 없다” “상습범 아닌지 의심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유사한 일을 겪었다는 한 회원은 “당시 고객이 보험사 연락은 받지 않으면서 매장에 전화해 ‘가게를 망하게 하겠다’는 등 협박했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며 “지금까지 11년째 장사 중인데 이런 사안은 무시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고 조언했다.
법조계에선 보상 여부는 보험사와의 협의를 통해 판단될 사안인데도 A씨에게 직접 합의금을 요구한 경우 공갈 또는 공갈미수 소지가 있지 않겠느냐는 해석이 나온다.
형법 제350조에 따르면 사람을 공갈해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다만 실제 범죄 성립 여부는 문자메시지나 녹취 등 구체적 자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일각에선 언론 제보나 신고는 시민의 정당한 권리행사로 볼 수 있지만, 이를 금전 요구의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는 행위까지 허용되긴 어렵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법원 역시 정당한 권리행사 형식을 취했더라도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않는 방법으로 금전 지급을 요구했다면 공갈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번 사안처럼 과도한 보상 요구나 평판을 매개로 한 압박을 가하는 소비자는 이른바 ‘블랙컨슈머(악성 소비자)’로 불리기도 한다. 사실관계와 무관하게 사건에 연루됐다는 소문만으로도 해당 업체는 치명적인 평판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 같은 소상공인 생업 피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2024년 발표한 ‘소상공인·자영업자 맞춤형 지원 강화방안’에 따르면 노쇼, 불법 광고대행, 악의적인 리뷰·갑질 등을 대표적인 피해 유형으로 제시했다.
특히 발표 자료에 인용된 지난 2023년 조사에선 경기도 내 소상공인 55.8%가 최근 2년간 갑질 및 악성 댓글 문제를 경험했고, 41.9%는 블랙컨슈머로 인한 금전적 피해를 호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손님이 피해를 과장하거나 평판 리스크를 내세워 업주에게 금전을 요구한 사례는 이전부터 반복돼왔다.
앞서 지난 2023년엔 한 30대 남성이 전국 횟집에 전화를 걸어 “회를 먹고 식중독으로 응급실에 갔다”고 주장하며 보상을 요구했다. 해당 남성은 약 1년간 50차례에 걸쳐 자영업자들로부터 784만6000원을 갈취한 혐의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코로나19 국면이었던 지난 2021년엔 이른바 ‘양주 고깃집 환불 갑질 사건’이 사회적 공분을 샀다. 경기 양주의 한 고깃집에서 식사를 마친 모녀가 “옆 테이블에 다른 손님이 앉아 불편했다”는 이유로 환불을 요구하며 막말했고, 업주가 이를 거부하자 이들은 해당 식당을 감염병관리법 위반으로 신고했다.
이 사연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했고, 업주를 돕기 위한 일명 ‘돈쭐’ 소비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후 경찰은 공갈미수와 업무방해 등 4개 혐의를 적용해 모녀를 검찰에 송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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