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본래 혼자 태어나고 결국 혼자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단에 속함으로써 이 근원적 고독을 잠시 잊는다. 공동체는 운명을 함께 나눈다는 감각을 제공하고, 개인의 불안을 완충해 주는 장치가 된다.
그래서 사회는 점점 ‘함께하기’를 미덕으로, ‘연결’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게 됐다. 우리는 모두 이향인으로 태어나지만, 성장 과정에서 공동체적 인간으로 길러진다. 교육은 협동을 장려하고, 조직은 팀워크를 강조하며, 사회는 소속을 통해 안전과 의미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함께가 혼자보다 낫다’는 믿음은 거의 의심받지 않는다. 문제는 이 표준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이다. 온순한 아이가 ‘고쳐야 할 아이’로 여겨지고, 소속을 강하게 원하지 않는 성향이 결핍처럼 취급될 때, 이향인은 자신이 어딘가 잘못됐다고 느끼게 된다.
세상은 다수의 감각에 맞추어 설계됐고, 그 다수는 공동체 지향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수가 곧 정답은 아니다. 사회가 공동체 인간 중심으로 구성된 이유는 생존과 안정, 그리고 집단적 효율성 때문이었을 뿐, 그것이 인간 존재의 유일한 방식은 아니다. 인간은 본래 어떤 집단에도 속하지 않은 존재로 태어난다. 소속은 본능이 아니라 학습의 결과이며, ‘우리’라는 감각은 성장 과정에서 천천히 주입된다.
다시 말해, 공동체적 인간은 자연 상태가 아니라 사회화의 산물이다. 이 책은 집단에 잘 녹아드는 사람이 정상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예외라는 통념 대신, 애초에 인간은 고유한 개별성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 깨달음은 이향인을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이동시킨다. 이향성은 탈락이 아니라 출발점이며, 결핍이 아니라 하나의 원형에 가깝다. 그리고 그 원형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공동체 중심 사회의 규범을 조금 더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향인으로 산다는 것은 ‘고쳐야 할 사람’이 아니라 ‘다른 구조를 가진 사람’으로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다. 이향인에게 고독은 결핍이 아니라 자원이다. 특히 성인기에 들어 소속의 압박이 줄어들면, 고독은 자유가 된다. 타인과 무관한 자기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자기 수용을 꽃피울 기회가 된다. 무엇을 하며 혼자 시간을 보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자신의 필요와 욕구에 맞는가 하는 점이다. 이향인으로서 좋은 삶을 산다는 것은 외부의 인정에 휘둘리지 않고 삶의 주도권을 쥐는 일이다.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축소하지 않고, 집단 밖에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관계의 수를 늘리는 대신 질을 깊게 하고, 모두와 어울리려 애쓰기보다 소수와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결국 이향인의 삶은 ‘덜 연결된 삶’이 아니라 ‘다르게 연결된 삶’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이 숨 쉬기 편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용기다. 함께하기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조용히 나만의 삶을 꾸려가는 일, 그것이 이향인으로 산다는 것의 본질이다. 그리고 그 삶은 결코 외로운 패배가 아니라, 내면의 나침반을 따라 걷는 하나의 당당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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