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비철금속 분야 세계 1위 기업 고려아연이 창사 이래 최대의 격랑 속에 빠져들었다. 이번 위기의 본질은 여느 기업들이 겪는 대외적 경기 불황이나 산업 경쟁력 약화와는 결을 달리한다.
2024년부터 시작된 고려아연과 영풍·MBK파트너스 간의 경영권 분쟁이 벌써 3년째에 접어들었다. 시장과 주주들은 위기의 진원지로 대주주이자 현 경영진인 최윤범 회장을 지목하고 있다. 최 회장의 ‘독단적 경영’ 행태와 그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들이 건실했던 기업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액주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들은 최 회장이 지키려 하는 것이 과연 고려아연의 미래 가치인지, 아니면 자신의 공고한 경영권 왕좌인지 묻고 있다. <일요시사>는 최 회장을 둘러싼 핵심 의혹을 통해 이른바 ‘사익 경영’이 어떻게 주주가치를 파괴하고 있는지 집중 조명했다.
최 회장을 향한 의혹의 시선은 가장 먼저 본업과 무관한 ‘사모펀드 투자’와 이에 따른 법적 리스크로 쏠린다.
지난해 10월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카카오의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공모 혐의에 대해 김범수 창업자 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시세조종으로 볼 근거가 부족하다”는 판단에 따라 최 회장을 겨냥했던 ‘주가조작 가담’ 의혹의 연결고리는 다소 느슨해진 듯 보인다. 검찰이 항소를 제기하며 불씨는 남아있으나 당장의 입증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이것이 최 회장에게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오히려 법원이 해당 펀드를 운용하며 자금을 댄 지창배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에게 ‘횡령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당시 재판부는 “펀드 출자자들이 일반 투자자가 아니고 피고인과 특별한 관계에 있다”고 명시했다. 이는 고려아연이 쏟아부은 약 6000억원의 자금이 정상적인 투자가 아닌, 최 회장과 중학교 동창인 지 대표와의 친분에 의한 ‘친구에게 맡긴 돈’ 성격임을 법원이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영풍 측은 “운용사 대표가 펀드 자금을 유용해 유죄를 받았다는 것은 고려아연의 컴플라이언스(준법 감시) 체계가 완전히 붕괴됐음을 의미한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주가조작 여부를 떠나 횡령 범죄가 발생한 펀드에 회사의 거액을 감시 없이 맡겼다는 사실만으로도 ‘배임’과 ‘내부 통제 부실’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법원의 이 같은 판단은 ‘특혜성 몰빵 투자’ 논란에도 기름을 부었다. 고려아연은 지 대표가 운영하는 원아시아파트너스의 8개 펀드 중 6개 펀드에 지분 90% 이상을 출자하는 단일 최대 투자자(LP) 역할을 해왔다.
통상적인 LP라면 자금 흐름에 이상이 생길 경우 이를 즉각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지 대표의 횡령 사실을 몰랐거나 방조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더욱이 해당 펀드는 이그니오홀딩스 등 부실 의혹이 있는 기업을 고가에 매수하며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주주들에게 돌아가야 할 배당 재원과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금이 전문적인 검토 없이 ‘학연 경영’의 제물로 쓰였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 대표의 1심 유죄 판결로 인해 최 회장의 투자 결정에 대한 배임 혐의 고발 명분은 더욱 뚜렷해졌다.
대주주 개인의 이익을 위해 회사의 자금력이 우회적으로 동원됐다는 의혹도 끊이지 않는다. 최 회장이 지분 99.9%를 가진 개인 투자조합 ‘여리고1호’가 투자한 ‘청호컴넷’건이 대표적이다. 청호컴넷의 주가 부양을 위해 고려아연 자금 200억원이 우회적으로 투입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영풍 측은 최 회장이 개인적 시세차익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고려아연 자금이 ‘마중물’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며 검찰 고발을 단행한 상태다. 상장사의 자금이 대주주 개인의 재테크 도구로 사유화됐다는 의혹은 자본시장의 신뢰를 바닥으로 추락시키는 중대 사안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경영권 방어 과정에서 보여준 일련의 행보 또한 ‘주주 경시’ 논란을 키웠다. 최 회장은 경영권 방어가 시급해지자 2.5조원 규모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기습적으로 추진했다가 시장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 이를 철회했다. 공개매수로 주가가 급등한 상황에서 기존 주주들의 지분가치를 희석시키는 신주 발행 시도는 ‘주주 배신행위’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또한 자사주를 우호 세력과 교환해 주주 동의 없이 의결권을 부활시키려 한 시도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러한 무리수는 결국 한국거래소 밸류업 지수에서 ‘주주가치 훼손’을 사유로 퇴출당하는 수모로 이어지며 고려아연을 ‘투자 기피 종목’으로 낙인 찍히게 만들었다.
최 회장은 호주 손자회사인 썬메탈(SMC)을 동원해 경쟁 상대인 영풍의 주식을 매입하게 함으로써 의결권을 제한하려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경영상 합당한 이유 없이 해외 자금을 국내 지배력 싸움에 동원한 것은 특경법상 배임 및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크다.
지난해 진행된 1·2심 재판부는 고려아연이 해외 자회사를 활용해 의결권을 제한한 것은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글로벌 사업 확장에 쓰여야 할 자금이 국내 집안싸움의 ‘방패’로 소모되면서 해외 투자자들의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액주주는 “지금의 고려아연은 최 회장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과 국민연금, 국가 기간산업을 지탱하는 노동자들의 터전”이라며 “최 회장이 수많은 의혹에 ‘몰랐다’ ‘적법했다’는 변명으로 일관하는 동안 주가는 롤러코스터를 탔고 주주 자산은 녹아내렸다”고 토로했다.
이어 “횡령·배임 의혹, 시세조종 가담 등 주식시장에서 가장 엄중하게 다루는 범죄들이 최 회장의 이름 뒤에 따라붙고 있다”며 “소액주주들은 더 이상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용 총알이 되기를 거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최 회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난무하는 가운데, 다가오는 3월 주주총회는 이재명정부의 자본시장 개혁 의지가 시험대에 오르는 첫 무대가 될 전망이다. 특히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한 상법 개정 이후 첫 주총이라는 점에서 그 상징성은 매우 크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6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국민연금의 역할에 대해 전례 없이 강한 어조로 주문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국민 주식을 가진 국민연금공단이 의결권을 제대로 행사해야 한다”며 “특히 후진적 경영을 하는 기업에는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기업 사유화를 막고 주주가치를 수호하는 것이 연금의 공적 책무임을 명확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대통령의 발언은 지배구조 리스크가 불거진 기업에 대해 국민연금이 침묵하지 말라는 강력한 시그널”이라며 “각종 의혹으로 주주가치를 훼손한 고려아연 경영진의 손을 국민연금이 들어준다면, 이는 현 정부의 국정 기조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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