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국민의힘 거물은 왜 전장 피하나

2026.03.09 08:29:15 호수 0호

패배 피한 선택인가, 다음 권력 위한 계산인가 

오세훈 서울시장은 8일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후보 신청 시간을 22시까지 연장했는데도 끝내 신청을 하지 않았다. 이 소식은 정치권을 뒤흔들었다. 당의 간판이자 수도권 승부의 상징인 인물이 선거 출발선에 서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지방선거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오 시장은 ‘당 노선 정상화’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유권자가 느끼는 공백은 명분보다 현실에 가깝다.

승부의 중심에 서야 할 주자가 관중석으로 물러난 장면은 선거 전략의 이상 신호다. 선거는 명분이 아니라 책임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중심이 흔들리는 선거는 필패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나경원·안철수 의원, 유승민 전 의원도 일찌감치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당의 중량감 있는 인물이 줄줄이 링 밖으로 걸어 나가는 모습은 단순한 세대교체나 전략적 후퇴로 보이지 않는다. 선거는 결국 책임 정치의 무대인데, 책임질 인물이 먼저 퇴장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은 크다.

겉으로는 당 혁신과 노선 정비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패배의 책임에서 멀어지려는 계산이 깔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패배할 가능성이 높은 싸움에 몸을 던지기보다 다음 승부를 준비하는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의 시간표는 선거 달력보다 훨씬 길게 움직인다.


이번 지방선거 판세가 녹록지 않다는 판단이 당내에 이미 공유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설득력을 갖는다. 수도권 민심의 흐름, 정권 중반부에 접어든 이재명정부 평가, 야권 결집 구도까지 고려하면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거물이 전면에 나섰다가 패배의 책임을 뒤집어쓸 경우 정치 생명은 치명상을 입는다.

차라리 한 발 물러서 차기 총선과 대권 구도를 도모하는 편이 합리적이라는 전략적 판단이 가능하다. 정치에서 한번의 패배는 단순한 전적이 아니라 미래 정치의 문을 닫는 족쇄가 되기 때문이다. 불출마는 소극적 선택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가장 계산된 공격적 선택이 된다.

정치는 결국 ‘누가 남느냐’의 게임이 아니라 ‘누가 책임지느냐’의 시험이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는 ‘플랜B’를 말하지만 대체 카드가 쉽지 않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서울과 경기도 같은 상징 지역에서 후보군이 빈약하다는 사실은 당의 위기 수준을 그대로 드러낸다. 선거는 결국 ‘사람 싸움’인데 사람을 세우지 못하는 정당은 이미 전열이 무너진 상태다.

지도부가 중진 차출론을 꺼내 들었지만 이는 전략이라기보다 궁여지책에 가깝다.

스스로 나설 인물이 없다는 사실을 ‘차출’이라는 표현으로 포장하는 셈이다. 전략 정당이라면 플랜B가 아니라 이미 플랜A 안에 대체 시나리오가 준비돼있어야 했다. 위기 때 피하는 리더가 많은 정당은 승리의 기억보다 패배의 장면으로 더 오래 남는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9일 긴급 의원총회에서 오세훈 시장 출마 문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될 경우 당 지도부 역시 기존 방침의 수정 가능성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밝혔다. 이정현 공관위원장도 추가 접수 가능성을 열어두며 여지를 남겼다.

지도부가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문을 완전히 닫지 못하는 모습이다. 전략적 결단이 아니라 상황 변화에 따라 흔들리는 대응처럼 비친다는 점에서 당내 혼선의 단면을 보여준다. 결국 이날 의원총회가 당의 방향성을 가늠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반면 대구·경북으로 후보가 몰리는 현상은 또 다른 정치적 메시지를 던진다. 승산이 높은 지역에서 정치적 기반을 다시 다지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 험지에서 당을 살리기보다 안전지대로 이동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선택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는 전국 정당이 아니라 지역 정당으로의 수축을 의미한다.

수도권에서 밀리고 텃밭으로 숨는 정당은 집권 정당이 아니라 방어 정당에 가깝다. 정당이 외연 확장 대신 핵심 지지층 방어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선거는 ‘확장 경쟁’이 아니라 ‘버티기 경쟁’으로 변한다. 지금 국민의힘의 흐름은 공세적 확장보다 방어적 생존 전략에 가깝다.


이 같은 장면들이 이어지면서 당이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도 짙어진다. 선거를 앞둔 정당은 구심력이 강해지기 마련인데, 오히려 각자의 정치 일정표에 따라 흩어지는 모습이 반복된다. 노선 갈등, 지도부 책임론, 중진들의 거리두기가 복합적으로 얽히며 ‘원팀’ 이미지가 형성되지 않는다.

선거는 결국 심리전인데, 내부 분열은 상대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유권자는 정책보다도 정당의 안정성과 팀워크를 먼저 본다. 지금처럼 중심이 흔들리는 모습은 신뢰를 쌓기보다 불안을 키운다.

거물 정치인의 불출마를 단순한 불만 표출로만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패배 가능성이 큰 전장에서 희생양이 되기보다 다음 전선을 준비하는 선택일 가능성이 크다. 지방선거는 잃더라도 총선과 대선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장기 전략일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한국 정치에서 지방선거 패배가 곧바로 대권 실패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거물에게 중요한 것은 ‘이번 승리’가 아니라 ‘다음 권력’일 수 있다. 불출마는 도망이 아니라 체력 안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마다 반복되는 체력 안배는 결국 책임 회피라는 인식으로 굳어진다.

이런 전략이 누적될수록 정당은 ‘책임지는 정치’ 대신 ‘계산하는 정치’의 이미지를 남기게 된다. 어려운 싸움에 앞장서는 인물이 사라진 자리에는 기회주의만 남는다. 정당은 승리할 때보다 패배할 때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패배를 감수하고도 책임지는 모습이 있을 때 유권자는 다시 기회를 준다.

선거는 권력을 얻기 위한 경쟁이기 이전에 국민 앞에서 책임을 증명하는 과정이다. 책임지지 않는 전략은 결국 더 큰 패배로 돌아온다. 승부를 피하는 정당은 일시적으로 상처를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신뢰를 잃는다.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지만, 동시에 책임의 역사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장면들은 국민의힘이 어떤 정당으로 남을 것인가를 묻고 있다. 위험을 감수하며 전면에 설 것인가, 아니면 패배 가능성을 피해 다음 기회를 노릴 것인가의 갈림길이다. 유권자는 계산된 침묵보다 책임 있는 결단을 기억한다.

전장을 떠난 거물의 선택은 개인의 전략일 수 있다. 그러나 정당이 그 전략을 묵인하는 순간, 그 정당은 더 이상 ‘책임의 조직’이 아니라 ‘계산의 집단’으로 기억된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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