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보험은 판결 아닌 약속으로 작동해야

2026.03.07 08:33:17 호수 0호

1심 승소 후 분쟁, 가입자는 왜 보호받지 못하나

보험은 국민이 국가로부터 허가받은 약속을 사는 행위로 사람들은 매달 보험료를 낸다. 지금 당장의 소비를 줄이고 사고와 죽음, 질병의 순간에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 제도가 유지되는 힘은 단 하나, 유사시 보상금이 지급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결국 보험 산업의 기반은 금융 기술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가치 위에 서 있다.



문제는 분쟁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약속은 계약 문구가 되고, 그 문구는 해석이 되며, 해석은 다툼이 된다. 계약을 체결할 때 고객이었던 사람은 지급 단계에 이르면 입증 책임을 지는 당사자가 된다. 보험은 그때부터 금융 상품이 아니라 법률 사건이 된다. 약속의 언어가 법정의 언어로 바뀌는 순간 개인이 감당해야 할 부담은 갑자기 커진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보험 약관에는 일정 요건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분쟁이 발생하고 재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그러나 계약 책임을 강조하기에 앞서 계약 당시 약관의 의미와 분쟁 발생 시 부담해야 할 절차를 명확히 설명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위험과 조건이 충분히 고지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온전한 ‘약속’이라고 보기 어렵다.

모 보험사와 수십년 계약을 유지해 온 한 가입자의 사례는 이 구조가 개인의 삶을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오랜 기간 1억원이 넘는 보험료를 낸 VIP 고객이었다. 회사가 권유하는 상품에도 응했고 노후 대비라는 설명을 믿었다.

보험 계약이 인간관계 속에서 이뤄지듯, 그 역시 선생님과 학부모 관계 속에서 상품 설명을 듣고 가입했다. 필요할 때 보장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 재판은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그는 시골에서 자라며 질병으로 집을 몇 채씩 잃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많이 목격했고, 연금을 받는 공무원들과 달리 자영업을 하는 그에게 보험은 금융 상품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삶의 안전망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아버지가 쓰러지고 세상을 떠난 뒤, 부모님을 위해 젊은 시절부터 성실히 납부해 온 보험의 소액 보험금을 청구하는 과정은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코로나로 자영업의 생존 기반이 흔들리던 시기, 아버지의 사망까지 겹치면서 모든 상황을 온전히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그 과정에서 챙기지 못한 부분도 적지 않았다. 보험금 접수, 보완 요구, 추가 자료 제출, 재검토, 그리고 지급 거절. 절차는 반복됐고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그 사이 생계는 더욱 악화됐고 자영업의 기반도 함께 무너지고 있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고 오랜 세월 납부해 온 보험료의 의미를 되찾고자 했다. 의료기록을 확보하고 전문가 의견서를 받았으며 금융감독원의 판단도 구했다. 자료를 하나씩 갖춰가는 동안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육체적 피로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정신적 소진이었다.

아버지를 충분히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과 함께, 위기에 대비하고자 가입한 보험이 정작 위기의 순간에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허탈감이 이어졌다. 매달 거액의 보험료를 납부해 온 시간에 대한 회의도 깊어졌다. 불면과 우울 증세가 반복되며 결국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는 권리를 포기할 수 없었고 결국 소송이라는 마지막 선택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1년의 소송 끝에 1심 판결은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것이었다. 법원이 그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여기까지라면 늦었지만 약속이 작동했다고 말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도 이제 조금 숨을 돌릴 수 있겠다고 말했다. 그 순간만큼은 긴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위로가 됐다.

하지만 보험사는 항소했다. 회사에게 그것은 법이 보장한 권리였다. 기업 입장에서 항소는 특별한 선택이 아니라 하나의 절차일 수 있다. 그러나 개인에게 그 소식은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통보였다. 이미 긴 시간을 버텨온 사람에게 항소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된다.

그리고 결과는 뒤집혔다.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1심에서도 변호사 없이 오랫동안 혼자 싸웠지만, 승소 경험을 믿고 2심에서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것이 큰 실수였다.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2심 재판이 생각보다 복잡했고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비용과 절차의 장벽이 높았다고 했다. 거기에 1·2심 보험회사 변호사 비용까지 떠안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 2심에서 의학적 판단은 엇갈렸다. 치료를 담당했던 의료진의 의견과 별도의 자문 의견이 충돌했다. 법원은 후자의 손을 들었다. 법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가족에게 중요한 것은 환자를 직접 오랜 시간 지켜본 의료진의 판단이다.

치료가 이루어진 곳은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의료기관인 서울대학교병원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지방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 호흡기에 의존한 위중한 상태로 모 대학병원 응급실에 이송됐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기다렸지만 적극적인 치료가 어렵다는 판단을 받았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마지막 희망처럼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다시 치료가 시작돼 가까스로 1년간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1년 동안 환자를 지켜본 서울대 교수의 의학적 판단은 가족에게 마지막 보호선과도 같은 의미로 남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직접 환자를 돌본 의료진의 소견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심의 판단은 달랐다. 법정은 증명의 공간이고 증명은 서류와 논리로 이루어진다. 반면 사람의 삶은 기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가족이 곁에서 지켜본 시간과 기억, 그리고 의료 현장에서 이어진 절박한 순간들은 서류 몇 장으로 온전히 담기 어렵다.

바로 그 간극이 절망을 키웠다. 법정에서 선택된 판단이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판단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 크다. 가족이 지켜본 시간과 치료 기록이 무력해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법리의 합리성과 삶의 체감 사이에는 언제나 거리가 존재한다.

또 우리는 환자를 직접 진료한 의사의 소견이 맞는지, 진료기록을 토대로 자문한 의사의 소견이 맞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보험회사와 5년간 분쟁을 이어오면서 자신이 납부한 많은 보험료와 달리 소액 보험금 지급을 막기 위해 보험회사가 오히려 더 많은 금융비용을 지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이 아니었다면 한강으로 달려가 삶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5년 동안 나는 보험회사와 무엇을 했고, 이런 보험회사를 믿고 30년 가까이 보험료를 납부해온 것인가.” 그 말은 과장이 아니라 체력과 정신의 한계를 토로한 고백이었다.

필자가 이 사례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이유는 특정 보험사를 지목하거나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보험 분쟁 구조가 지닌 근본적인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이 사례 앞에서 잠시 멈춰 서야 한다. 보험 분쟁이 개인을 어디까지 소모시킬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제도는 왜 가장 약한 사람에게 가장 긴 시간을 요구하는가.

보험사는 “항소는 법이 보장한 권리”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니다. 누구도 재판청구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권리가 반복될 때 구조적으로 누가 더 유리한지는 분명하다.


재판은 기업에 유리하다. 기업에는 법무팀이 있고 법률 자문도 있으며 재정적 여유도 있다. 그러나 개인은 다르다. 하루하루 생계를 위한 일을 해야 하고 병원에도 가야 하며 가족도 돌봐야 한다. 재판이 길어질수록 ‘포기’라는 단어가 가까워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판결을 끝까지 보지 못한 채 중간에 포기한다.

이는 패소해서가 아니라 삶에서 먼저 지치기 때문이다. 그 순간 재판의 의미도 달라진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보험이 국민의 안전망이라면 그 안전망이 작동하는 방식 또한 공공의 문제가 아닌가. 법적 권리를 존중하면서도 체력의 불균형을 완화할 장치를 고민해야 한다. 지금의 제도는 개인에게 너무 많은 자료와 시간을 요구하고 있다. 그 부담은 결국 사회로 돌아온다.

예를 들어 보험계약자가 1심에서 승소했을 경우 보험사의 항소 요건을 강화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새로운 증거가 있는지, 명백한 법리 오해가 있는지 먼저 따져보게 하는 장치다. 또는 항소를 하려면 일정 부분을 먼저 지급하거나 공탁하도록 설계할 수도 있다. 재심을 선택하는 보험사가 비용도 함께 부담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이것은 보험사를 벌주자는 논의가 아니다. 신뢰를 지키자는 논의다. 보험 산업이 성장해 온 배경에는 결국 지급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사람들이 보험을 신뢰하는 이유도 그 믿음 때문이다. 믿음이 사라지면 보험 산업의 기반도 흔들린다.

보험사 역시 장기적으로 손해다. 한 건의 승소로 당장의 비용을 줄일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사례가 반복되고 이야기가 축적될수록 가입자는 줄어든다. 신뢰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산업에서 평판은 가장 중요한 자본이다. 한 번 금이 간 평판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평판이 무너지면 시장도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다.

보험은 ‘미래를 파는’ 산업이다. 아직 오지 않은 위험을 약속이라는 형태로 전환하는 제도다. 가입자는 불확실한 내일에 대비하기 위해 오늘의 비용을 지불한다. 그렇다면 그 약속을 끝까지 지탱하는 힘은 계약서의 문구가 아니라 신뢰다. 종이 위의 조항보다 중요한 것은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이다. 현재의 신뢰가 무너진 상태에서 미래의 보장을 말할 수는 없다.

1심에서 이겼는데 삶은 더 어려워졌다는 고백이 반복된다면 사람들은 보험을 더 이상 약속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승소 이후에도 계속되는 시간과 비용, 감정 소모는 또 다른 상처로 남는다. 그때 보험은 안전망이 아니라 끝없는 분쟁의 출발점이 된다. 분쟁이 일상이 되면 제도의 존재 이유도 흐려진다.

기업도, 소비자도, 시장도 모두 패자가 되는 구조다. 결국 누구도 이기는 쪽이 없는 소모전만 남는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법적으로 누구의 논리가 더 정교한가를 따지는 데서 멈출 일이 아니다. 이 제도가 국민에게 지속적인 신뢰를 줄 수 있는지 근본부터 물어야 한다. 제도의 목적이 분쟁의 승패가 아니라 사회적 안정에 있다면 답은 분명해진다. 신뢰는 판결문 한 줄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답은 법정 밖, 제도가 국민을 대하는 방식 속에서 형성된다.

보험은 말 그대로 우발적인 사고와 질병에 대비하기 위한 제도여야 하며, 소송에서 이기는 산업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는 산업이어야 한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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