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과 이란의 보복 공격으로 중동 정세가 급격히 악화한 가운데, 국내 주유소 기름값이 초고속으로 치솟고 있다.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이 리터당 1800원을 넘어선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가 극심했던 2022년 8월(1805.9원) 이후 약 3년7개월 만이다. 정부는 일부 주유소의 비정상적 가격 인상과 담합 가능성에 대한 시장 단속에 나서기로 했다.
5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30분 기준 전국 주유소 보통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리터당 1821.98원을 기록했다. 지난달 28일 1692.89원이었던 가격이 닷새 만에 7.6% 넘게 뛴 셈이다.
서울은 리터당 1883원으로 가장 높았고, 대전 1847원, 세종 1832원, 전북 1831원, 대구 1828원, 경기 1826원 순으로 높은 가격을 형성했다. 서울 일부 지역에서는 리터당 2800원 이상을 받는 주유소까지 등장했다.
경유 가격의 상승세는 더욱 가팔랐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은 리터당 1811.03원으로 2022년 12월 이후 약 3년3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일부 지역에선 경유가 휘발유보다 비싼 역전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국제유가도 요동치고 있다. 두바이유는 이란 공습 전후로 배럴당 71.24달러에서 이날 기준 86.34달러로 약 15달러 이상 급등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세계 주요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유조선을 공격하면서 중동발 공급 차질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에 들어오는 중동산 원유의 99%가 통과하는 핵심 길목이기도 하다.
이 같은 여파는 곧장 국내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을 들쑤시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가격 인상의 ‘속도’다. 통상 국제유가 변동이 국내 주유소 가격에 반영되기까지는 원유 수입·정제·유통 과정을 거쳐 2~3주의 시차가 존재한다.
현재 주유소에서 판매되는 기름은 2~3주 전 도입된 원유로 만들어진 것인 만큼, 당시 국제유가 수준이 반영돼야 정상이다. 실제로 지난달 9~13일 두바이유 가격 변동 폭은 0.1%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실에선 호르무즈 해협 봉쇄 소식이 전해지자 거의 실시간으로 가격이 뛰었다. 하루 만에 휘발유 가격이 2% 넘게 오른 것은 최근 10년 내 처음있는 일이다.
온라인상에서도 천정부지로 솟는 기름값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다. “싸질 때는 비쌀 때 사놨던 재고를 팔아야 해서 천천히 내리면서, 왜 비싸질 때는 재고가 없는 것처럼 미사일 맞자마자 가격이 오르느냐” “비축분이 있고 선물거래인데 갑자기 내일 중동에서 사 오는 것마냥 오른다” 등의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기름값을 올릴 때는 빛의 속도처럼 빠르게, 내릴 때는 더디게 움직이는 이른바 ‘비대칭적 가격 조정’이 이번에도 재연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 오르기 전에 기름을 채워두겠다는 운전자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유소로 몰리면서 전국 각지에서 장사진을 이루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공포 주유’는 수요 급증을 통해 가격 상승을 더욱 부추기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소비자들의 분노가 일선 주유소를 향하고 있지만, 주유소 업계에선 자신들도 사실상 손을 쓸 수 없는 구조라는 입장이다.
서울 소재 한 주유소 대표는 “국제유가가 먼저 오르면 그 다음이 정유사 공급 가격이 오르고, 카드 수수료·인건비까지 감안하면 리터당 마진이 얼마 남지 않는다”며 “정작 가격 결정 구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은 크게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주유소 휘발유 가격의 결정 구조를 들여다보면 소비자가 지불하는 금액의 상당 부분은 주유소의 재량 밖에 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세금이다. 교통세·교육세·주행세·부가가치세 등이 정액 구조로 부과되기 때문에, 국제유가가 내려도 세금이 고정돼있어 가격 하락 효과가 제한적이다. 여기에 싱가포르 거래소 국제 현물 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원유 가격·정제 마진·수송비 등이 반영된 정유사 공급가격이 더해진다.
같은 지역에서도 주유소마다 가격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유통 비용 구조의 차이에서도 비롯된다. 직영 주유소와 일반 주유소, 대리점 경유 여부에 따라 정유사로부터의 공급 단가가 다르고, 임대료·인건비 수준과 세차 등 부가 서비스 유무에 따라서도 운영 원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인근 주유소 간 경쟁 강도에 따라 마진 폭을 줄이거나 늘리는 전략적 가격 조정도 이뤄진다.
다만 이 같은 구조적 이유에도 불구하고, 국제유가 상승이 2~3주의 시차 없이 거의 실시간으로 판매가에 반영되는 현상까지 정당화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제8회 임시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국가적 위기 상황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익을 취해보겠다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 같다”며 “구체적인 제재 방안이 어떤 게 있는지 논의해보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객관적으로 심각한 차질이 벌어진 것도 아닌데 갑자기 폭등했다”며 “최고 가격을 일률적으로, 전국적으로 지정하기 어렵다면 지역별로 유류 종별로 현실적인 가격을 신속하게 지정하라”고 지시했다.
또 각 주유소가 매입하는 기름값에 대한 가격 정보를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하도록 하는 방안도 함께 요청했다.
이미 전날 공정거래위원회와 산업통상부·재정경제부 등은 주유소 및 정유업체의 급격한 가격 인상을 방지하기 위한 시장 단속 방안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정부는 2023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무력 충돌 당시에도 ‘범부처 석유 시장 점검단’을 가동해 가격 담합 현황 조사, 유가 보조금 부정수급 및 세금 탈루 혐의 점검 등을 실시한 바 있다. 이번에도 유사한 수준 이상의 시장 감시가 이뤄질 전망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도 이날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런 틈을 타 매점매석하거나 가격을 인상하는 행태들이 나오고 있는데 참 파렴치하다”며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분명히 따른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했다.
김 장관은 “원유 208일분을 비축하고 있어 수개월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상황이 장기적으로 갈 수도 있는 만큼 원유 수급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향후 안정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신호도 감지되고 있다. 4일(현지시각) 기준 가파르게 치솟던 국제유가가 보합세로 전환하며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 정보 당국이 제3국을 통해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간접적인 물밑 협상을 시도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다.
결국 관건은 호르무즈 해협이 언제 안정을 되찾느냐다. 미·이란 간 물밑 협상이 긴장 완화라는 성과를 낸다면 유가는 진정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 반대로 무력 충돌이 확대되거나 봉쇄 조치가 길어진다면, 고유가 충격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시장 단속과 비축유 방출 등 가격 안정 조치가 어느 수준까지, 얼마나 신속하게 이뤄지느냐도 체감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편, 국내 정유시장은 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 4개사가 과점하는 구조다. 막대한 시설투자로 신규 진입 장벽이 높고, 전국 주유소망까지 장악하고 있어 새로운 유통망 개설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석유제품은 정유사별 품질 차이도 크지 않아 지정학적 위기 때마다 담합 의혹이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다.
업계 관계자는 “제품 간 차이가 크지 않아 담합 유혹도 크지 않다”고 해명하지만, 소비자들의 시선은 여전히 차가운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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