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퇴근길, 휴대전화에 카카오톡 하나가 도착했다. 누군가가 전달해 준 ‘독립기념관장 입장문’이었다. 이미 뉴스를 통해 독립기념관 이사회가 김형석 관장에 대한 해임 의결을 가결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기사 제목만으로는 읽히지 않는 결이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읽었다.
입장문을 다 읽고 난 뒤 남은 감정은 분노도, 동의도 아니었다. “이건 너무 빠르다”는 판단이었다. 김 관장 해임은 지난 12일 보훈부 감사 결과에 대한 이의신청이 기각된 후 7일 만에 의결됐다. 원래는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 해임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다.
김 관장을 두둔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의 역사 인식과 표현 방식, 태도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독립기념관 이사회가 선택한 해임의 방식과 속도가 과연 공공기관 해임이라는 제도의 무게에 걸맞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가 기억과 역사를 다루는 태도로서 적절했는지를 묻고 싶다.
김 관장은 지난 2024년 8월에 취임했다. 이후 2026년 1월, 임기 반환점을 갓 돈 시점에서 해임이 의결됐다. 그 사유로 제시된 것은 국가보훈부 감사 결과였는데, 14건의 비위, ‘기관 사유화’ ‘업무추진비 사적 유용’이라는 강한 표현들이었다.
숫자와 단어만 보면 해임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입장문을 읽어보니, 문제는 숫자와 단어의 크기가 아니라 그 해석과 비례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장문에서 김 관장은 ‘감사 결과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러면서 환수 대상 금액은 55만2000원, 장소 사용료와 주차료를 모두 합쳐도 20만원 수준이라는 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공공기관장의 도덕성과 엄격함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이 금액이 ‘무혐의’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이 곧바로 ‘즉각 해임’이라는 최고 수위의 징계로 직결되는 것이 합리적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공공기관장 해임은 형사 처벌이 아니다. 그러나 제도적으로는 형벌에 준하는 무게를 가진다. 개인의 명예, 경력, 사회적 평가를 사실상 종료시키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법령과 정관은 ‘중대한 위반’이라는 요건을 엄격하게 요구한다.
김 관장의 주장대로 감사 결과가 중대 과실을 명시하지 못했다면, 해임은 정치적 판단이자 메시지의 선택이 된다.
입장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그가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방식이 ‘공적 성과’와 ‘개인 서사’를 동시에 꺼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관람객 179만명, 전년 대비 11% 증가, 지역사회 공헌 인증 A+ 등은 행정 책임자로서의 성과를 주장하는 대목이다.
반면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농성, 광복회 일부 회원들의 점거에 대한 언급, 그리고 6·25 참전 학도병이었던 부친의 이야기는 정서적 호소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많은 독자들은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공공기관장이 해임 위기에서 자신의 가계(家系)를 말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독립운동가 후손의 항의를 ‘소수의 불법점거’로 규정하는 태도가 오만하지는 않은지 질문도 충분히 가능하다.
김 관장의 태도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해임 사유가 되느냐는 것이다. 태도가 부적절하다고 곧바로 직위 박탈로 이어진다면, 우리는 앞으로 공공기관장에게 무엇을 요구하게 될까? 무결점의 인격인가, 완벽한 언어 감각인가, 아니면 특정 진영의 역사 해석에 대한 완전한 일치인가.
이사회 의결 이후 나온 보도들은 김 관장을 ‘뉴라이트 인사’ ‘친일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 ‘광복을 폄하한 인물’로 규정했다. 물론 이 평가 자체에 동의하는 국민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신중했어야 한다.
역사 인식의 문제는 토론과 검증, 반박과 기록의 문제이지, 감사와 해임으로 정리될 사안은 아니다. 역사 논쟁을 징계로 덮는 순간, 그 논쟁은 정치화되고, 피해자는 오히려 순교의 서사를 얻게 된다.
독립기념관은 기억의 기관이다. 기억은 단죄보다 느리고, 교육보다 오래 간다. 잘못된 역사 인식이 문제라면, 그것은 전시와 연구, 공론을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 해임은 가장 쉬운 선택이지만, 가장 게으른 선택이기도 하다.
19일 이사회는 재적 15명 중 13명이 참석했고, 김 관장을 제외한 12명 중 10명이 찬성했다. 숫자로 보면 충분한 의결이나, 해당 결정이 사회적으로 충분한 숙성 과정을 거쳤는지는 의문이다. 사퇴 요구 시위는 오래됐지만, 감사는 특정 시점에 집중됐고, 이사회는 ‘긴급’이라는 이름으로 움직였다.
공공기관의 최고 징계가 이렇게 빠르게 처리되는 장면을 우리는 자주 보지 못했다.
이제 공은 국가보훈부 장관의 제청과 이재명 대통령의 재가로 넘어갔다. 이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판단이다. 대통령의 재가는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이 해임이 국가의 기억 정책으로써 정당한지에 대한 최종 책임이다.
김 관장의 태도가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는 비판할 수 있다. 그의 발언이 상처를 줬다는 지적도 유효하다. 그러나 해임을 통해 ‘당신은 틀렸다’가 아니라 ‘당신은 나가라’는 방식으로 문제를 정리했다는 것이 안타깝다.
독립기념관은 특정 진영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다수의 분노를 즉각 반영하는 정치적 공간도 아니다. 이곳은 기억을 다루는 곳이며, 기억은 언제나 불편하고 복잡하다. 불편하다고 곧바로 제거하는 사회는 결국 자신이 불편해질 미래도 함께 지워버리는 것과 같다.
김 관장이 옳았는지, 옳지 않았는지는 시간이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해임 의결이 옳았는지는 우리가 다시 물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