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법개혁 논의의 중심에는 ‘특별재판부 설치’가 있다. 특정 사건과 정치적 사안에 대응해 전담 재판부를 만들자는 요구가 반복되지만, 사건이 터지면 재판부를 바꾸고 여론이 흔들리면 제도를 덧붙일 뿐, 판결의 질이 왜 흔들리는지에 대한 질문은 빠져 있다.
특별재판부는 공정성을 강화하는 수단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사법부를 정치의 전면으로 끌어내는 구조이기도 하다. 누가 그 재판부에 들어가느냐, 왜 그 사건이 특별 취급을 받느냐는 논쟁이 판결 전부터 시작된다. 사법부는 판결로 말해야 하지만, 구조 설계부터 의심받는 순간 판결의 권위는 약해진다.
진짜 사법개혁은 재판부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판결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바꾸는 것이다. 법 조문 숙련보다 사건 작동에 대한 깊은 이해가 판결의 질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제도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 사법개혁은 반복해서 제자리로 돌아온다.
특별재판부가 개혁처럼 보이는 이유
특별재판부 논의는 늘 정의감에서 출발한다. 기존 사법 시스템으로는 공정한 판단이 어렵다는 불신이 쌓일 때, 정치권과 여론은 별도의 장치를 요구한다. 물론 그 요구는 설득력이 있다. 기존 재판부가 부족하다면, 더 강한 재판부를 만들자는 논리다. 위기 상황에서 가장 손쉬운 해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전가한다. 판결의 질이 흔들리는 원인을 제도 밖에서 찾기 때문이다. 판사가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문제를 재판부 명칭과 구성 변경으로 덮으려 한다. 이는 증상을 치료하지 않고 간판만 바꾸는 처방이다. 구조는 그대로 둔 채 책임만 이동시킨다.
특별재판부가 늘어날수록 사법부는 더 정치적으로 보인다. 어떤 사건이 특별한지에 대한 판단 자체가 정치가 되기 때문이다. 사법부의 독립은 구조에서 나오지, 특별함에서 나오지 않는다. 특별함은 오히려 의심을 키운다. 그 순간 재판은 판결 전에 이미 구성 논쟁부터 심판대에 오른다.
판결은 법이 아닌 현실을 번역하는 작업
판결은 법 조문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행위가 아니다. 현실에서 벌어진 복잡한 사실을 법의 언어로 옮기는 번역 작업이다. 이 번역이 실패하면, 판결은 합법일 수는 있어도 납득되지는 않는다. 시민이 판결에 분노하는 지점은 대개 이 지점이다. 판결문이 길어질수록 이해는 멀어지고, 불신은 깊어진다.
현대 사회의 분쟁은 단순하지 않다. 기술, 조직, 시스템, 이해관계가 중첩돼 하나의 사건 안에 공존한다.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판사는 서류의 일부만 보고 판단하게 된다. 그 결과 판결은 형식적으로는 완결돼 보이지만, 현실과는 어긋난다. 시민은 판결에서 현실의 온도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판결의 질은 법 지식의 양이 아니라, 구조 이해의 깊이에서 갈린다. 법리는 마지막 단계고, 그 이전의 해석이 판결의 방향을 결정한다. 사실을 어떻게 해석했는지가 결론을 좌우하며, 이 해석 능력은 시험 점수가 아니라 사고의 훈련에서 길러진다. 사법의 전문성은 여기에 있다.
쿠팡과 플랫폼 사건이 던진 질문
쿠팡과 같은 플랫폼 사건은 전통적인 법 분류로 설명되지 않는다. 민사인지, 노동인지, 공정거래인지, 행정인지가 한 사건 안에 섞여 있다. 계약서만 보면 중개자고, 현장을 보면 지배자다. 이 간극을 이해하지 못하면 판결은 필연적으로 한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틀의 선택이 곧 결론이 된다.
플랫폼의 핵심은 구조다. 알고리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책임이 어떻게 분산되는지, 위험이 어디로 이전되는지를 읽어야 한다. 이를 모르면 판사는 가장 정제된 문서,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에 끌려간다. 구조를 읽지 못한 판결은 언제나 말이 많은 쪽이 이긴다. 침묵하는 구조는 패소하고, 포장된 논리가 승소한다.
그래서 플랫폼 판결은 늘 논란이 된다. 법리가 틀려서가 아니라, 사건을 이해하지 못한 흔적이 판결문 곳곳에 남기 때문이다. 시민은 판결문에서 결론보다도 "이 재판부가 이 세계를 이해하고 있는가"를 먼저 읽는다. 그 판단은 빠르다. 판결의 설득력은 선고 순간 이전에 이미 결정된다.
산업병 판결서 반복되는 오판의 구조
산업병과 산재 판결은 구조 이해의 중요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산업병은 단일 원인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누적, 확률, 환경, 조직이 동시에 작용한다. 이를 개인의 질병 이력이나 단기 인과관계로 환원하면 판결은 왜곡된다. 구조는 사라지고 개인만 남는다. 책임은 조직에서 떨어져 나와 노동자에게 집중된다.
그럼에도 많은 판결은 “직접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문장으로 끝난다. 이는 법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방식의 문제다. 산업병은 애초에 그렇게 입증되지 않는 구조를 가진다. 이 사실을 외면한 판결은 반복해서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판결은 안전보다 증명을 요구하고, 증명은 늘 개인에게 불리하다.
판사가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감정 결과에 종속되거나 보수적 판단으로 도망친다. 그 결과 정의는 서류 속에서 사라진다. 피해자는 패소하고, 시스템은 유지되며, 위험은 다음 노동자에게 이전된다. 판결은 끝났지만 문제는 남는다. 사법은 종료됐지만, 산업 현장은 그대로다.
판사는 산업이 아니라 사건 구조에 특화돼야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별 판사’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위험을 낳는다. 특정 산업에 오래 노출된 판사는 무의식적으로 그 산업의 논리를 정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전문화가 아니라 동화의 위험이다. 판결은 독립을 잃고 관행을 닮아간다.
그래서 필요한 특화는 산업이 아니라 사건 구조다. 시스템 사고형 사건, 고난도 인과관계 사건, 기술 판단이 개입되는 사건 등 유형별 전문성이 필요하다. 이는 판사의 중립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판결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식이다. 구조를 아는 판사는 주장보다 작동 원리를 본다. 보이는 쪽이 아니라 작동하는 쪽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판사는 업계를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구조를 해부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해관계자의 주장 뒤에 숨은 작동 원리를 읽어내는 능력이 사법 전문성의 핵심이다. 이것이 사법 전문화의 올바른 방향이다. 판결은 설명이 아니라 해부여야 한다.
로스쿨과 경력 논쟁의 허점
로스쿨 제도는 판사의 경험 부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그러나 경험이 곧 판단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 경력이 길수록 사건을 의뢰인 중심으로 보는 습관이 굳어질 수 있다. 재판은 그 습관을 내려놓는 자리다. 익숙한 시선은 공정한 판단의 장애가 되기도 한다.
재판은 변론의 연장이 아니다. 양쪽 주장을 동일한 거리에서 해체하고 재구성해야 한다. 오히려 선입견이 적은 신입 판사가 구조를 더 정직하게 읽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험은 방향이 맞을 때 힘이 된다. 방향 없는 경험은 판단을 왜곡한다.
문제는 경력의 유무가 아니라, 그 경험이 어떤 사고방식으로 축적됐느냐다. 이 점을 무시한 채 경력만 강조하는 사법개혁은 방향을 잃기 쉽다. 경력은 조건이지, 보증수표는 아니다. 판결의 질은 이력서가 아니라 사고 방식에서 나온다.
전문성 부재가 재판 지연을 만든다
최근 재판 지연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사건은 접수됐지만, 첫 변론까지 시간이 걸리고, 쟁점 정리만으로도 수개월이 소요된다. 흔히 인력 부족이나 사건 폭증이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그 이면에는 또 하나의 구조적 문제가 있다. 판사가 사건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플랫폼, 산업병, 기술·금융 사건처럼 구조가 복잡한 사건일수록 이 현상은 두드러진다. 판사는 관련 산업과 시스템을 처음부터 공부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감정과 자료 제출이 반복된다. 쟁점은 늘어나고, 변론은 길어지며, 재판은 자연스럽게 지연된다. 전문성이 부족한 재판은 신중해지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잃고 늘어진다.
결국 재판 지연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의 문제다. 사건 구조에 대한 기본적 축적이 없는 상태에서는 판결을 미룰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구조 전문화는 판결의 질만 높이는 장치가 아니다. 재판을 제때 끝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기도 하다. 판사가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법은, 정의뿐 아니라 시간에서도 시민을 배반한다.
의사는 분야를 나누는데, 판사는 왜 구조를 나누지 않는가
의료 현장에서 의사는 결코 하나의 직군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내과, 외과, 소아과, 심장, 신경, 응급의학 등 분야는 세분화돼있고, 환자는 자신의 증상과 구조에 맞는 의사를 만난다. 이는 능력 차별이 아니라 판단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시스템이다. 의료는 오진의 대가를 알기에 전문화를 선택했다.
물론 판사와 의사는 역할이 다르다. 의사는 치료까지 책임지지만, 판사는 판결로 역할이 끝난다. 그러나 둘 다 판정을 내린다는 점에서는 같다. 의사는 생명을 다루고, 판사는 죄를 다룬다. 무게의 차이가 아니라 종류의 차이다. 판정의 오류가 남기는 상처는 어느 쪽도 가볍지 않다.
사법부는 여전히 모든 사건을 같은 방식으로 판단하려 한다. 이는 의료에서는 이미 포기한 발상이다. 판사를 산업별로 고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사건의 구조에 따라 판단 역량이 축적되는 설계는 필요하다. 의료가 전문화로 신뢰를 쌓아왔듯, 사법도 구조 전문화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사법만이 예외일 이유는 없다.
판사 직능 개편이 사법개혁의 핵심
진짜 사법개혁은 판사 직능을 다시 설계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판사를 하나의 동질적 집단으로 관리하는 방식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사건 구조별 역량 축적이 가능한 인사와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것이 판결의 질을 끌어올린다. 제도는 판사의 성장을 설계해야 한다.
플랫폼 사건을 반복적으로 다루는 판사, 산업병 사건에서 인과관계 판단에 강한 판사, 기술 감정을 검증할 수 있는 판사가 자연스럽게 형성돼야 한다. 이는 특권이 아니라 역할 분담이다. 재판부 단위의 경험 축적이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경험의 누적이 우연이 아니라 설계가 돼야 한다.
특별재판부는 일회성 처방이지만, 직능 개편은 판결의 체질을 바꾼다. 개혁의 무게중심은 여기에 있어야 한다.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정치의 개입은 계속된다. 정치는 빈 구조를 파고든다. 사법이 스스로 설계하지 않으면, 설계자는 언제나 바깥에서 들어온다.
사법개혁의 기준을 다시 세워야
사법부가 신뢰를 잃는 순간은 판결이 틀렸을 때가 아니다. 이 재판부는 이 사건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인식이 퍼질 때다. 법적 논리는 시민을 설득하지 못하고, 판결은 권위를 잃는다. 신뢰는 한 번 무너지면 복구가 어렵다. 판결은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
그래서 사법개혁의 기준은 단순해야 한다. 판결이 현실을 제대로 번역하고 있는가, 구조를 이해한 흔적이 남아 있는가, 책임을 개인에게만 떠넘기고 있지는 않은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개혁은 실패다. 절차의 공정성만으로는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것은 개혁이 아니다. 판사가 구조를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 개혁이다. 그것이 쿠팡 이후의 플랫폼 사회, 산업병이 일상이 된 시대에 사법부가 선택해야 할 유일한 길이다. 이 기준이 서지 않는 한, 사법개혁 논쟁은 계속 제자리걸음을 할 것이다.


























